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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8 (목)

"우리는 강제추방 미얀마인이 아니라 로힝야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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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글라 난민촌의 로힝야족, 신분증 표기 변경 요구하며 파업

연합뉴스

강제 송환 반대하는 로힝야족 난민들[로이터=연합뉴스 자료사진]



(방콕=연합뉴스) 김상훈 특파원 = 미얀마군의 집단학살과 '인종청소'를 피해 국경을 넘은 로힝야족 난민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저항에 나섰다고 로이터 통신이 27일 보도했다.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 난민촌에 머무는 로힝야족 난민 지도자들은 전날 방글라데시 정부가 발급하는 신분증에 '로힝야' 명칭 사용을 요구하며 사흘간 파업을 선언했다.

로힝야족 지도자들은 성명을 통해 "우리는 로힝야족이라는 정체성 때문에 미얀마에서 박해를 당했다. 따라서 우리를 로힝야족이라고 불러야 한다"며 "미얀마에서는 로힝야족이라는 표현이 금지됐지만, 이곳에서조차 금지돼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난민촌 인근에 생겨난 로힝야족 상점들은 일제히 문을 닫았고 구호단체와 유엔 난민기구(UNHCR)에 근무하는 로힝야족들도 업무를 중단했다.

방글라데시를 비롯한 인도 아대륙(亞大陸)에서 이주해온 이슬람 소수민족인 로힝야족은 자신들이 미얀마 서부 라카인주에 수 세기 동안 뿌리를 내리고 살아온 원주민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미얀마의 주류인 불교도는 로힝야족을 방글라데시계 불법 이민자를 뜻하는 '벵갈리'로 부르며 차별한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령 미얀마를 침공한 일본이 이슬람교도를 무자비하게 탄압했고, 이후 영국이 반일 감정을 가진 로힝야족을 무장시켜 미얀마 재탈환에 앞장세운 것이 양측간 갈등을 본격화한 계기가 됐다는 것이 정설이다.

당시 영국군이 무장시킨 로힝야족 의용군은 일본군과 싸우는 대신 일본군에 협조적이었던 불교도를 학살하고 불교 사원과 불탑을 파괴했다. 이후 두 종교집단 간에는 끊을 수 없는 피의 악순환이 반복됐다.

1982년 쿠데타로 집권한 군부 독재자 네윈은 '국적법'을 제정해 8대 민족과 135개 소수민족에 국적을 부여했지만, 로힝야족은 국적 부여 대상에서 제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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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힝야족이 정착한 방글라데시 난민촌[로이터=연합뉴스 자료사진]



이후 미얀마가 로힝야라는 명칭 사용을 금지한 가운데, 현재 100만 명 이상의 난민을 수용한 방글라데시 정부 역시 공문서에 로힝야족 명칭을 쓰지 않는다.

방글라데시 정부는 난민 신분확인 및 구호를 위해 발급하는 스마트카드에 로힝야족을 '강제 추방된 미얀마 국민'이라고 기재한다.

로힝야족 난민들은 또 UNHCR이 추진 중인 난민 생체 정보 수집 계획에 대해서도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UNHCR가 수집하는 생체 정보가 미얀마 당국에 넘어가 자신들에게 불리하게 이용될 수 있다는 게 로힝야족 지도자들이 주장이다.

이에 대해 피라스 알-카티브 UNHCR 대표는 "생체 정보 수집은 신분확인을 위한 절차로 난민 보호 활동을 더 원활하게 할 것"이라며 "또한 이를 통해 난민들이 방글라데시에서 제공하는 서비스에 쉽게 접근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해명했다.

미얀마 서부 라카인주에서는 로힝야족 무장단체인 아라칸 로힝야 구원군(ARSA)이 핍박받는 동족을 위해 싸우겠다며 대(對)미얀마 항전을 선포하고, 지난해 8월 서부 라카인주의 경찰초소를 습격했다. 경찰초소 습격은 미얀마군의 대규모 소탕작전을 촉발했다.

이 과정에서 많은 사람이 죽고 72만 명에 이르는 난민이 국경을 넘어 방글라데시로 도피했다. 유엔 진상조사단은 로힝야족 1만 명가량이 학살됐을 것으로 추정했다.

meola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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