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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9 (일)

[이진숙의 휴먼 갤러리](10)‘나는 누구인가’ 끊임없이 되묻는 ‘근대적 개인’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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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브레히트 뒤러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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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화상이라는 용어도 없던 시대의 자화상

자화상이라는 용어도 없던 시대

자기 선언적 문구 써넣은 자화상

전설의 주인공이나 영웅이 아닌

개인의 유일무이성 표현한 ‘사건’


“내가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걸, 유일무이한 존재라는 걸 느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 오르한 파묵의 소설 <내 이름은 빨강>의 등장인물 에니시테는 두려움에 가득 차서 말을 이어갔다. 오랫동안 그가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던 두려운 고백이었다. 터키 술탄의 화가인 그가 젊은 날 베네치아를 방문했을 때, 그림을 좋아하는 한 부자는 집으로 그를 초대해 자신이 수집해 놓은 초상화 갤러리를 보여주었다. 신과 왕에게 바치는 그림만 그리던 이슬람 화가는 그곳에서 초상화들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초상화들은 자신이 “다른 사람과 다른, 유일무이한 존재라는 것을 느끼고 싶다”는 근대적인 생각을 하게 했기 때문이다.

도대체 에니시테는 무슨 그림을 봤던 걸까? 소설 속에는 특정 그림을 지칭하지 않고 막연히 베네치아의 초상화라고만 언급하고 있다. 아마도 이 당시 그려진 많은 르네상스 초상화들이 여기에 해당할 것이다. 그렇지만 내 머릿속에는 강렬하게 떠오르는 그림이 한 점 있다. <내 이름은 빨강>이 설정하고 있는 시간은 1519년인데 그보다 19년 전, 정확하게 1500년에 그려진 뒤러의 자화상이 바로 그것이다.

이 그림에서 인상적인 건 글자가 들어가 있다는 점이다. 한쪽에는 뒤러의 사인이, 다른 한쪽에는 “뉘른베르크 출신의 나 알브레히트 뒤러는 스물여덟 살의 내가 가진 색깔 그대로를 그렸다”는 문구가 있다. 당시에는 사인을 하는 것도, 이런 자기 선언적 문구를 써넣는 것도 흔한 일이 아니었다.

아직 자화상이라는 용어도 없던 시대에 그려진 자화상. 이것은 단순한 그림이 아니라 하나의 세계사적인 사건이다. 근대사회로 진입하는 데 중요한 지표 중 하나가 개인의 등장이다. 그리고 개인의 핵심은 자의식이다. 신분에 의한 존재 규정이 아닌 한 인간이 자기 스스로에 대해서 갖는 판단, 기대 등이 모두 포함된 것이 자의식이다.

자화상을 포함한 초상화라는 장르의 탄생은 그 자체로 근대적인 일이다. 초상화가 등장하기 전까지 그림의 주인공은 모두 신화나 역사 속에서 나왔다. 인간 중에서 그림의 주인공들이 될 수 있던 경우는 콘스탄티누스 대제나 알렉산더 대왕처럼 전설적인 왕들이었고, 그들을 그린 그림은 초상화가 아니라 역사화라고 불렸다. 초상화는 전설의 주인공도 영웅도 아닌, 아직 역사적 평가가 끝나지 않은 인물이 그림의 주인공이 되는 놀라운 순간이었던 셈이다. 그것을 가능하게 했던 것은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것, 유일무이한 존재”라는 자각 덕분이었다. 역사적으로 위대하지 않아도 바로 그 “다름” “유일무이성”이 그 인물을 그려질 가치가 있는 존재로 만들었던 것이다.

■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답하기

왕도 귀족도 아닌 스물여덟의 젊은 청년 뒤러가 그림의 주인공으로 가능했던 건 그의 남다른 재능 덕분이었다. 뒤러가 열세 살에 수정이 불가능한 은필로 그린 자화상을 보면, 그림 속 앳된 소년이 이 그림을 그렸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 금은세공인이었던 그의 아버지는 아주 일찌감치 아들의 재능을 알아봤고, 지원을 아끼지 않으며 아들이 화가의 길을 걷도록 도왔다.

그리고 이 청년 화가는 삶의 중요한 순간순간에 자신을 기록했다. 가령 스물두 살이 되었을 무렵, 결혼을 앞둔 뒤러는 아름다운 긴 금발을 가진 멋진 섬세한 꽃미남으로 자신을 그렸다. 한 손에는 에린지움 꽃을 들고 있다. 에린지움에는 강장제 역할을 하는 성분이 들어 있다고 알려져 있으며, 그 꽃말은 뜨거운 사랑이다. 뒤러의 결혼 상대는 아그네스 프라이라는 여성으로 어머니 쪽이 뉘른베르크의 귀족 가문으로 알려져 있다. 귀족 혈통을 가진 여성과의 결혼은 중인 신분의 뒤러에게 자존심을 채울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이 그림에는 화가의 머리 위쪽에 “나의 사명은 별 속에 새겨진 것과 같으니”라는 문구가 써 있다. 이것은 신부에게 전하는 말인 동시에 자신의 미래에 대한 암시이기도 하다. 또한 목표가 있고 그것에 도달하기 위한 노력의 의미가 담겨 있다. 이는 ‘발전’이라고 부를 수 있으며 오직 근대적인 시간관에서만 나온다. 현세를 경시하고 영원불변한 내세를 꿈꾸는 중세인들은 발전이라는 변화하는 시간을 이해하지 못했다. 영원한 것이란 동일한 것의 무한반복을 의미했다. 반복되는 절기에 따라 생산하는 농업적인 감수성이다. 그러나 뒤러의 문구는 현재와 미래의 모습을 구별한다. 미래로 이끌 ‘사명’이 있고, 사명 완수의 결과는 변화이다. 이는 신분에 의해서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노력으로 성취한 업적에 의해서 평가받는다는 것을 전제한다. 더불어 이때의 ‘자아’는 영원하지 않고 시간성을 함축한다. 어제의 나는 오늘의 나가 아니다. ‘뒤러’가 한 번 그려지고 마는 게 아니라 계속해서 그려질 가치가 있는 존재였던 것도 이 때문이다.

1498년, 스물여섯 살의 뒤러는 상당히 유명한 작가가 되어 있었다. 당시 퍼져 있던 종말론적인 분위기가 집약된 판화집 <묵시록>이 대중적인 인기를 끌면서 그에게 국제적인 명성을 가져다주었다. 같은 해에 그려진 자화상에서는 그런 국제적인 위상에 걸맞게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이탈리아인보다 더 이탈리아인 같은 복장의 그가 등장한다. 그렇다면 독일인인 뒤러는 왜 자신을 이탈리아인처럼 그렸을까? 그는 당시 유명인이기는 했지만, 평지에서 갑자기 솟아난 봉우리 같은 사람으로 여겨졌었다. 르네상스 시대에 이탈리아 화가들이 서로 크고 작은 봉우리가 되어 거대한 창조자의 산맥을 이뤘던 것과 비교해보면, 그는 르네상스의 본거지와 거리가 먼 북유럽 출신이었던 것이다. 자신이 독일의 변방 출신이라는 점은 그에게 자신이 누구인지 질문하고 그에 대한 답을 끊임없이 종합할 것을 요구했다. 이탈리아인 복장도 이런 연장선상에서 나온 것이다.

1506년 뒤러는 친구 피르크하이머에게 보낸 편지에서 “나는 누구인가. 나는 신사인가, 나는 기생충인가?”라고 썼다. 뒤러는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질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자기 자신에 대한 평가와 사회적인 평가 사이의 큰 낙차는 자신에 대한 회의와 성찰을 낳을 수밖에 없었다. 질문에 대한 답은 저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가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는 점이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이 질문 자체가 근대적인 삶의 본질이다. 도서관의 수많은 책들과 미술관의 모든 작품들은 이 단순한 질문에 대한 길고 긴 응답이다. 우리는 이에 대한 답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살아가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답을 구하기는 어렵다.

■ 신의 형상을 한 인간

화가의 창조는 신과 다름없다는

르네상스 시대 철학 담론을 함축

자신을 천상의 존재로 그리고자

신의 도상으로 쓰였던 정면상에

좌우 대칭의 준수한 남자로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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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러가 도달한 자아에 대한 답은 참으로 심원하고 위험하며 도발적이다. 뒤러의 1500년 자화상은 당대의 철학적 담론을 한 장의 그림으로 함축했다. 이 자화상의 핵심은 정면 초상화라는 점이다. 중세 미술에서 정면상은 신의 도상이었다. 중세 화가들은 자신이 그림을 그리면서도 이미지를 창조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실제로는 창조하면서도 예술가는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전승되어온 이미지를 반복 카피한다고 생각했다. 신의 이미지는 우리에게 현현할 수 있을 뿐이다. 종교가 지배적인 사회에서 인간이 신의 이미지를 창조한다는 생각 자체가 불경스럽다고 여겨지던 시대였다. 그 옛날 예수가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에 오를 때, 베로니카라는 여인이 예수의 얼굴을 자신의 스카프로 닦아주었다. 이때 스카프에 예수의 얼굴이 정면으로 찍혔다고 여겨졌고, 이것이 예수 이미지의 기원이 됐다. 스물여덟 살의 한 청년은 그의 의지에 따라 지금 자신을 천상의 존재, 신의 도상으로 표현하는 데 도전했던 것이다. 자신을 ‘유일무이한 존재’일뿐더러 더 나아가 ‘이마고 데이(imago dei·신의 형상)’를 한 존재로 표현하고 있다.

“하느님이 자기 형상 곧 하느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창세기 1장 27절)했다. 신이 자신과 닮은 모습으로 인간을 창조하였기에 인간의 아름다움은 곧 신의 아름다움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인간은 겉모습만 신을 닮은 것이 아니다. 르네상스 시대의 신플라톤주의 인문학자 피코 델라 미란돌라가 쓴 <인간의 존엄성에 관하여>에 따르면, 하느님이 아담을 창조한 다음 이렇게 말한다. “나는 너를 천상의 존재로도 지상의 존재로도 만들지 않았다. 나는 너를 정하지 않았다. 그것은 네 마음대로 네 자신을 형성하는 사람이 되고, 네 힘으로 네가 선호하는 모습으로 네 자신을 만들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따라서 너는 선택에 따라서 동물의 수준으로 하락할 수도 있고, 너의 의지에 따라서 천상의 존재가 될 수가 있다.” 인간의 자유의지의 중요성에 대한 설파다. 뒤러의 자유의지는 스스로를 ‘천상의 존재’로까지 밀어붙였다. 이미 1435년 알베르티는 자신의 <회화론>에서 화가의 창조행위는 신의 창조행위와 다름없으며, 최상의 지식을 가진, 최상의 존경을 받는 인물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논리에 따르면 왕도, 교황도 아닌 화가가 신에 가장 근접한, 신의 형상을 취할 수 있는 유일한 인간이다.

내가 왜 이 세상에 존재하는지 알기 위하여 신의 형상으로 그려진 1500년 자화상 속의 뒤러는 좌우 대칭에 어긋남이 없는 준수한 남자다. 르네상스 시대의 이상적인 인간형은 조화로운 인간이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그린 ‘비트루비우스적 인간’은 이상적인 비례를 가진, 대우주의 조화로운 원리를 압축시킨 소우주로서의 인간이었다. 반면 뒤러의 자화상은 비록 신의 형상을 하고 있더라도 뒤러라는 한 개인을 그린 것이다. 보편적 인간이라는 것은 이상화된 관념이고, 결국 실제 인간은 육체를 가진 개인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다. 정신은 무한을 꿈꿀 수 있지만 육체는 유한하다. 1500년의 자화상에는 북유럽 화가 특유의 세밀함으로 머리카락 한 올 한 올이 섬세하게 그려졌고, 검버섯 같은 피부의 오점도 그대로 그려져 있다. 디테일에 집착하는 것은 ‘자신을 객관화하려는 태도’의 일환이다. 그리고 그렇게 바라본 자신은 분명 육체라는 한계 속에 갇혀 있다.

중년엔 쇠락한 자신의 몸을 그리며

근대적 삶이란 어떤 것인지 말한다

자유의지를 가진 개인의 의무는

자기 갱생의 노력과 분투 속에서

끝없이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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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9년 서른일곱 살의 뒤러가 그림 속에 다시 등장했다. 좀 여위었지만, 강단진 몸을 가진 누드 자화상으로. 당시 서른일곱이라는 나이는 중년으로 여겨졌다. 거울을 바라보며 그렸을 뒤러의 시선은 우리를 불편하게 바라본다.

37년을 최고의 화가로 살았지만, 그는 아직 답을 찾지 못한 것 같다. 결국 신처럼 아름다웠던 젊은 시절은 지나갔고 시간은 그에게 서서히 쇠락의 고통을 알려주고 있다. 여전히 잘나가는 화가였지만, 서른일곱의 그는 다시금 질문 앞에 서 있었다. 시간은 모든 것을 해명해주는 것이 아니라 더 복잡한 질문을 안겨주고 있다. <내 이름은 빨강>의 에니시테가 르네상스 초상화를 보면서 깨달은 점은 “그들처럼 그림을 그리기만 하면 내가 왜 이 세상에 존재하는지 더 잘 알게 될 것 같았다”는 것이었다. 뒤러가 자화상을 지속적으로 그린 이유도 바로 이것이었을 것이다.

실제로 뒤러는 훗날 “훌륭한 화가라면 내적으로 아주 독창적이어야 하며 영원히 살아남으려면 항상 뭔가 새로운 요소를 만들어야 된다”고 말했다. 자유의지를 가졌다는 것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뜻이지만, 그만큼 불안의 엔트로피가 증대되었다는 의미도 있다. 자유의지를 가진 개인이 해야 하고, 또 할 수 있는 일은 끊임없는 자기 갱생의 노력과 분투 속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확증하는 일이다.

16세기 초반의 열렬한 자아 탐험가 뒤러. 그가 남긴 자화상은 스스로의 삶을 만들어 나가는 근대적인 개인이 어떤 존재인가를 보여준다.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전 지구적인 표준화의 시대가 지난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유일하고 진정한 삶의 과제는 “나 자신이 되라(Be myself)”이다. 이 과제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끊임없는 질문의 토대 위에서만 수행될 수 있다. 나는 나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것이 근대적 삶의 가장 중요한 윤리이다. 우리의 삶은 정말 세상을 떠날 때까지 끝나지 않는다. 허약하고 허약해 순식간에 나락으로 빠질 수밖에 없는 우리는 매일 나는 누구이며, 나답게 제대로 살고 있는가를 스스로에게 되묻기를 멈추어서는 안 된다.

■ 어디에서 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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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도 미술관 : 본문에서 소개한 뒤러의 1493년 작 자화상은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스페인 마드리드의 ‘프라도 미술관’에서도 뒤러가 1498년에 그린 자화상을 비롯해 다른 화가들의 자화상을 다수 볼 수 있다.

■ 필자 이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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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독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러시아 여행을 하며 트레차코프 미술관에서 만난 작품들에 큰 감명을 받아 미술의 세계로 뛰어들었다. 모스크바의 러시아 국립인문대학 미술사학부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롤리타는 없다 1, 2> <시대를 훔친 미술> <위대한 미술책> 등 저서가 있다.


<이진숙 |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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