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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8 (토)

불씨 한톨에 '풍전등화' 국가 저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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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기간시설 관리 허술…지적 봇물

뉴스1

풍등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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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뉴스1) 이상휼 기자 = 2542만ℓ의 기름이 저장된 국가기간시설 저유소가 촛불을 붙여 바람에 날린 작은 '풍등' 하나로 인해 불 타 버렸다는 소식에 '허술한 시설 관리'라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다.

대형 화재로 이어질 수 있는 저유시설에 잔디를 둘러 심은 것도 화를 키웠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고양경찰서는 8일 '중실화' 혐의로 스리랑카인 A씨를 긴급 체포해 조사하고 있다.

서울-문산간 도로공사 사업 근로자인 A씨는 이날 문구점에서 풍등을 구매해 불을 붙여 날린 것으로 조사됐다.

풍등을 날린 이유에 대해 A씨는 "소원을 들어준다기에 호기심에 붙을 붙여 날렸다"고 진술했다.

경찰이 CCTV 등을 분석한 결과 A씨는 저유소 인근 야산 강매터널 공사장에서 풍등을 날렸고, 이 풍등이 저유소 잔디밭에 추락하면서 불씨가 옮겨 붙어 저유탱크를 폭발케 했다.

이곳은 무인경비시스템인데다 휴일이라 직원들이 근무하지 않아 불씨가 겉잡을 수 없이 커지는 것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불씨가 옮겨 붙으면서 폭발한 직후 탱크 내부에 설치된 소화설비 2기가 작동했으나 1기가 정상작동하지 못해 초기진화에 실패했다.

공사측에 따르면 폭발 직후 탱크를 덮고 있던 커버가 공중으로 떨어져 나가는 과정에서 탱크 내부에 설치된 소화시설(폼 챔버)를 가격하면서 배관 등 일부가 훼손됐다.

탱크 내부에는 화재를 대피해 폼액을 분출하는 챔버 2기가 설치되어 있었지만 이중 1기가 훼손돼 폼액이 정상적으로 분출되지 않았다.

송유관공사 관계자는 “저유소에는 6000ℓ의 자체 폼액이 있었지만 1기가 비정상적으로 작동, 폼액 일부가 탱크 내부가 아닌 밖의 잔디밭으로 분출됐다. 만약 2기 모두 정상 작동했다면 초기에 진화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류 화재의 경우 폼액의 거품이 불길을 덮으며 산소를 차단해 진화하는 방식이지만 이 경우 적정량이 분출되지 않아 고열로 정상 분출된 폼액마저 증발해 버려 화재를 키웠다는 분석이다.

하루 수천만ℓ의 기름을 저장하는 시설이 겨우 조그만 촛불 풍등에 의해 무서운 폭발시설로 둔갑하고 순식간에 잿더미가 된 것이다.

당시 발생한 검은 연기와 유독가스는 경기도, 서울, 인천 등 수도권 전역에 목격됐으며 매연을 일으켰다.

행정당국은 재난문자를 통해 '외출 자제'를 당부하고 소방당국이 화재를 진화하기를 기다리는 것 외엔 대책이 없었다.

비록 작은 불씨라도 게릴라처럼 날아오는 풍등 하나에도 속수무책이라는 결과를 입증한 셈이다.

수도권의 한 대학 소방방재학과 교수 B씨는 "드론이 추락해 화재로 이어진 경우는 있었지만 풍등이 대형 화재를 일으킨 경우는 전례가 없다"며 "화재에 위험한 시설인 만큼 주변에 잔디 등 가연성 물질은 일체 없었어야 하며, 설사 불이 나더라도 즉시 진화할 수 있는 시스템에 구축됐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경찰은 A씨를 집중 조사한 뒤 구속영장을 신청할 방침이다.
daidaloz@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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