올 시즌 1승을 올린 양용은이 1일 JT컵 셋째날에도 선두를 이어갔다. [사진=민수용] |
[헤럴드경제 스포츠팀=남화영 기자] 한국 남자가 일본 골프 무대에서 첫 우승을 일궈낸 지 77년이 지난 지금 70승을 1승 앞두고 있다.
일본남자프로골프투어(JGTO)의 올해 시즌을 마무리짓는 최종전이자 메이저 대회인 골프일본시리즈JT컵(총상금 1억3천만 엔) 최종일에서 ‘바람의 아들’ 양용은(46)과 ‘도라에몽’ 황중곤(26)이 공동 선두로 출발한다.
도쿄 요미우리컨트리클럽(파70 7023야드)에서 올해 우승자 및 상금 상위권자 30명만 출전하는 이 대회에서 한국 선수는 무려 6명이나 이름을 올렸다. 이상희(26)는 2타 뒤의 공동 4위로 출발한다. 지난주 카시오월드오픈에서 드라마틱하게 우승하면서 세계적인 인기스타가 된 ‘낚시꾼 스윙’의 최호성(45)은 19위, 지난 미국프로골프(PGA)투어 2부투어 웹닷컴에서 상금왕으로 1부에 오른 임성재(20)는 공동 20위, 김형성(39)은 29위로 마지막날을 시작한다.
올 시즌 4위만 4번을 한 이상희가 마지막 대회에서 일본 투어 첫승에 도전한다. |
이번 대회에서 양용은이 우승하면 올 시즌은 2승째를 달성하면서 일본 무대에서 6승째를 올린다. 국내투어를 거치지 않고 2011년에 바로 일본투어에서 데뷔해 그해 미즈노오픈을 우승한 황중곤이 우승하면 지난 2015년 카시오월드오픈에 이어 3년만에 JGTO 투어 4승을 거두는 것이다. 올해 공동 4위가 4번에 공동 5위가 한 번일 정도로 여러 번의 우승 기회를 놓쳤던 이상희가 우승한다면 2013년 일본 진출 후 6년 만에 감격의 첫 승을 올리게 된다.
어느 대회보다 높은 확률인 이 대회에서 한국 선수가 우승하게 되면 시즌 3승에 통산 70승을 달성하는 선수가 된다. 그리고 메이저 대회에서 우승하는 영광을 누리게 된다.
한국 여자 선수들은 구옥희가 일본여자프로골프(JLPGA)투어에 진출해 1985년에 첫승을 올린 이래 33년 동안 무려 220승을 쌓았다. 올해만 해도 안선주가 5승을 거두면서 상금왕에 올랐고, 신지애가 메이저 3승을 하는 등 총 15승을 수확했다. 2010년에 100승을 돌파했고, 지난해는 200승마저 경신한 것에 비하면 남자 골프의 우승 성과는 더딘 편이긴 하다.
한국 남자골프가 보다 성장하기 위한 동력과 해결 과제를 일본 골프 대회사를 통해 살펴볼 수는 없을까? 당장 미국프로골프(PGA)투어 만을 바라보기 보다는 우리보다 높은 경쟁력을 가지고 두터운 선수층을 가졌으며 또한 노력과 접근 여하에 따라서는 일본을 발판 삼아 더 큰 무대로 나가곤 했다. 그리고 일본 투어에서 좋은 성과를 낸 선수들이 미국 무대로 진출해서도 성공의 드라마를 써나갔다.
1972년 한장상이 일본오픈을 우승하면서 큰 화제가 되었다. |
연덕춘, 한장상의 일본오픈 우승
일본에서의 첫 승은 한국프로골퍼 1호인 연덕춘이 이뤘다. 현재 서울어린이대공원 자리에 있던 경성구락부(이후에 서울CC) 캐디였던 연덕춘은 1934년 일본으로 건너가 프로가 됐고, 41년에 메이저이자 내셔널 타이틀인 일본오픈에서 우승했다. 당시 그는 노부하루라는 일본식 이름으로 출전했으나 한국인의 해외 골프 무대 첫승이다.
이후 태평양전쟁과 해방, 그리고 한반도는 6.25전쟁의 참화를 겪었다. 선수로서의 전성기를 넘기고 40대를 넘긴 연덕춘은 1958년 서울컨트리클럽에서 처음 열린 한국프로골프선수권에서 유일하게 국내 우승 기록을 남긴다. 연덕춘으로부터 골프를 배운 군자리 능동 주변의 캐디 출신 한장상, 김승학, 김학영 등의 소년들이 한국 프로 골프의 1세대가 된다. 1972년에 한장상이 일본에서 그랜드모나코에 이어 최대 메이저인 일본오픈을 제패하자 세상이 깜짝 놀랐다.
한국의 골프 환경을 감안할 때 불가능에 가까운 쾌거였기에 이는 언론에도 대서특필되었다. 지금도 일본의 시니어 프로들은 한장상의 일본 발음인 ‘간쪼소’를 한국의 유명 골퍼로 잘 알고 있다. 이에 따라 한장상은 이듬해 한국인 최초로 마스터스 출전권까지 얻었다. 아깝게 예선탈락은 했지만 한국인 최초의 미국프로골프(PGA)투어 대회 출전이기도 했다. 한장상은 이듬해에도 구즈와국제오픈에서 우승하는 등 일본프로골프(JGTO)에서 3승을 달성했다.
2000년대 함께 일본투어에서 활동하던 양용은, 김종덕, 장익제(왼쪽부터). |
90년대 임진한, 김종덕, 최경주
그로부터 20여년이 지나 다시 일본 투어 우승이 이어진다. 1977년 최윤수, 최상호와 함께 프로 테스트에 합격한 임진한은 1983, 84년에 KPGA선수권을 2연패 한 뒤로 이듬해부터 일본골프투어로 눈을 돌려 종종 일본 무대에 도전했다. 1990년 싱가포르요코하마타이어클래식에서 첫승을 하고는 시드를 얻어 92년부터는 본격적으로 일본에서 활동한다. 이후 일본 2부(챌린지) 투어에서 2승(고라쿠엔컵, 관동국제오픈)을 거둔 그는 엘보 등 부상으로 인해 96년에 국내에 돌아와 레슨과 골프방송으로 진로를 바꾼다.
본격적으로 일본에서 다승을 거둔 것은 일본 골프의 맏형으로 불리는 김종덕부터다. 그는 최경주를 비롯해 양용은, 장익제 등 후배들의 일본 투어 적응을 챙기고 보살펴준 큰 형같은 존재였다. 86년 프로로 데뷔한 김종덕은 95년부터 일본과 한국 투어를 오가며 활동했고 일본에서 4승을 쌓았다.
진출 3년째인 1997년 5월 기린오픈골프선수권에서 첫승을 한 김종덕은 1999년 4월 다이도드링코시츠오카오픈에서 우승한 후 6월의 요미우리오픈골프선수권대회에서 4일 내내 60대 타수를 기록하며 시즌 2승을 일궈낸 뒤로 2004년 니가타오픈에서 4승째를 기록했다.
1999년에는 일본투어에 진출한 최경주가 기린오픈 우승에 이어 우베고산오픈골프선수권에서 우승하면서 2승을 쌓았다. 하지만 최경주의 진로는 일본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골프투어의 가장 큰 무대인 미국이었다. 그리고 최경주는 탱크처럼 영어 한 마디 못하면서 미국으로 향했다. 최경주가 개척한 그 길을 따라 양용은, 배상문이 택했다. 모두 일본을 징검다리 삼아서 미국으로 진출했다.
연덕춘, 한장상에 이어 2010년 일본오픈에서 한국인으로 세번째 우승한 김경태. |
허석호 8승, 김경태는 13승
2000년대에 들어서는 허석호, 양용은, 이동환 등이 일본투어를 두드렸다. 선두 주자인 허석호는 프로 데뷔 6년 만인 2001년 포카리스웨트오픈에서 우승한 뒤 일본에 진출해 2001년부터 2008년까지 8년 동안 8승을 거둔다. 2002년 주켄산교오픈에서 첫승을 했으며 2004년엔 메이저인 PGA챔피언십과, 시시디힐스컵에서 2승을 올렸다. 2005년에도 PGA챔피언십, JCB클래식센다이에서도 2승을 거둔다. 2006년에는 미즈노오픈에서 우승하고 2008년 쓰루야오픈과 11월에 신설된 더챔피언십바이렉서스에서도 승전보를 전했다. 2016년까지 15년간 지속한 일본 투어 생활을 마무리한 허석호는 지난해부터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후진 양성에 힘쓰고 있다.
양용은은 2004년 JGTO에 진출하던 해에 선클로렐라클래식, 아사히료쿠겐요미우리아시리쿠카 2개 대회에서 우승을 거두었다. 이듬해 2005년 코카콜라토카이오픈, 2006년 산토리오픈에서도 연달아 우승하며 통산 4승을 거두었다. 2006년 한국오픈을 우승하면서 출전권을 얻어 상하이에서 열린 유러피언투어 HSBC챔피언스에서 우승하면서 2007년부터 미국 PGA투어로 무대를 옮긴다.
2004년 국내 상금왕에 올랐던 장익제는 이듬해 일본으로 진출해 미츠비시다이아몬드컵에서의 우승해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일본JGTO에서 신인왕이 됐다. 이동환은 2003년 국가대표 상비군과 2004~05년 국가대표를 거치면서 김경태와 용호상박을 이뤘던 선수다. 2004년 일본아마추어선수권에서 한국인 최초이자 최연소(17세3개월) 우승했으며, 2005년 일본 투어 Q스쿨에 진출했고, 이듬해는 장익제에 이어 신인왕에 올랐다. 2007년 개막전인 토큰홈메이트컵에서 2위를 하고 이어진 요미우리클래식에서 생애 첫승을 거둔다.
2010년 이후로 한국에서 검증받은 선수들이 일본에 진출했다. 김경태는 프로 데뷔하던 해서 상금왕에 오르는 ‘괴물 신인’으로 불렸고, 코리안투어를 장악한 뒤로 2010년 일본에 데뷔해 3승을 거두면서 상금왕에 오른다. 이후 15년에는 무려 5승을 거두면서 상금왕에 2번째 올랐고, 16년에도 3승을 거둔다. 이로써 한국인 중에서는 JGTO에서 가장 많은 13승을 올렸다.
2013년 JPGA챔피언십 컵누들컵에서 우승한 김형성. |
배상문, 김형성은 미국행 교두보
배상문은 애초 미국PGA투어를 지향했고 JGTO를 징검다리로 삼았다. 2011년에 데뷔하면서 일본오픈을 포함해 3승을 거두면서 그해 상금왕에 오른 이듬해 미국으로 떠났다.
김형성은 2012년에 일본에 데뷔하면서 첫승을 거둔 이후로 2015년까지 매년 1승을 거뒀다. 특히 2013년에는 메이저대회인 JPGA챔피언십닛신컵누들컵에서 우승하는 등 통산 4승을 쌓아올렸다. 김형성 역시 일본을 통해 미국PGA투어의 길을 매년 모색했으나 번번히 실패하면서 일본투어에 정착하게 됐다.
2010년 김경태 이후 국내 선수들이 일본투어 러시를 이룬 건 그럴만한 배경이 있다. 국내 투어는 나날이 위축되었고, 지도부의 내홍 등으로 인해 대회는 줄어들고 상금은 축소되었고 급기야 총 상금액에서 KLPGA에 추월당했다. 이 무렵 남자 선수들은 가을 시즌이면 일본 퀄리파잉스쿨을 타진했다.
선수층도 다양해졌고, 국내 투어보다는 아예 일본에서 첫승을 거두는 선수가 생겨났다. 2011년 메이저인 JGTO선수권을 우승한 박재범에 이어 조민규(2011년 간사이오픈), 조병민(2016년 간사이오픈)이 그랬다. 허인회는 지난 2014년 도신골프토너먼트에서 일본 골프사상 최저타 기록으로 우승하기도 했다.
2004년부터는 일본투어에서 매년 한국 선수들의 이름을 찾을 수 있었다. 2011년에는 배상문의 3승을 비롯해 8승을 거두었고, 2015년에는 김경태의 5승 외에도 5명의 선수가 9승을 합작했다. 올해는 류현우가 후지산케이클래식에서 5년만에 승수를 추가했다.
77년간 총 69승. 최다승은 김경태의 13승. |
줄고 얇아진 차세대 선수층
한국 남자 선수들이 일본에서 가장 많은 우승을 한 해는 2015년의 16승이다. 김경태가 혼자서 5승을 해냈다. 이듬해도 김경태가 3승을 하면서 JT컵에서 박상현의 첫승까지 시즌 8승을 견인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일본 진출 10년을 지나면서 30대를 맞은 김경태의 우승이 없다.
지난해부터 일본에서 우승하는 선수는 30대 이상의 베테랑인 류현우, 양용은, 최호성에 그친다. 게다가 급격히 줄었다. 한국과 일본을 오가면서 투어 생활을 하는 선수들은 양대 투어에서의 시너지를 활용하지 못하고 오히려 이질적인 투어와 코스 상황으로 혼란해하는 듯하다. 지난해 진주저축은행 카이도오픈에서 우승한 강경남은 “한국과 일본의 대회 코스 세팅이 달라 적응이 더 힘들어졌다”고 말하기도 했다.
20대 한국 선수들은 일본에서 투어 생활을 영위하기는 더욱 어려운 상황에 봉착하고 있다. 국내 선수층이 얇아지면서 경쟁력이 줄어들었다. 반면 일본은 2020년 올림픽을 앞두고 최근 국제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3년 전에 호주에서 영입한 국가대표 코치의 지도하에 지난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냈고 싱가포르에서 열린 아시아아마추어챔피언십(AAC)에서도 1,2위를 휩쓸었다. 올해 일본투어에서는 20대와 30대의 승수가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한편으로는 부러우면서 또 아쉬운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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