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성으로 선수들 사로잡아, 오늘 밤 한국과 운명의 대결
삼성전자 베트남 법인처럼 축구로 위상 높여
삼성전자 베트남 법인처럼 축구로 위상 높여
박항서 감독[이미지출처=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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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흥순 기자] 얄궂은 운명이다. 이기면 고국 대한민국이, 지면 '제2의 조국' 베트남이 운다. 박항서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 감독. 그가 이끄는 23세 이하(U-23) 대표팀이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남자축구 4강에 올랐다. 베트남 축구 역사상 최고 성적이다. 베트남이 들썩였다. '박항서 신드롬'이 들불처럼 번졌다. 이 기세를 몰아 우승까지. 얄궂게도 준결승 상대는 대한민국이다. 29일 오후 6시(한국시간) 운명의 휘슬이 울린다.
그는 지난해 10월 베트남 사령탑에 올랐다. 한국에서의 경험은 화려했다. 국가대표팀 코치로 2002년 한·일월드컵 4강 진출, U-23 대표팀 감독 역임, 안양 LG(현 FC서울)·수원 삼성·경남FC·전남 드래곤즈 등 K리그와 실업팀에서 지도자 생활. 이런 경험을 밑천 삼아 해외에 문을 두드렸다. 해외 시장에 밝은 에이전트를 통해 베트남과 인연이 닿았다.
그가 부임할 때 베트남은 아시아는 물론 동남아시아에서도 약체로 꼽히는 축구 변방이었다. 그러나 올해 1월 중국에서 열린 아시아축구연맹(AFC) U-23 축구선수권대회에서 운명이 달라졌다. 베트남은 이 대회에서 준우승했다. 예선부터 토너먼트를 거쳐 거듭된 승리에 베트남 전체가 들썩였다. 금성홍기(베트남 국기)를 들고 경적을 울리며 국민들이 거리로 몰려나갔다. 우승은 놓쳤지만 그는 이미 국민 영웅이 돼 있었다. 귀국 때 카퍼레이드가 성대하게 열렸고, 베트남 정부는 박 감독과 선수단에 훈장을 수여했다.
박 감독은 선수 시절보다 지도자 생활을 하면서 빛을 발한 입지전적 인물이다. 실업팀 제일은행, 프로축구 럭키 금성에서 선수로 뛰었지만 능력을 꽃피운 것은 2002년 한·일 월드컵이었다. 거스 히딩크 감독을 보좌하는 수석 코치로서 '4강 기적'에 기여했다. 그때 경험이 16년이 흐른 지금 '베트남의 기적'으로 만개했다.
베트남이 27일 인도네시아 자와바랏주 브카시의 패트리엇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남자 축구 8강전에 연장 승부 끝에 시리아에 1-0으로 승리한 뒤 박항서 감독이 원정 응원단을 향해 인사하고 있다.[이미지출처=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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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항서 감독이 이끄는 베트남 23세 이하(U-23) 축구 대표팀이 바레인을 상대로 승리하자 베트남 축구팬들이 열광하며 거리에서 기쁨을 나누고 있다.[이미지출처=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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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베트남 선수들을 이끌면서 근육량, 심폐지구력, 근지구력 등의 정보를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이를 데이터로 축적하는 관리 시스템을 도입했다. 이는 "우리 선수들의 약점은 기술이 아닌 체력"이라며 과학적인 체력훈련을 도입한 히딩크 감독을 연상케 한다. 연령이나 평판과 무관하게 새로운 선수를 발굴하고 경기에 중용해 경쟁의식을 부추긴 점도 히딩크 감독과 닮았다.
선수단이 잘 먹고 잘 쉬도록 베트남 축구협회에 지원을 요청하면서 현지인이 즐기는 쌀국수 대신 고기나 유제품 등을 섭취하도록 식단까지 철저하게 관리했다. 경기장 안팎을 이동할 때는 휴대전화 사용도 제한했다. 라커룸에서는 애국심을 고취시키며 패배의식에 갇혔던 선수단의 마음을 흔들었다.
그렇다고 엄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교체되거나 경기에 져서 실망한 선수들을 꼭 안아주거나 발 마사지 기계로 정성들여 선수들의 발을 문질러주는 모습은 쉽게 볼 수 있다. 박 감독은 국내 예능 프로그램에서 "영어도 베트남어도 못하니까 선수들에게 마음을 전달할 방법은 스킨십뿐이었다"고 고백했다. 경기 전 베트남 국가가 울릴 때는 선수단과 똑같이 금성홍기를 새긴 유니폼 왼쪽 가슴에 손을 얹는다. 그의 이런 진정성이 베트남을 사로잡은 것이다.
'박항서 신드롬'은 경제 효과로 이어진다. 그가 농식품 수출 홍보대사를 맡아 지난 6월 하노이에서 열렸던 'K푸드 수출상담회'가 대표적이다. 당시 우리 기업이 출품한 컵떡볶이 한 품목에서만 1000만달러 이상(약 110억원)의 계약이 이뤄졌다. 단지 그가 홍보대사라는 이유로 거둔 깜짝 놀랄 성과였다.
박항서 감독이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경기를 마친 베트남 선수들과 포옹하고 있다.[이미지출처=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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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박 감독보다 먼저 베트남을 사로잡은 주인공은 삼성전자다. 1995년 호찌민에 첫 법인을 설립한 뒤 스마트폰과 텔레비전, 세탁기 등 주력 제품을 베트남에서 생산한다. 지난해 삼성 베트남의 수출액은 543억달러(약 60조원). 이는 베트남 연간 수출액의 25%를 차지한다. 삼성전자와 계열사에서 채용한 현지 근로자만 해도 16만명. 지역 최저임금보다 2~3배 높은 급여를 줘 '베트남의 국민기업' 대접을 받는다.
삼성전자가 드높인 한국의 위상을 이번에는 박항서 감독이 더욱 고취시키면서 베트남 국민들에게 한국은 '형제의 국가'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하지만 형제라도 승부는 냉정하다. 베트남 만큼이나 우리 대표팀도 우승이 절실하다. 박 감독은 병역혜택이 걸린 대회에서 금메달을 놓친 태극전사의 상실감을 누구보다 잘 안다.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감독으로 우승에 도전했으나 4강에서 이란에 승부차기로 패한 선수단을 가까이서 챙겼다. 이번에는 손흥민(토트넘)의 병역 문제로 우리 대표팀의 금메달을 세계가 주목하는 상황이다.
결전을 앞둔 박 감독의 심정을 헤아리긴 어렵다. 공개 석상에서 밝힌 각오에서 복잡한 속내를 짐작할 뿐이다. "제 조국은 대한민국이고, 조국을 너무 사랑합니다. 하지만 현재는 베트남 대표팀 감독입니다. 감독으로서 책임과 임무를 다하겠습니다."
김흥순 기자 spor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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