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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8 (토)

[기자메모]‘강제추행’ 부장검사 항소 포기…역시나 검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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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현 검사의 성추행 피해 폭로 직후인 지난 1월 말 대검찰청이 꾸린 ‘성추행 사건 진상규명 및 피해회복 조사단’ 활동이 마무리돼 간다. 조사단은 이번주 서 검사에게 인사 불이익을 준 혐의(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로 안태근 전 검사장을 재판에 넘기면서 그간 파헤쳐온 검찰 내 성범죄 수사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경향신문

조사단의 ‘1호 기소 사건’은 의정부지검 고양지청에 근무하던 김모 부장검사의 강제추행 사건이었다. 김 부장검사는 작년 6월 법무연수원 교수 시절 알게 된 변호사를 노래방에서 강제추행했다. 지난 1월에는 술취한 후배 검사를 회식 자리에서 강제추행했다. 조사단은 지난 2월12일 사무실에 있던 김 부장검사를 이례적으로 긴급체포했고, 사흘 만에 구속한 뒤 엿새 후인 같은 달 21일 재판에 넘겼다. 체포부터 구속기소까지 9일 만에 이뤄진 대단히 신속한 조치였다. 출범 초기 조사단의 강력한 의지가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그러나 김 부장검사는 지난 11일 수감된 지 정확히 두 달 만에 풀려났다. 법원에서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됐기 때문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13단독 박주영 판사는 김 부장검사가 자신의 행위를 반성하고, 이 사건으로 사회적 지위와 명예를 상실했다는 점 등을 들었다. 피해자들이 더는 엄한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의견을 밝힌 것도 유리한 양형 요소가 됐다.

대법원 양형기준에 따르면 두 차례 강제추행을 저지른 김 부장검사에게는 징역 6월에서 3년까지 선고될 수 있었다. 김 부장검사에 대해 징역 1년을 구형했던 조사단은 항소기간인 지난 18일까지 항소하지 않았다. 조사단 측은 구형량의 3분의 1 미만의 형이 선고됐을 때 항소한다는 ‘통상적 기준’을 들며 “이런 사건의 경우 피해자들의 의사가 매우 중요한데 피해자들이 더 이상의 엄한 처벌을 원치 않는다고 법원에 밝혔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하지만 검찰이 구형량의 3분의 1 이상의 형이 선고됐을 때도 양형 부당을 이유로 항소한 사례는 인터넷만 검색해 봐도 무수히 많다. ‘같은 법조인이라 봐주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받아도 이상할 것 없는 상황이다.

신분이 보장된 검사를 긴급체포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비판까지 들으며 의지있게 수사해 재판에 넘긴 조사단이 끝내 온정주의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 아니냐는 얘기가 들린다. 이래서는 안 전 검사장 재판에서 공소유지가 제대로 되겠느냐는 우려마저 나온다.

문무일 검찰총장은 조사단 출범을 지시할 당시 검찰 조직 내 성범죄가 근절될 때까지 무기한 운영하겠다고 했다. 조사단이 검찰 내 성범죄에 경각심을 일깨우는 등 성과를 낸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검찰 밖의 사람들도 납득할 만한 결과를 내놓았을 때 ‘근절’을 말할 수 있는 것 아닐까.

<정대연 | 사회부 ho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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