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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7 (금)

[연중기획-지구의 미래] '슈퍼 폭염' 시대…예보도 대책도 '헉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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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 폭염시대 근본처방 시급 / 예측 어렵지만 대책도 늦어 / 대기 흐름·바다 영향 매일 변화무쌍 / 석 달 전보다 한 달 전 예측 더 어려워 / 폭염 장기화 경고에도 대응 ‘미지근’ / 전기료 뒷북 인하… 온열질환 속수무책 / 맞출 수 없다면 대비하라 / 美·日 등 해외선 건강대응시스템 구축 / 열사병 등 매뉴얼 만들어 피해 줄여 / 기상청·복지부 관할 이원화도 장애물 /“온열질환·전기료… 종합적 접근 필요”

세계일보

여름철 더위가 꺾인다는 처서(23일)가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올여름 더위가 순순히 물러날지는 두고 볼 일이다.

올해 못지않게 더웠던 2016년 당시 처서에도 아침 26도, 낮 33도(서울 기준)로 열대야와 폭염에 시달렸다. 그리고 올해도 예년의 한여름 무더위가 펼쳐질 공산이 크다.

지구가 공전을 하는 한 제아무리 질긴 여름이라도 결국 가을에 자리를 내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지구가 계속 더워지면 여름은 가을 풍경마저 바꿔버릴지 모른다. 올여름 폭염을 단지 ‘유난히도 더웠던 그해 여름’으로 기억하고 넘길 수 없는 이유다.

40도 더위가 더는 낯설지 않은 ‘슈퍼폭염 시대’, 폭염 예보와 대책은 방향을 잘 찾아가고 있는지 짚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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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치기 소년’ 간신히 면한 장기 예보

예측을 다룬 영화 중에 ‘마이너리티 리포트’가 있다. 범죄가 언제 일어날지 내다보고 사전에 예방한다는 내용이다. 이런 황당무계한 시스템이 2054년 미국 워싱턴에 어떻게 자리잡았는지 영화는 자세히 다루지 않지만 아마도 ‘정확한 예측’과 ‘알면 대처할 수 있다’는 두가지 전제가 충족됐기 때문일 것이다.

폭염도 정확히 내다볼 수 있을까.

기상청 장기예보는 1개월짜리와 3개월짜리가 있다. 둘 다 해당 기간에 기온과 강수량이 평년과 비교해 어떨지 확률적으로 보여준다.

지난 5월 기상청이 발표한 여름철 예보에서 7월 평균기온은 평년과 비슷할 확률이 50%였고, 낮거나 높을 확률은 각각 20%, 30%였다. 8월 예상 기온은 평년보다 낮음:비슷:높음의 비율이 각각 20%:40%:40%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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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상청은 당시 브리핑에서 “기온이 평년보다 높다고 해도 기록적인 폭염 등 극한 기상이 발생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고 부연했다.

요컨대 올여름 기온이 평년보다 높을 가능성은 많아야 40%, 설령 높다하더라도 ‘슈퍼폭염’이 찾아올 줄은 몰랐던 것이다.

매주 발표되는 1개월 전망에서도 한결같이 ‘평년기온보다 비슷하거나 높겠다’는 ‘온건한 문구’가 대부분이다.

‘지구온난화 시대니까 평년기온보다 높겠다고 대충 찍어도 80점은 맞겠다’ 싶지만, 슈퍼컴퓨터와 예보관 분석까지 동원해서 나온 장기예보의 예측률은 기대 이하다.

확률예보의 정확도를 검증하는 대표적인 방법으로 상대조작특성(ROC·relative operating characteristic)이 있다. 예보의 오경보율 대비 적중률을 비교하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예보가 틀린 경우가 더 많냐, 적중한 예보가 더 많냐를 따진다. ROC 값이 0.5 이상이면 예보가 맞은 적이 더 많다는 뜻이고, 백발백중이라면 1의 값을 갖는다.

세계일보가 확보한 기상청의 확률예보 ROC 검증결과를 보면, 3개월 기온 전망은 0.59∼0.67, 강수량 전망은 0.53∼0.60을 기록했다. 1개월 전망은 3개월 전망보다 더 낮아서 기온은 0.51∼0.64, 강수량은 0.49∼0.57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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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보에 관한 지식이 없더라도 먼 미래보다는 가까운 미래가 맞추기 쉽다는 건 상식이다. 1개월 예보의 경우 예보시점으로부터 3주 뒤 기온을 예측했을 때는 ROC값이 0.60∼0.72로 그나마 높았지만, 6주 뒤 기온을 예측했을 때는 예측력이 0.47∼0.57로 뚝 떨어졌다.

1개월 강수량 전망과 3개월 전망에서는 값이 들쑥날쑥해 이런 상식적인 패턴도 잘 나타나지 않았다.

ROC값이 0.5∼0.6대 언저리에 머물렀다는 것은 기상청 장기예보가 간신히 ‘양치기 소년’ 수준을 면했다는 의미다.

그런데 우리나라만 그런 것은 아니다. 세계기상기구(WMO) 장기전망 검증시스템 홈페이지에 올라온 결과를 보면, 영국 기후예측 모델은 0.52∼0.64(한 달 뒤 북반구 여름 기온·강수 예측), 미국 모델은 0.51∼0.54, 캐나다 0.54∼0.64, 일본 0.52∼0.68로 대동소이하다.

예보관 분석까지 더해진다 해도 0.7을 훌쩍 웃돌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게 기상청을 비롯한 기상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실제 영국 기상청은 2009년 여름과 2009∼2010년 겨울 예보가 완전히 엇나가 집중공격을 받자 2010년 3월 계절전망 대국민서비스를 중단했다. 지금도 영국 언론을 통해 계절전망 기사가 나오고는 있지만, 전문가용 자료를 활용한 것이다.

김동준 기후예측과장은 “장기예보, 특히 1개월 예보는 장기 기후에 영향을 미치는 바다와도 관련성이 떨어지고, 매일매일의 대기 흐름으로도 예측하기 힘들어 가장 예측하기 어렵다”며 “전세계 기상학계가 갖고 있는 문제이자 고민”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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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개월 예보로 폭염지도를 만든다고요?

장기 폭염예측이 몰라서 못하는 경우라면, 폭염 대책은 알아도 못하는 경우에 속한다.

올여름 폭염은 지난달 중순부터 시작됐다. 그런데 행정안전부가 긴급폭염대책본부를 꾸린 건 지난달 말, 이를 범정부 폭염대책본부로 격상한 건 지난 3일이다. 서울 등 전국 35곳에서 ‘114년 만에 최악의 무더위’가 나타난 지 이틀이 지나서다. 또 폭염이 4주차에 들어선 지난주에야 여론에 밀려 한시적 전기료 인하가 발표됐다.

정부만 늑장을 부린 건 아니다. 서울시교육청은 14일 각급 학교에 폭염으로 개학을 미룰 것을 권고했는데, 이미 200개 가까운 학교가 개학을 하고난 뒤다.

장기예보와 달리 단기예보에서는 꾸준히 올여름 폭염 장기화를 예고했지만, 대책은 한걸음씩 늦은 셈이다.

박종길 인제대 교수(환경공학)는 “지금은 대책이라기 보다는 대응에 가깝다”며 “극단적인 더위가 거의 매년 찾아오는데도 매년 온열질환자가 늘어난다는 건 예방 차원의 대책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뜻”이라고 비판했다.

질병관리본부가 집계한 2013년 온열환자는 1189명(신고기관당 2.74명), 2016년 2125명(〃4.0명)을 기록했다. 2013년과 2016년은 둘 다 당시 ‘1973년 이후 가장 더운 8월’을 맞은 해다. 지난해에는 기록적인 무더위가 아니었는데도 1574명(〃2.98명)이 열탈진·열사병 등으로 응급실을 찾았고, 올해는 지난 13일까지 무려 4025명(〃7.79명)이나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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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기 예보를 알고도 뒷북 대응에 나서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반대로 불확실한 장기 예보를 갖고 설익은 정보를 제공하기도 한다.

지난 1일 환경부가 발표한 폭염 취약성 지수가 그렇다. 환경부는 1개월 기온 전망을 활용해 처음으로 이번 달 폭염 취약성 지수를 만들어 공개했다. 첫 시도였다는 점에서 의미를 둘 수 있지만 거기까지다.

불확도가 높은 1개월 예보로 시군구 단위의 취약성 지수를 만든 사례는 전세계적으로 찾아보기 힘들다. 환경부 발표에서는 가장 취약한 곳이 전라도 지역에 집중됐지만, 이달 질병관리본부 온열질환자 집계에서는 경기도가 압도적으로 많고, 서울, 충남, 경남이 뒤를 잇는다.

기상 예측의 불완전성이라는 같은 문제를 안고도 외국의 대처방법은 다르다.

채여라 한국환경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등이 펴낸 ‘국가 리스크 관리를 위한 기후변화 적응역량 구축·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기후변화대응을 위한 정부간 패널’(IPCC) 제5차 평가보고서는 기후변화 자체가 위험요소가 아니라 사회 시스템이 핵심이다. 미국 시카고는 1995년 폭염으로 약 700명의 초과사망자(하루 평균 사망자 수를 초과한 사망자 수)가 발생했지만, 폭염건강대응시스템 구축 후인 1999년에는 더 심한 폭염에도 초과사망자가 6분의 1(114명)로 줄었다.

중국 상하이에서도 1998년 폭염 때 475명이었던 초과사망자가 고온건강경보시스템 운영 후인 2003년에는 폭염지속기간이 더 길었는데도 5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

미국과 일본 기상청은 날씨를 확인하며 대처요령도 알 수 있도록 유도한다.

미 해양대기청(NOAA)의 경우 홈페이지에 별도의 페이지를 마련해 고온, 토네이도, 홍수 등 여름철 위험기상에 대해 상세히 안내하고 있다. 온열질환으로 위기를 경험한 시민들의 이야기까지 소개돼 있다.

일본 기상청 역시 열사병에 대한 구체적 대응요령과 환경성이 마련한 매뉴얼을 올려두었다.

날씨 예보는 기상청, 온열질환 정보는 보건당국으로 칸막이를 쳐놓은 우리나라와 대조적이다.

폭염에서 ‘정확한 예측’과 ‘알면 대처할 수 있다’는 전제는 언제쯤 충족될 수 있을까.

박 교수는 “폭염을 이벤트로 생각하니까 근본적인 처방이 나오지 않는다”며 “온열질환 집계부터 전기요금 체계, 발전방식, 정보전달 방법까지 종합적으로 살피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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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년간 깨지지 않던 ‘魔의 40도’…지난 1일 4곳서 동시다발 경신

기상청 방재기상정보시스템의 온도 인덱스는 40도에서 끝난다. 우리나라 공식 관측에서 40.0도가 기록된 건 1942년 8월1일 대구가 유일했으니 40도란 우리나라 기온의 마지노선이었다. 정확히 76년 뒤인 지난 1일이 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1일 단 하루 새 홍천(41.0도), 북춘천(40.6도), 의성(40.4도), 양평(40.1도) 네 곳이 70년 넘게 깨지지 않던 대구 기록을 넘어섰고, 의성은 14일에도 40.3도로 역대 4위 기록을 달성했다.

15일에도 대전 39.4도, 부여 39.1도, 원주 38.8도 등 8곳에서 1위 기록이 나왔다. 지난 1일 서울 지역 1위 기록(39.6도)이 탄생한 지 2주 만에 또다시 신기록이 탄생할 뻔했다. 이날 서울 낮 최고 기온은 38.0도였다.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정부간 패널’(IPCC) 제5차 평가보고서는 우리나라가 온실가스를 감축하지 않으면 금세기 후반 폭염일수가 31.9일 발생할 것으로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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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14일 현재 전국 평균 폭염일수는 벌써 28.0일(같은 기간 역대 1위)에 달한다. 우리 손주 세대가 겪을 줄 알았던 재앙적 폭염을 ‘미리보기’ 하는 셈이다.

청주와 대전은 열대야가 26일째 지속되고 있다. 응급실 온열환자 수는 4025명에 이른다. 최근 3년간 폭염 관련 질환으로 진료를 받은 전체 환자 수는 응급실에서 보고한 환자 수 보다 6∼7배 많다. 이를 감안하면 올여름 적어도 2만여명이 더위 탓에 병원을 찾을 것으로 보인다.

폭염은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지난달 미국 캘리포니아주 데스밸리는 월평균 기온이 42.3도를 기록해 역대 가장 더운 달로 기록됐다. 지난해 6월 오만은 아침 최저기온이 무려 44.2도나 됐다. 한 달 뒤에는 중국 신장에서 50.5도가 찍혔다. 동북아 역대 최고 기온이다.

사상 최고 기온은 1913년 7월 미 캘리포니아주의 56.7도다. 2008년 중국에서 66.8도가 찍힌 적도 있지만 관측 오류 가능성이 제기돼 공식기록으로 인정받지는 못했다.

윤지로 기자 kornya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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