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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7 (금)

[기고] 혁신은 일상 속에서 나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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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TV 방송에 여행과 음식 프로그램이 성황이다. 세계 곳곳을 다니며 명소와 음식을 소개하고 있어 안방에서 해외여행을 체험하는 호사를 누리고 있다.

그런데 한 가지 아쉬운 것은 그 배경과 역사에 대한 소개가 부족하고 그저 즐기는 것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열심히 일한 후 삶을 즐기는 것은 필요하며, 어느 정도 소득수준을 달성한 이후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러나 이러한 흐름에 휩싸이다 보면 생산보다 소비가 미덕이 될까봐 염려스럽다. 이제 1인당 국민소득이 갓 3만달러를 넘어선 우리가 여기서 멈춰서는 안 되며 일등국으로 가야 하기 때문이다. 모든 일에 좀 더 정밀해야 하고 그 맥락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우리 경제는 지금까지 후발국으로서 훌륭한 성공 사례였다. 소위 캐치업 전략이라는 외생적 발전이 잘 작동했다. 그럼에도 우리의 평균 경쟁력은 '중급 가격에 비해 품질이 괜찮다'로 규정된다. 주력 산업의 기업들이 온갖 어려움을 무릅쓰고라도 저임금을 찾아 해외로 공장을 이전하는 것이 이를 반영한다. 그러나 이제 이 경쟁력조차 중국, 인도, 베트남 등으로 인해 쉽지 않다. 기술혁신을 통해 우리의 품질을 업그레이드해야 하는 것이 절체절명의 과제가 된 것이다. 그러나 그 혁신도 지금까지 해오던 외생적 혁신으로는 한계에 직면해 내생적 혁신으로 전환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와 있다.

내생적 혁신은 자기조직화에서 발현된다. 자기가 행하고 있는 것을 스스로 의미 있는 체계로 만들어 가는 과정적 행위이다. 실제로부터 규칙이나 원리를 추출하고, 다시 규칙과 원리가 실제로 피드백되어 상호작용하는 과정을 거친다. 가령 생산 현장에서 제품을 생산할 때 생산 방식을 표준화하거나 부품을 모듈화하는 것이 그 예다. 표준화나 모듈화가 되면 훨씬 확장성이 높아져 시장이 확대되는 효과를 가진다.

학문에서도 마찬가지로 실제와 이론 간의 상호작용이 중요하며, 그 과정이 축적되면 궁극적으로 새로운 이론들이 나온다. '도요타 방식'도 바로 이러한 과정을 거쳐 탄생됐다. 시장에서 자기 제품을 인정받고자 하는 기업의 치열한 변용이 있었기에 가능했으며 이론과 실제 간의 역동성을 만들어 낸 것이다. 결국 야전에서 우리의 역사성과 현장성을 몸소 구현하는 기업들의 가치가 사회 곳곳에 스며들어야 내생적 혁신의 결실을 맺을 수 있다.

고로 정부가 방향을 잘 잡아야 한다. 내생적 혁신을 위해서는 지금까지 일관되어 온 하향식 혁신을 과감히 벗어던져야 한다. 정부가 특정 분야를 선정해 예산을 배분하고 평가하는 하향식의 혁신체제로는 우리 경제는 더 이상 혁신이 주도하는 경제체제로 이행할 수 없다. 시장에서의 승자를 선정해 이에 자원을 투입하는 것이 아니라 생태계에서 치열한 경쟁을 통해 승자가 스스로 드러나는 상향식 혁신체제로 전환하는 것이 필요하다.

투입-산출 효율성 극대화 일변도에서 벗어나 오랜 시간에 걸친 일상의 축적과 변용이 혁신으로 이어지는 생태계적 환경이 전제돼야 지속적인 혁신이 가능하다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지금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여러 문제들은 외생적 혁신의 한계에서 파생되고 있다. 내생적 혁신은 일상의 혁신에서 출발한다. 부동산, 임대료, 카드수수료 등 지대추구행위에 쏠린 국민의 에너지를 일상의 혁신으로 돌리는 데서 시작한다. 현장 교육을 강화하고 기술자, 기능자 등 전문가를 우대하고, 창업을 활성화하며, 산학연 관계도 지금보다 훨씬 개방적으로 가야 한다. 지역의 예산 편성권을 대폭 확장해 스스로 운명을 결정할 수 있도록 실질적인 지역혁신체제로 이행해야 한다.

몇 % 성장 목표치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앞으로 당분간 깊은 불황의 터널을 통과하더라도 국가의 미래 번영을 위해 뼈를 깎는 인내로써 실력을 차근차근 키워 나가는 비장한 결기가 필요하다. 샴페인을 마실 때가 아니다.

[이덕희 KAIST 기술경영전문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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