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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30 (월)

[말글살이] 말과 서열 / 김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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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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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하수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어딘가 더 높은 곳으로 가게 되면 올라간다고 하고 반대로 낮은 곳으로 이동하면 내려간다고들 한다. 그런데 위치의 높낮이가 아닌 사회적 혹은 심리적인 높낮이를 염두에 두고 하는 말도 있다. ‘서울에 올라간다’든지 ‘부산에 내려갔다 온다’든지 하는 표현들 말이다. 어느 한 지점이 사회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우월한 위치에 있다는 것을 드러낸다.

종종 지도의 북쪽을 위쪽으로, 남쪽을 아래쪽으로 말하기도 한다. “광주에서 대전으로 올라갔다가 대구로 내려가서…” 하는 말은 지도에 나타난 지점을 염두에 둔 표현으로 그 까닭이 어느 정도 이해는 된다. 그러나 수도나 도청 소재지 등처럼 한 지역의 행정적인 서열에 맞추어서 오르내림을 드러내는 것은 마땅치 않다.

그나마 한동안 많이 쓰던 ‘상행선, 하행선’이란 말이 요즘은 별로 쓰이지 않는 것 같아 퍽 다행이다. 최근에는 “대전에서 천안 방향 15㎞ 지점에서” 하는 표현으로 ‘상행, 하행’과 같은 단어를 피하고 있다. 우리의 언어 사용 태도가 과거보다 좀 나아진 것이다.

오르내림만이 아니라 드나듦의 표현도 문제다. ‘본사에 들어갔다가 나온다’든지 ‘국회에 들어가서…’ 하는 표현도 거북스럽기 그지없다. 대개 상급 기관이나 우월한 기관에 드나들 때 사용을 한다. 머리카락만한 우월함이나 서열까지도 이렇게 언어 속에 촘촘히 박혀 있는 것을 보면 숨이 막힐 지경이다. 어떤 때는 특정한 외국에 갈 때도 들어간다는 말을 사용할 때가 있어서 마음을 더욱 불편하게 한다.

별것 아닌 것 같아도 언어에 박혀 있는 권위주의나 위계질서의 못 자국을 의식적으로 지워나가야겠다. 워낙 오랜 세월 우리한테 인이 박인 말들이어서 익숙하기는 하지만 우리 사회의 답답한 부분을 더욱 강고하게 만드는 낡은 사례들이다. 작심하면 그리 어렵지 않게 극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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