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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8 (토)

北 핵폐기·재건 지원에 천문학적 돈 드는데… 발 빼겠다는 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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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北정상회담 D-8]

트럼프 "우린 北의 이웃 아니다"

北이 제네바 때처럼 돌변할까봐 제재 완화·해제 여부만 결정하고

대규모 경제 원조 섣불리 안할 듯

"핵폐기만 직·간접 비용 21조원… 한국이 9조 부담할 것" 전망도

조선일보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대북 경제 지원 주체를 한·중·일로 못 박은 것은 지난달 13일 "미국인의 세금으로 북한을 지원할 수는 없다"고 한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 발언의 연장 선상에 있다. 당시 폼페이오 장관은 "대북 제재를 해제해 미국의 민간 자본이 북한으로 흘러들어 갈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미국이 북한 비핵화와 보상 비용을 부담하지 않고 주변국에 넘길 경우 우리 정부가 상당 부분을 떠안을 수밖에 없다. 특히 비핵화와 보상 지원에 수십조원에서 100조원 이상이 들 것이란 전망까지 나오는 만큼 향후 국제적 논란이 빚어질 가능성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발언은 '미국이 한국·일본의 안보 비용을 대주고 있다'는 인식과 관련 있다. 그는 대통령 후보 시절부터 한국·일본을 '안보 무임승차국'으로 규정했다. 현재 진행 중인 주한 미군 방위비 협상에서도 "한국의 분담 비율을 획기적으로 높여야 한다"는 입장이다.

미 연방정부의 재정 적자가 연 8000억달러(약 860조원)에 달하고 있어 현실적으로도 대북 지원과 관련해 미 의회와 여론을 설득하기 힘들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이 명확한 '선 긋기'에 나섰다는 분석이다. 그는 지난달 22일 한·미 정상회담에서도 "한·중·일 3국 모두 북한을 도와 북한을 위대한 국가로 만들기 위한 아주 많은 지원을 약속하고 있다"고 했다.

"핵 폐기 비용까지, 천문학적 금액 부담할 수도"

향후 북한의 비핵화 및 보상 비용이 얼마나 될지는 정확히 추산하기 힘들다. 권혁철 국민대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북핵 폐기에 드는 직접 비용 50억달러를 비롯해 북한 비핵화에 10년간 총 200억달러가 드는 것으로 추산됐다. 권 교수는 "이 중 80억달러(약 9조원)를 한국이 부담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국토연구원은 2013년 북한의 노후 인프라를 신설·교체하는 데 44조원가량이 들 것으로 분석했다. 금융위원회는 2014년 "북한의 철도·도로·통신·전력 등 인프라 구축에 20년간 약 150조원이 들 것"이라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4·27 남북 정상회담에서 '한반도 신경제 구상' 자료가 담긴 USB(이동식 저장장치)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전달했다. 이어 남북은 지난 1일 고위급 회담에서 향후 철도·도로 연결 사업 등을 본격 논의하기로 했다.

우리 정부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천문학적 금액을 부담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한 외교 소식통은 "남북 경제 협력 방식의 지원금뿐만 아니라 향후 북한 비핵화에 들어가는 제반 비용까지 우리가 떠안아야 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당장 비핵화 초기 단계에서 북한 핵시설 반출·사찰에 드는 비용부터 논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美 제네바 때처럼 "당사자 부담" 강조 가능성

트럼프 대통령은 향후 북한과 비핵화 협상을 계속하면서도 비용 문제와 관련해선 '당사자·인접국 부담 원칙'을 강조할 것으로 보인다.

1994년에도 미국과 북한의 제네바 합의 이후 북한 경수로에 총 15억7500만달러가 투입됐다. 그런데 이 중 73%(11억4600만달러)를 한국이 부담했다. 미국은 매년 중유 50만t을 제공하기로 하고, 추후 이마저도 한·일에 부담해 달라고 요구했다. 북한은 제네바 합의를 파기한 뒤 2003년 10월 현장의 모든 장비·물자 반출을 전면 금지한 바 있다.

이번에도 분담 비율과 관련해 비슷한 상황이 반복될 가능성이 있다. 특히 미 의회에서는 북한이 언제든 비핵화 합의를 뒤집을 수 있다고 보는 만큼 섣불리 비핵화 비용 등을 부담하지 않으려 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북한 입장에서도 미국이 제재만 풀어주면 당장 중국과 러시아·한국의 투자·지원을 기대할 수 있고, 일본과도 납치자 문제 등을 놓고 충분히 협상이 가능하다는 관측이다.

정부 소식통은 "대북 지원과 관련해선 미국이 제재를 완화·해제하고, 북한의 IMF(국제통화기금) 가입 등을 통해 투자 종잣돈을 마련해줄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안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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