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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영웅이 된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요?
베트남은 요즘 이 사람 때문에 뜨겁습니다. 국민영웅, 마법사, 기적, 최고의 수식어도 부족한 이 사람은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사상 첫 8강 진출을 넘어 새로운 역사에 도전하는 주인공입니다.
베트남 축구 역사를 다시 쓰고 있는 한국 국적의 이방인, 바로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 박항서 감독입니다.
■ 베트남 축구 역사 새로 쓴 '박항서 매직'…처음에는 '반신반의'
지난 19일 인도네시아 자와바랏주 위바와 묵티 스타디움. 종료 휘슬이 울리는 순간 베트남 축구팬들의 환호와 함성이 경기장을 떠나갈 듯 울렸습니다.
2018 자카르타 팔렘방 아시안게임 조별리그 D조 3차전, 파키스탄과 네팔을 연파하고 16강 진출을 확정 지은 베트남이 유력한 우승 후보로 꼽히는 일본을 1 대 0으로 격파한 순간이었습니다.
베트남 축구 대표팀이 23세 이하 경기나 A 매치에서 일본을 꺾은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3경기 6득점 무실점의 놀라운 기록, 그 중심에는 박항서 감독이 있었습니다.
박항서 감독이 처음부터 환영을 받았던 건 아닙니다. 지난해 10월 11일 박항서 감독이 베트남에 처음 왔을 때 여론은 차가웠습니다. 베트남 대표팀의 10번째 외국인 감독이 된 그는 베트남 사람들에게는 이름 없는 한국인에 불과했습니다.
[홍승표 / 베트남 한인축구협회 : "처음에 베트남의 축구계나 국민들은 좀 반신반의했어요. 유럽의 아주 저명한 축구 감독을 모시기를 원했었는데 왜 하필 아시아냐, 또 왜 한국계 감독이냐 거기에 대한 불만들이 많았죠."]
베트남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올림픽이나 월드컵의 예선 문턱을 넘지 못했습니다. 피파랭킹 102위, 불과 2년 전까지만 해도 아시안 챔피언십 대회에서 예선 3전 3패를 기록했던 나라입니다.
박항서 감독은 이런 나라에서 보란 듯 마법을 부렸습니다. 지난해 12월 베트남의 숙명에 라이벌인 태국을 국제 축구대회에서 무려 10년 만에 격파했고 지난 1월에는 23세 이하 선수들이 참가하는 아시안 챔피언십에서 압도적인 전력이라 평가받던 호주마저 제압했습니다.
[베트남 축구팬 : "진두지휘 하신 지 불과 3개월 만에 그분은 신화가 되었어요. 정말 짧은 시간 동안이었는데 말이죠. 어떤 수식어로도 감독님의 재능을 평가할 수 없어요."]
믿을 수 없는 경기 결과에 베트남 축구팬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박항서 매직'이란 말이 베트남에 사람들의 가슴에 스며들던 순간이었습니다.
■ "한국 축구협회와 일 안해" 떠났던 박항서…'국민영웅' 되기까지
카타르를 꺾고 결승에 오른 다음 날, 베트남 호치민 시내는 마치 2002년 여름의 서울 같았습니다. 베트남 축구 사상 처음으로 국제무대 결승행을 이뤄낸 박항서 호는 뜨거운 환대를 받았습니다. 베트남 국가주석의 훈장과 사상 최고 포상금도 주어졌습니다.
[SBS 궁금한이야기Y 제작진 : "비, 이민호, 김범과 박항서를 비교하면 누가 더 좋아요?"]
[베트남 축구팬 : "당연히 박항서가 최고예요." "당연하죠."]
[SBS 궁금한이야기Y 제작진 : "송중기와 박 감독님 중 누가 제일 좋아요?]
[베트남 축구팬 : "박 감독님 더 좋아하지요."]
베트남은 역사적으로 많은 외세의 침략을 받고 숱한 전쟁을 치렀지만 미국을 상대로 싸워 이긴 강인함을 가진 나라입니다.
[백용훈 교수 / 서강대 동아시아 연구소 : "본인이 원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결코 실행을 하지 않는 그런 전통, 강인함 이런 것들이 베트남의 젊은 층들 사이에 강하게 남아있습니다."]
베트남인들의 그런 강인함을 뛰어난 경기력으로 승화시킨 것이 '박항서 리더십'이라는 평입니다.
권위보다는 친근함으로 선수들에게 다가간 박항서 감독. 이런 모습은 2002년 우리 기억에도 남아 있습니다. 히딩크 감독의 조력자로서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뤄낸 주역, 골을 터트린 황선홍 선수가 박항서 코치에게 달려가 안기던 모습은 많은 이들의 가슴을 울렸습니다.
하지만 그 후 조국에서 그는 영웅으로 불리지 못했습니다. 2002년 월드컵 직후 열린 부산 아시안게임에 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했지만 두 달 만에 경질됐습니다. 동메달에 그친 성적이 표면상의 이유였지만 박항서 감독이 비주류 대학 출신인데다가 축구협회와 마찰을 겪은 게 원인이라는 주장도 나왔습니다.
박항서 감독 자신도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개인인 감독과 조직인 협회가 맞선다면 개인이 이길 수 없다" "앞으로 축구협회와 관련된 일은 절대 할 마음이 없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경질된 박항서 감독은 시련의 세월을 견뎌야 했습니다. 이듬해 포항 스틸러스에서 감독도 아닌 코치직을 맡아 후배인 최순호 감독을 보좌했고 2년 뒤 갓 창단한 경남 FC 초대 감독으로 자리를 옮겼다가 상주 상무 감독을 끝으로 K리그를 떠났습니다.
지도자로서 성적은 준수했지만 그에게 손을 내민 곳은 없었습니다. 그리고 2017년 박항서 감독은 '외국인 감독의 무덤'으로 불리던 베트남으로 향했고 1년 만에 베트남 국민영웅의 반열에 올랐습니다.
■ 서로 총 겨눴던 한국과 베트남…"박항서 매직이 벽을 허물었다"
박항서 열풍이 우리에게 남다르게 다가오는 이유는 또 있습니다. 월남전으로 잘 알려진 1960년대 베트남 전쟁, 한국과 베트남은 서로에게 총을 겨눴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수교를 맺은 지 26년이 흘렀지만 두 나라 사이에는 아직 아물지 않은 상처가 남아 있습니다.
지난 4월에는 한국을 찾은 베트남인들이 과거 한국군이 베트남 땅에서 민간인을 학살한 것을 사과하라며 시위를 벌이기도 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3월 베트남 참전과 민간인 희생에 대해 유감을 표하기도 했죠.
[문재인 대통령 : "모범적인 협력 관계를 발전시켜가고 있는 가운데 우리 마음에 남아 있는 양국 간의 불행한 역사에 대해 유감의 뜻을 표하며…"]
교민들은 한국과 베트남 사이를 막고 있던 오래된 벽이 이제야 비로소 박항서 감독에 의해 허물어지고 있다고 입을 모읍니다.
[백승규 / 1969년 베트남전 참전자, 베트남 거주 17년 : "한국군이 참전했기 때문에 적대 국가 그런 선입견이 있었는데 정말 뿌듯하죠. 베트남 사람들이 우리가 전쟁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사람들을 그렇게 좋게 생각하니까 뿌듯한 거죠. "]
아침에 쌀국수 대신 우유를 먹게 해 '쌀딩크'라는 별명을 얻은 박항서 감독. 베트남 선수들은 단백질 위주로 식단을 바꾼 뒤 연장전을 연거푸 뛸 수 있게 되자 체력에 대한 자신감을 얻었다고 합니다.
박항서 감독은 말합니다. 자신이 베트남에서 한 일은 단지 편견을 깨부수고 잠들어 있던 그들의 자부심을 일깨워준 것뿐이라고 말이죠.
[박항서 / 베트남 국가대표 축구팀 감독 :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고개 숙이지 않아도 된다. 우리는 베트남 선수들이야. 최선을 다했으니 자부심을 가져라."]
지연, 학연, 유명세를 걷어내고 선수들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감독. 그리고 그런 감독에 대한 베트남 선수들의 믿음.
'쌀딩크'의 신화는 여기서 만들어진 게 아닐까요? 어쩌면 '쌀딩크'는 비단 베트남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절실한 존재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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