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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7 (금)

전문가가 본 소득주도성장-소득주도성장 대신 혁신성장 올인해야 규제 혁파·노동유연성·교육개혁 집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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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주도성장이란 간판 자체를 내려야 이 정부가 산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전 금융연구원장)의 직격탄 발언이다. 윤 교수는 “현재 알려진 지표만으로 충분히 정책 부작용이 발생했음에도 시간을 두고 정책 실효성을 따져봐야 한다는 주장은 시급한 경제 현안을 외면하고 경제를 특정 철학으로 이해하려는 아집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윤 교수 외 상당수 경제학자들이 이런 시각에 힘을 보탠다. 이인실 차기 경제학회장(서강대 교수)은 소득주도성장에 대해 “성장하려면 노동, 자본, 생산성 등 세 가지를 향상하는 방법밖에 없다. 그러나 소득주도성장은 소득을 올려 성장을 이끌겠다는 주장이다. 경제학적으로 보면 단기적으로 가능할지는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불가능한 이론이며 어디서 그런 확신이 나왔는지 솔직히 이해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병태 카이스트 경영학과 교수는 정부 정책의 근간을 이루는 가정에서부터 오류가 있다고 지적한다.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은 소득주도성장 카드를 꺼내 든 배경으로 ‘소득이 적어 소비를 못 하기 때문’이란 논리를 들었다. 반면 이 교수는 한국은행 국민계정 통계를 사례로 들며 “우리나라 가계저축률이 최근 들어 급하게 올라가고 있는데 이것은 ‘돈이 없어서 안 쓰는 것이 아니라 미래가 불안해서 안 쓰고 있다’는 점을 말해준다”며 “소득이 낮아 소비가 부족하다는 장 실장의 단순 가정은 틀렸다”고 주장한다. 그는 또 “소득 대비 민간 지출 감소는 우리나라 소득이 많이 올랐고 기본적인 물가가 낮은 상태로 유지된 덕이 크다”며 “최저임금이 인상되면서 물가를 흔들고 있는데, 이러면 실질소득 감소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매경이코노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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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부 경제인사 비판 대열 동참

▷박승·김광두 잇따라 직격탄 날려

친정부 조직으로 분류되는 국민경제자문회의의 김광두 부의장(서강대 석좌교수)도 비판 대열에 섰다. 국민경제자문회의는 헌법과 국민경제자문회의법에 따라 설치된 기관이다. 국민 경제와 관련 중용 정책에 대한 대통령 자문을 수행하기 위해 설립됐다.

김 부의장은 SNS에서 “문재인정부 경제정책을 마련할 당시 원본(Original Version)에는 사람의 기초생활권 보장, 생활 환경에 대한 투자·교육·보육·의료 등 사람의 능력 제고를 위한 투자 등이 들어 있었다. 소득주도성장이라는 용어는 사용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현재 집행되고 있는 J노믹스의 정책구조와 우선순위는 내가 주도적으로 참여했던 당시의 원본 우선순위, 의도와 동일하지는 않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더불어 “전쟁터에서 명장은 최소의 전력 손실로 승리하는 장군이다. 10만명의 군사를 잃고 1만명의 적에게 이겼다면 그것은 패장”이라며 소득주도성장 정책 입안자를 우회적으로 비판하기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 후보 시절 싱크탱크 ‘국민성장’ 자문위원장을 역임한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는 “소득주도성장 정책 자체를 비판하기는 아직 이르지만 2년 동안 30% 가까이 올린 최저임금, 별 실효성 없는 일자리 정책 때문에 정책 철학의 근간이 흔들리는 모양새”라고 지적했다. 그는 “최저임금제는 자영업자, 일용직 노동자 등 서민끼리 치고받는 빌미를 제공했다”며 “일자리 정책 역시 민간 주도가 될 수 있도록 정부가 보조를 맞춰야 하는데 정부가 주도가 돼 ‘공무원만 늘린다’는 나쁜 인상을 줬다는 점에서 정책 실기”라고 비판했다.

▶최우선 정책 과제는

▷4차 산업혁명 대비 혁신을

전문가가 꼽는 정부 경제정책 대안 1순위는 뭘까.

전문가들은 장하성 정책실장 주장 중 일부에서 그나마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장 실장은 “신(新)산업 분야에 대한 과감한 규제 혁신, 혁신 인재 양성, 전략적인 집중 투자, 창업 촉진·산업 생태계 구축을 내용으로 하는 ‘혁신 성장’이 ‘소득주도성장’과 반드시 같이 추진돼야 다 같이 성공할 수 있는 패키지 정책”이라고 주장했다. 여기서 소득주도성장을 연계 혹은 병행해야 한다는 데는 전문가 간 의견이 엇갈린다. 하지만 혁신 성장을 앞세워야 한다는 데서는 이견이 없다.

“소득주도성장 기조는 유지하되 일자리를 늘리는 데 보조금을 주는 식은 곤란하다. 은산분리 완화로 대변되는 규제 완화는 정부가 보여준 좋은 투자 촉진 정책 시그널이다. 기업이 뛰어놀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일에 정부가 집중한다면 굳이 경제부총리가 일일이 대기업을 돌며 투자, 고용 읍소하는 모습을 안 보여도 된다.”

박승 전 총재 얘기다.

이창양 카이스트 경영대학원 교수는 이참에 미국처럼 자동규제감축제도 도입도 고려할 만하다고 제안했다. 자동규제감축제도란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현재 실행하고 있는 것으로 특정 규제 신설을 하나 하려면 그 2배에 해당하는 규제를 없애야 하는 제도를 말한다.

일시적인 지원보다 핵심 산업을 선정하고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는 주문도 나왔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의 땜질식 일시적 소득은 일시적인 소비를 부를 뿐이다. 항구적인 소비를 이끌어내기 위해 기존 핵심 산업이 경쟁력을 유지하고 신산업을 만들도록 해야 한다. 경제는 단기·중기, 노동시장은 중장기, 교육시장은 장기 프로젝트라고 본다면 추가 재정으로 3개 시장을 동시에 개혁해나가는 것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노동시장 개혁, 교육 부문에 집중 투자해야 한다는 의견도 이어졌다. 김광두 부의장이 J노믹스 설계 때 “돈 없다고 좋은 교육 못 받는 일 없이 사람에 대한 투자에는 재정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 것과 일맥상통한다.

이동근 현대경제연구원장은 “DJ정부 때 주창했던 ‘생산적 복지’ 개념을 좀 더 확대·진화시킬 필요가 있다. 일반적인 복지가 사회적 약자의 사회안전망에 방점을 찍는다면 생산적 복지는 사회적 기업 등 이익을 창출하며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에 집중해야 한다 인적자본, 즉 교육에 집중 투자해 생산성을 높이는 쪽으로 예산을 쓰고 기업 자율성을 높이는 ‘투트랙’을 쓰는 게 절실하다”고 말했다.

이영달 동국대 경영전문대학원(MBA) 교수는 ‘기업가적 가치주의(Entrepre neurialism)’ 교육을 강조했다. 이 교수는 미국 금융위기 이후 자본주의 한계가 드러난 만큼, 지금은 ‘기회의 균등’에 초점을 맞춘 교육이 절실하다는 설명이다. 그는 “A(부자)가 가진 부를 제도적(강제적)으로 B(빈자)에게 나눠주는 ‘투쟁적 접근’이 아니라, B가 A가 가진 부의 수준을 뛰어넘을 수 있도록 B에게 ‘기회의 장’을 만들어주고, 이 기회를 통해 자신의 삶을 스스로 바꿀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교육이 사회적 이동성(Social Mobility)을 이끌어내는 가장 중요한 대안인 만큼 교육 혁신 투자가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노동정책 관련해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에 앞서 노동시장 유연성 도입이 더 절실하다는 의견도 존재한다. “노동 규제는 전 산업에 영향을 끼치는 대표적인 규제로 고용 부진의 가장 큰 원인이다. 노동시장만 유연하게 바꿔도 경제 참여율과 고용률이 10% 늘어난다는 통계가 있다. 경제활동인구가 늘어나면 정부가 원하는 소비 증가, 경기 활성화를 이뤄낼 수 있다.”

소득주도성장의 한계를 꼬집은 이병태 교수의 일침이다. 이 교수는 근거로 하르츠 개혁을 제시했다. 독일은 2000년대 초 마이너스 성장률을 보이자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가 이끄는 사민당 내각이 임금 삭감, 복지 축소, 해고 제한 규정 완화, 비정규직 개념 도입 등을 골자로 한 하르츠 개혁을 밀어붙였다. 저소득 파트타임 일자리를 확대하는 대신 고용주의 고용 부담을 덜어주는 하르츠 개혁은 2003년 시작 후 중장년층의 경제 참여가 급증하며 고용률을 65%(2003년)에서 76%(2017년)까지 끌어올렸다.

[박수호 기자 suhoz@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974호 (2018.09.05~09.11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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