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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7 (금)

김정은 안위 보장, 핵포기는 속전속결…트럼프식 모델 윤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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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북핵 해결을 위한 ‘트럼프식 모델’의 윤곽을 제시했다. 그는 22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북한의 체제 안전 보장을 전제로 한 속전속결식 비핵화 원칙을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문재인 대통령과의 단독 정상회담에 앞서 기자들이 ‘비핵화를 일괄타결(all in one)식으로 해야 하는가, 아니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취할 비핵화 조치에 따라 보상이 점차 늘어나는 방식도 가능한가’라고 묻자 “일괄타결이 좋다. 일괄타결이 가능하다면 확실히 더 낫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물리적인 이유 때문에 딱 그렇게 되지 않을 수 있는데, 그렇더라도 ‘굉장히 단기간 내(over a very short period of time)’가 돼야 한다. 근본적으로 일괄타결이다”라고 덧붙였다.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릴 예정인 북·미 정상회담 준비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묻자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가 원하는 분명한 조건들이 있고, 이것들이 충족되지 않으면 (회담이)열리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조건이 뭐냐고 질문하자 구체적 답은 피하면서도 “우리가 뭔가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그것이 효과가 있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가능성도 상당히 있다”며 “그런다고 해도 상관없다. 이번에 열리지 않으면 다음에 열릴 수도 있을 것”이고 말했다.

이처럼 김정은과의 회담이 연기될 가능성을 공개 언급하면서도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에 대한 당근을 동시에 제시했다. 북한이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CVID)를 결정할 경우 북한의 체제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우리는 그의 안전을 보장할 것이며, 이 문제를 초기부터 논의했다. 그는 만족할 것이며, 그의 나라는 부유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상의 체제 인정인 셈이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이 밝힌 북한 비핵화의 큰 틀은 리비아식 모델과 다른 듯 닮았다. 리비아처럼 단기간 내에 완전한 비핵화를 달성하는 것이 목표지만, 결과적으로 최고 지도자를 자리에서 끌어내리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북한이 리비아식 모델에 극렬히 반발하는 이유는 리비아의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가 맞은 비참한 최후 때문이다. 카다피가 몰락한 직접적 이유는 아랍의 봄으로 시작된 민중 봉기였지만, 결국 핵을 포기했기 때문에 축출됐다는 것이 북한의 인식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김정은의 안전을 약속한 것은 이런 북한의 우려를 없애려는 의도로 볼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비핵화 노력이 성공한다면) 25년, 50년 뒤에 그(김정은)가 과거를 돌아보며 자신이 북한과 세계를 위해 한 일을 자랑스러워할 수 있을 것”이라며 장기간 안위 보장도 시사했다.

단독 정상회담 뒤 오찬을 겸해 이어진 확대 정상회담에서도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 간에 관련 논의가 이어졌다.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양 정상은 북한이 처음으로 완전 비핵화를 천명한 뒤 가질 수 있는 체제 불안감의 해소 방안 등에 대해 논의했다”고 소개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차용하겠다는 리비아식 모델의 장점은 속도전이다. 리비아는 2003년 12월 완전한 핵 포기를 선언했으며, 사찰과 검증을 포함한 모든 절차가 최종 완료될 때까지 22개월밖에 걸리지 않았다. 자신의 임기 종료(2021년1월) 전에 결과를 내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속전속결식 접근은 필수다. 여기서는 한·미도 입장이 일치한다. 문 대통령 역시 최근 북핵 관련 회의에서 “비핵화의 과정을 압축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복수의 정부 소식통들은 전했다.

이는 비핵화 단계를 잘게 나눠 최대한 보상을 챙기려는 북한의 살라미식 접근법과는 차이가 크다. 김정은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 주석은 이미 두 차례의 정상회담에서 ‘단계적 동시적 조치’ 원칙에 합의했다. 북한으로서는 중국이라는 보험을 든 셈이다. 북한이 북·미 정상회담 무산 위협(16일 김계관 담화)을 하며 강경한 입장으로 돌아서자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7일 중국 다롄에서 열린 2차 북·중 정상회담 뒤 북한의 태도가 달라졌다며 중국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것도 이런 배경이다.

박인휘 이화여대 국제학부 교수는 “북한의 불안 해소와 미국의 입장 및 조건 강조라는 두 가지 메시지를 트럼프 대통령의 방식으로 결합해 발신한 것으로 보인다. 비핵화 결단을 큰 틀에서 일괄타결로 합의하면서 구체적 행동에서 단계가 나눠질 수밖에 없는데, 트럼프 대통령이 보장한 체제 안전이 ‘김정은이 권력을 갖고 있는 체제의 안전’이라면 북한이 미국이 원하는 방식에 다소 양보를 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워싱턴=채병건 기자, 유지혜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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