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어떤 생각일까"에 말문 막혀
대화와 거리 먼 아빠들 "TV나 틀어줘"
기분 따라 대응 다르면 아이 더 혼란
'아빠' 부르는데 감정 없이 '왜'…후회
"어떤 감정인지 맞춰보세요."
교실 앞 프레젠테이션 화면에 연예인, 할머니, 고양이 등의 다양한 표정 사진이 올라왔다. "기쁨" "삐침" "심심"….
기자는 웃으면서 답변했다. "그러면 우리 꼬마는 어떤 생각일까요?"
아이 사진과 함께 나온 질문엔 말문이 막혔다. 네 살 아들이 슬픈지, 졸린 지, 배고픈지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본 적이 거의 없어서다. '덜커덕 아빠' 기자, 첫 부모교육 받아보니
지난달 31일 진행된 부모교육에서 '아이의 감정을 알아보는 법'에 대해서 강의하고 있다. 정종훈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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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가족화가 되면서 많은 이들이 자녀와의 대화법, 교육 기법 등을 배우지 않은 채 '덜커덕 부모'가 된다. 백지상태의 부모는 자녀와 어떻게 시간을 보낼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지난달에는 초·중·고교생이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이 하루 '13분'이라는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의 설문 결과도 나왔다. 하지만 도움이 될 부모교육은 걸음마 수준이다. 지난해 건강가정지원센터 등에서 실시한 부모교육(여성가족부 소관)에 총 30만7365명이 참여했다. 이는 자녀와 함께 사는 가구의 5.5% 정도다.
지난달 31일 용산구청소년상담복지센터에서 열린 부모교육 참석자들이 강의 내용을 경청하고 있다. 이들은 중요한 내용을 노트 등에 필기하기도 했다. 정종훈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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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강사로 나선 전윤경 영등포구청소년상담복지센터장은 "아이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되 행동에는 명확한 한계를 둬야 하는데 쉽지 않다"고 했다. 평소 말을 듣지 않는 아들에게 '안 돼' '하지 마'라고만 소리쳤지 '왜' 그랬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지 않았다는 후회가 머릿속을 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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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ㆍ자녀 ‘소통’ 이것은 지키자
1. 아이는 부모와 닮았을 뿐, ‘똑같다’ 오해 말기
2. 지킬 박사와 하이드는 금물, 일관성이 중요
3. 윗물 맑아야 아랫물도 맑아, 부부간 소통 먼저
4. 쌍방향 ‘대화’와 일방향 ‘말’은 달라
5. 눈과 입이 전하는 감정 일치해야
6. 어른이 아이 수준에 맞춰 말해줘야
7. 대화도 타이밍이 중요, 몰아서 혼내는 건 문제
8. 대화 후 행동 변화는 조용히 기다려주자
9. 아이 감정을 지레 짐작하는 건 피해야
도움말 : 전윤경 영등포구청소년상담복지센터장
」2. 지킬 박사와 하이드는 금물, 일관성이 중요
3. 윗물 맑아야 아랫물도 맑아, 부부간 소통 먼저
4. 쌍방향 ‘대화’와 일방향 ‘말’은 달라
5. 눈과 입이 전하는 감정 일치해야
6. 어른이 아이 수준에 맞춰 말해줘야
7. 대화도 타이밍이 중요, 몰아서 혼내는 건 문제
8. 대화 후 행동 변화는 조용히 기다려주자
9. 아이 감정을 지레 짐작하는 건 피해야
도움말 : 전윤경 영등포구청소년상담복지센터장
"기분 좋을 때는 아이가 숙제 안 하고 TV 봐도 '이제 끄고 숙제해야지'라고 웃으면서 말해요. 그런데 기분이 안 좋은 날엔 아이가 매번 받아쓰기 80점 받다가 95점 받아도 '다 못 맞았잖아'라고 소리치죠. 그러면 아이들은 내 감정을 살피기 전에 엄마·아빠의 감정을 먼저 살피게 됩니다."
'화성에서 온 엄마, 금성에서 온 아이'도 금물이다. 전 센터장은 "신생아 때는 울음소리만 듣고도 배가 고픈지, 아픈 것인지 다 안다. 하지만 아이가 자랄수록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잊고, 잘 모르게 된다"고 설명했다. 아이가 어른 눈높이로 말하기 어려운 만큼 부모가 아이의 눈높이로 대화하는 게 더 좋지만 자칫 놓치기 쉽다는 것이다.
그 연장 선상에서 "학원 잘 다녀왔니" "숙제했니" 같은 질문만으로 대화를 나눈다고 착각하는 것도 불편한 진실이다. 아이들은 대화가 아닌 부모의 일방적인 말을 들을 뿐이다. 전 센터장의 설명을 들으니 평소 아들에게 하는 말이 '밥 줄까' '쉬하고 싶니' 'TV 틀어줄게' '이제 자야지' 정도인 게 떠올랐다.
한 어린이가 스마트 기기를 유심히 바라보고 있다. 소통에 서툰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스마트폰을 쥐여주거나 TV를 보여주는 걸로 시간을 보낸다. [중앙포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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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아빠’를 불렀는데 피곤하다는 이유로 소파에 누운 채 심드렁하게 ‘왜’라고 답했던 시간이 부끄러워졌다. "아이의 감정은 곧 내가 아이에게 보여준 감정이다. 감정은 학습·전염된다. 자기감정을 잘 들여다보고 존중받는 아이들은 타인의 감정도 잘 이해하니 사회 적응력이 높다"는 말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지난달 31일 용산구청소년상담복지센터에서 열린 부모교육 도중 강사가 올바른 감정 코칭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정종훈 기자 |
"예전에는 아프거나 힘들면 아이에게 무조건 소리를 질렀어요. 하지만 부모교육을 받은 뒤로는 '힘드니까 30분만 쉴게’라며 대화로 풀어가려고 해요. 아이도 그 전보다 많이 이해해주는 거 같아요. 요즘은 ‘내가 약 사다 줄까?’라며 먼저 말하죠."
아쉬운 점도 있다. 7세 딸 엄마인 한선영(39)씨는 "아버지 교육을 따로 많이 했으면 좋겠다. 남편도 시간 사정상 부모교육을 같이 듣지 못한다“면서 ”저녁ㆍ주말로 시간대를 늘려서 가족이 다 같이 참여할 수 있길 바란다. 성교육도 학교에서 하는 게 제한적인 만큼 추가로 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윤경희씨는 "정보 공유 차원에서 조부모 대상 교육도 활성화됐으면 한다"고 했다.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베이비페어를 찾은 한 할머니가 손녀를 유모차에 태워보고 있다. 부모교육은 단지 엄마를 위한 게 아니라 아빠, 조부모 등 아이를 키우는 모든 이들에게 도움이 된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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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교육 다음 날 기자는 아들이 다니는 유치원의 학부모 참관 수업을 마치고 소통 연습을 해봤다.
"아빠랑 시간 보내도 재밌지?"
아들은 손을 잡은 채로 크게 답했다. "응. 김밥도 만들고, 집도 만들고 좋았어. 오늘은 회사 안 가는거지?"
정종훈 기자 sakehoon@joongang.co.kr ■
「부모교육 프로그램은 어떤 게 있을까
-사례관리형 부모교육 '가족행복드림'
-찾아가는 부모교육
-소규모ㆍ지속적 부모교육 '어깨동무 부모교실'
-부모교육 특강 '대한민국 부모학교'
-가족캠프 내 부모교육(한국청소년상담개발원ㆍ국립평창청소년수련원)
-인터넷ㆍ스마트폰 중독 예방을 위한 부모교육
-전국 청소년상담복지센터 내 부모교육
* 부모교육 매뉴얼은 '여성가족부 홈페이지'(www.mogef.go.kr) 내 부모교육자료실에서 다운로드 가능
자료 : 여성가족부
」-찾아가는 부모교육
-소규모ㆍ지속적 부모교육 '어깨동무 부모교실'
-부모교육 특강 '대한민국 부모학교'
-가족캠프 내 부모교육(한국청소년상담개발원ㆍ국립평창청소년수련원)
-인터넷ㆍ스마트폰 중독 예방을 위한 부모교육
-전국 청소년상담복지센터 내 부모교육
* 부모교육 매뉴얼은 '여성가족부 홈페이지'(www.mogef.go.kr) 내 부모교육자료실에서 다운로드 가능
자료 : 여성가족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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