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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30 (월)

[이승욱의 증상과 정상] 죽어야 사랑받는,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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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한겨레

이승욱
닛부타의숲 정신분석클리닉 대표


노회찬 없는 세상이 빈 구멍 난 것같이 허전하다. 개인적 친분도 전혀 없고, 그저 집회 현장의 연단에 올라오는 그분을 가끔 본 적 말고는 직접 대면한 적도 없는 사이지만, 그분이 이 세상에 없다는 것이 참 슬프고 아프다.

평생 우리를 위해 대신 싸워주고, 대신 앞장서 맞아주고, 같이 아파하고 힘겨운 우리가 힘낼 수 있도록 유쾌하게 웃겨주었다. 그런 그분이 훨씬 더 오래오래 그렇게 살아계신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래서 그분이 원하는 소수자도 약자도 소외된 이도 없는 세상이 만들어지는 것을 생전에 볼 수 있었더라면 얼마나 기뻐하셨을까? 이제 다시는 노회찬을 볼 수가 없다는 것이 황망하지만, 그분이 평생 원했던 세상을 보지 못하고 가셨다는 사실은 더 낙망스럽다.

뉴스를 보고 내 근거지에서 멀지 않은 곳에 빈소가 차려졌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문상을 가지 않았다. 루브르박물관의 모나리자 초상이 도난당했을 때, 모나리자 그림의 사라진 자리를 보기 위해 몇날 며칠 동안 박물관 정문까지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섰다고 한다. 모나리자의 부재를 확인하기 위해 길게 줄을 선 그들 중에는 예전에 모나리자 초상을 한번도 본 적 없는 사람이 더 많았단다. 돌아가시고 나서야 그분의 빈자리를 찾는 것이 어리석게 여겨지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살아생전 그를 위해 내가 한 일이 하나도 없는데 망자의 빈소에 회한의 눈물 따위가 무슨 소용이랴 싶었다.

애도란 부재의 현장을 확인해나가는 고통스러운 경험이다. 이제 소수자와 약자, 밀려난 자와 이름도 목소리도 없는 자들이 삶을 회복하려는 그 현장에서 더 이상 노회찬을 볼 수 없다. 기가 차고 소름 돋는 정치인들의 추잡하고 교활한 행태를 촌철살인의 비유로 한방에 기절시켜버리는 유쾌한 독설가 노회찬도 만날 수 없다. 민감한 정치적 사회적 사안으로 토론이 벌어질 때, 저쪽에서 반쯤 정신 나간 토론자가 나오더라도 노회찬이 우리 편으로 나오면 허리띠 풀고 편하게 실실 웃으며 그 토론을 볼 수 있었는데, 이제 그럴 수가 없게 되었다.

단정한 입술에 살짝 힘을 주고 첼로를 켜는 노회찬을 한번 더 볼 수 있다면, 당신의 연주를 들을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셀 수 없이 당해야만 했던 핍박과 고난의 날들에, 때로는 동지들에게 배신당하고 대중으로부터 비난받을 때, 가슴 아파하던 당신에게 우리의 미소라도 한번 보내줄 수 있었다면, 우리가 손이라도 한번 잡아줄 수 있었다면 좋았을 것을, 당신이 힘들었던 그때 거기에 우리가 부재했던 것이 이리도 안타까울 수가 없다.

모든 훌륭한 아버지는 죽어야 사랑받는 것 같다. 힘겨운 일을 앞장서 맡음으로 자애로움을 대신하고, 낮은 곳에 먼저 앉음으로 권위를 증명하고, 아무도 하지 않는 일 가지 않는 곳에 나서기를 주저하지 않음으로 용맹스러운, 더하여 마음 깊이 소년의 정서로 노래할 줄 아는 노무현 같은, 노회찬 같은 아버지들은 죽어야 사랑받는 것 같다.

힘없는 자와 밀려난 자, 얼굴도 목소리도 없는 수많은 이의 아버지 노회찬. 당신은 수많은 약하고 아름다운 이들의 아버지이며 수많은 맑고 가여운 아이들의 할아버지입니다. 우리는 멈추지 않고 앞으로 당당히 나아갈 것입니다. 당신이 원하는 대로 서로를 사랑하고 아끼며 보듬고 연대하며 말입니다. 더 많은 노회찬이 이 세상에 태어나도록 힘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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