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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30 (월)

국제분쟁 해결에 평생 헌신한 `미스터 유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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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2004년 코피 아난 전 총장이 유엔을 찾은 당시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과 악수하고 있다. [사진제공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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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사상 첫 흑인 수장이자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코피 아난 전 유엔 사무총장이 18일(현지시간) 세상을 떠났다. 향년 80세.

'코피 아난 재단'은 이날 트위터를 통해 "가족과 재단은 매우 슬프게도 아난 전 총장이 짧은 투병 끝에 별세했다는 소식을 알린다"고 발표했다. 다만 정확한 사인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다. 미국 CNN 등 외신에 따르면 아난 전 총장은 스위스 베른의 한 병원에서 아내와 세 자녀가 지켜보는 가운데 평화롭게 숨을 거뒀다.

아난 전 총장은 유엔 말단 평직원에서 최고봉인 사무총장에까지 오른 입지전적 인물이다. 1938년 영국 식민지였던 가나 쿠마시에서 태어난 아난 전 총장은 가나 과학기술대에 다니다가 미국으로 건너가 미네소타주 매칼레스터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명문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1962년 세계보건기구(WHO) 예산·행정담당관으로 유엔에 입성한 뒤 나이로비, 제네바, 카이로, 뉴욕 등 유엔 기구에서 풍부한 행정 경험을 쌓았다. 1993년 부트로스 부트로스 갈리 당시 사무총장에 의해 유엔평화유지군(PKO) 담당 사무차장으로 발탁됐다. 그가 유엔에 첫발을 들인 지 35년 만인 1997년 1월 직원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사무총장 자리에 올랐다.

아난 전 총장은 역대 최고 유엔 사무총장으로 불린다. 거의 평생을 유엔에 몸담으며 탈냉전 이후 확대되는 국제분쟁 해결과 세계 평화 실현에 헌신해 '미스터(Mr.) 유엔'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특히 1990년대 르완다 집단 학살과 보스니아 스레브레니차 대량학살 등 끔찍한 지역분쟁을 경험한 아난 전 총장은 유엔 등 국제사회가 시민을 보호할 책임이 있다고 주장하며 국제사회에 적극적인 역할을 주문했다. 이에 따라 그의 재임 중 유엔 위상이 크게 높아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유엔 내부 사정을 꿰뚫고 있던 그는 취임 당시 12개에 달하던 유엔 사무국 조직을 5개로 통폐합했고, 6000명에 달하던 유엔본부 직원을 1000명 정도 줄이는 개혁에 나섰다. 또 2015년까지 빈곤 퇴치, 질병 예방 등 구체적 목표를 담은 새천년개발계획을 제시했다. 특히 아프리카에 대한 선진국의 지원을 촉구했다.

아난 전 총장은 대중적 친화력과 강대국 지도자 앞에서도 의연하며 카리스마 있는 모습, 뛰어난 언론 대응력 등으로 외교가에서 인기가 높았다. 2001년에는 세계 평화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100주년을 맞은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현직 유엔 사무총장이 이 상을 받은 것은 아난 전 총장이 처음이었다. 2002년 사무총장 재선에 성공해 2006년 말 두 번째 임기를 마치고 물러났다. 퇴임 때 '최악의 경험'으로 일방주의 외교정책을 펼쳤던 조지 부시 미국 행정부의 이라크 침공을 강도 높게 비판했지만 끝내 막지 못했던 것을 꼽기도 했다.

그는 퇴임 후에 더 많은 인정을 받았다. 가나에서 대통령 후보로 출마할 기회가 있었지만 국내 정치 바람에 휩쓸리지 않고 '영원한 외교관'으로 남은 것. 스위스 제네바에 '코피 아난 재단'을 세워 유엔 사무총장으로서 '더 공평하고 평화로운 세상을 향해' 못다 이룬 꿈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했다. 2012년 시리아 사태 때 유엔 특사로 활동했다. 2013년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 뒤를 이어 세계 원로정치인 모임인 '엘더스(The Elders)' 회장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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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난 전 총장은 한국과도 인연이 깊다. 1998년 제4회 서울평화상을 받았고, 당시 김대중 정부 '햇볕정책'을 공개 지지했다. 북한 이슈에 관심이 많았던 만큼 평양 방문을 희망했지만 실현되지 못했다.

유엔의 큰 별이 지자 전 세계에서 애도 목소리가 이어졌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이날 성명을 통해 "아난 전 총장은 여러 면에서 유엔 그 자체였다"며 "그는 도처의 사람들에게 대화와 문제 해결을 위한 공간을, 더 나은 세계를 위한 길을 제공했다"고 강조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성명에서 "글로벌 문제에서 공동 해결책을 찾기 위한 노력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 상황에서 우리는 그의 목소리를 그리워할 것"이라며 애도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그의 헌신은 말할 것도 없고 문제 해결을 위한 차분하고 단호한 접근법을 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우리는 평화를 위해 고단한 길을 걸었던 친구를 잃었다. 분쟁이 있는 곳에 코피 아난이 있었고 그가 있는 곳에서 대화가 시작됐다는 것을 기억한다"며 고인을 추모했다. 이어 "그는 인류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헌신했고 항상 앞으로 나아갔다"며 "한반도 평화를 위한 그의 응원도 특별히 가슴에 새겨넣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반기문 전 사무총장도 "내 전임자인 아난 전 총장의 때 이른 죽음에 대해 그의 부인과 유족에게 전 세계인과 모든 유엔 동료와 함께 깊은 애도를 표한다"며 "유엔의 원칙과 이상을 지키려고 했던 그의 비전과 용기는 늘 존경받고 기억될 것"이라고 추모했다.

[임영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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