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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7 (금)

[김현기의 시시각각] 권력에 떠는 권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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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권력 앞에 기는 경찰, 여당, 언론

작은 권력의 상식이 모여야 전진한다

중앙일보

김현기 워싱턴 총국장


#1 사건 접수 50일 만의 드루킹 구속, 좀도둑까지 다녀간 뒤의 압수수색, 증거 인멸 방치 수사의 끝판왕은 역시 서울경찰청 이주민 청장의 황당 간담회 시즌 1, 2였다. 1차 간담회에서 그는 “드루킹이 김경수 의원에게 일방적으로 메시지를 보냈을 뿐” “김 의원은 전혀 기사 주소를 열어보지 않았다”고 했다. 단정했다. 거짓말이었다. 언론 보도로 탄로가 났다. 그러자 나흘 후 2차 간담회. “계장이 잘못 보고하는 바람에….” 소가 웃을 일이다. 김 의원과 이 청장은 2003년 청와대에서 한솥밥을 먹던 사이다. ‘일개 야당 의원’이었다면 이 청장이 그리 친절하게 아니라고 단정했을까. 1000만 서울의 수사 권력자가 대통령 복심 실세 의원 한 명의 권력에 벌벌 떠는 모습을 우리는 목격했다.

두 달 전 미국. 수사기관 FBI는 트럼프 대통령의 대선 캠프 외교 고문이었던 카터 페이지에 대한 감시 영장을 발부받았다. 트럼프는 길길이 뛰었다. FBI 국장을 갈아치우라는 압박을 가했다. 그러나 크리스토퍼 레이 FBI 국장은 딱 한마디로 응수했다. “수사를 정치화하지 말라.” 그리고 내부에는 이런 비디오 메시지를 보냈다. “우리 모두 분명히 해두자. 권력과 독립적으로, 그리고 정해진 규칙대로 한다. 여러분의 의지도 (나와) 같을 것이다. 함께 가자.” 3억3000만 미국인을 대표하는 대통령의 절대 권력에 FBI 권력자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2 “파리를 보고 새라고 하는 것이다. 착한 김경수 의원이 악마에게 당한 것이다”(추미애 민주당 대표), “김경수, 멋있다. 경수야, 힘내라”(박원순 서울시장 후보 트윗), “결벽에 가까운 도덕주의자의 고통을 이해한다”(표창원 의원), “김 의원의 (착한) 성정이 문제라면 문제”(황희 의원)…. 집권 민주당에선 대통령 최측근 김 의원을 향한 성원이 끊이질 않는다. 지난 정권 자신들이 그렇게 공격했던 댓글공작에, ‘주체’가 다르다며 얼굴을 180도 바꾼다. 금전거래까지 오가고, 김 의원의 말 바꾸기가 속속 드러나고 있음에도 ‘센 권력’에 그 흔한 ‘유감’이나 ‘소신 발언’ 한마디 들려오지 않는다.

다시 미국. 정책엔 당론이 있지만, 옳고 그름엔 당론이 없다. 미국은 여당 의원이라고 해서 권력의 편에만 서지 않는다. 권력 비리를 쫓는 뮬러 특검에 트럼프가 해임 압력을 가하기라도 하면 “증거가 없고, 당신이 결백하다면 그렇게 행동하면 되는 것 아니냐”(가우디 하원 정보위 공화당 의원)는 엄한 꾸짖음이 쏟아진다.

#3 언론 또한 마찬가지다. 적지 않은 한국의 미디어들이 박근혜·이명박의 ‘죽은 권력’에 대해선 ‘합리적 의심’을 근거로 전방위 의혹 제기를 했다. 하지만 정작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해선 구색 맞추기 보도가 눈에 띈다. 세상이 바뀌어도 언론 본연의 임무가 변하는 게 아니다. 지난 16일 워싱턴 K스트리트에 있는 워싱턴포스트(WP) 7층 뉴스룸. 트럼프 스캔들 관련 보도로 올해 퓰리처상을 받은 WP의 주필 마틴 배런은 이런 축사를 했다. “이 시대 언론인들은 살아 있는 권력에 맞서 진실을 찾는 영혼(soul), 그리고 온갖 속임수·부인·방해·위협을 이겨낼 가시(spine)가 있어야 한다. 그걸 우리(수상자)는 갖고 있었다.” 우리 언론은 어떨까.

그리스의 현인 피타쿠스는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은 권력의 크고 작음이 아니라 권력을 갖고 그가 하는 행동”이라고 했다. 그렇다. 큰 권력에 맞서는, 작은 권력들의 상식적인 행동이 모이고 모여 건전한 조직, 사회, 나라를 만드는 법이다. 오너 권력에 맞선 대한항공 직원들의 작은 반격들이 그걸 잘 보여 주고 있다.

김현기 워싱턴 총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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