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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8 (토)

[ESC] 색안경 끼고 보지 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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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ESC] 커버스토리

30대 이혼 남녀 4명 단톡방 수다

세월호 천막 향해 “빨갱이들”, 정 떨어져 이혼

“주말에도 여사친 만나는 이 같이 살수 없었다”

“배신감에 술 담배 많이 했으나 이젠 내 삶이 소중”

이혼 커밍아웃이 큰 고민···부모·친구·동료 순 알려라




한겨레

이혼남녀 단톡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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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연 없는 부부 없다는 말이 있듯 사연 없는 이혼도 없다. 하지만 이혼은 이미 결정한 순간부터 과거의 일이 되고 만다. 과거에 집착해 얻을 건 많지 않다. 중요한 것은 현재고 미래다. 이혼 뒤의 삶이 중요한 이유다. 결혼 생활보다 이혼 뒤의 삶이 더 행복하다는 30대 남녀 4명을 단톡방에 초대해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이혼을 앞둔 이들에겐 이혼 라이프의 노하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미이혼자’라고 해서 이들의 이야기를 외면할 필요는 없다. 이혼 라이프를 이해하는 건 살아가는 데 있어 중요한 에티켓이 되기도 하다.

한겨레

2018년 2월14일 목요일

진행자님이 삶꿈행복, 아자아자, 돌싱예찬, 자유로님을 초대했습니다.

진행자(이하 진행) 설 연휴 앞두고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소개 먼저 해주세요.

삶꿈행복(이하 삶꿈) 38살 남자입니다. 직업은 디자이너예요.

아자아자(이하 아자) 동시통역 일 하는 35살 여자입니다.

돌싱예찬(이하 돌싱) 사무직 직장인 39살 남자입니다.

자유가좋아(이하 자유) 제가 제일 어리네요. 32살 여자고요, 교사예요.

진행 다시 떠올리는 게 힘들겠지만, 각자의 이혼 사연을 들어볼 수 있을까요.

사연 없는 이혼은 없다

삶꿈 힘들지 않아요. ㅎㅎ 힘들었다면 이렇게 단톡방에 들어오지도 않았겠죠. 저 같은 경우는 결혼 1년 만에 별거를 시작하고 1년 뒤에 자연스럽게 이혼하게 된 경우예요. 이유가 뭔지는 모르겠는데 같이 살면서 ‘이게 아닌 거 같다’는 생각이 자꾸 들더라고요. 어느 주말인가 집에서 밥을 먹다가 불쑥 “따로 떨어져 있는 게 좋겠다”는 말을 꺼냈어요. 아내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이더군요. 서로 무언가 짐작을 했던 거 같아요.

자유 별다른 싸움 없이 하셨다니 부럽네요. 저는 결혼 초부터 계속 싸우기만 했어요. 정말로 하나부터 열까지 하나도 안 맞더라고요. 처음에는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랐으니 이해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결정적 사건이 하나 터졌어요. 우연히 서울 광화문 세월호 천막 앞을 지나는데 전남편이 “빨갱이들”이라고 하는 거예요. 정치적으로 보수적인 건 알았지만, 갑자기 만정이 떨어지는 거예요. 그 다음날 바로 “이혼하고 싶다”고 말을 했어요.

아자 저 같은 경우는 남편의 인간관계 때문이었어요. 불륜까지는 아니었는데 주변에 항상 여자가 많았어요. 심지어 주말에 ‘여사친’(여자사람친구)을 만나러 나가는 경우도 종종 있었어요. 각자 사생활을 존중해주려고 했는데 그런 생활이 계속되니 내가 무시당한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한번은 진지하게 “앞으로 여자친구 만나는 걸 자제해 달라”고 했는데 버럭 화를 내는 거예요. 자기를 의심한다고요. 몇 번 그렇게 싸움이 이어졌는데 갑자기 그가 먼저 “이혼하자”고 하더군요.

돌싱 적반하장이네요. 저도 비슷한 경우였어요. 전 배우자에게 남자친구가 많았거든요. 워낙 활동적이고 외향적인 성격이었어요. 인터넷 동호회 활동도 활발하고. 직접적으로 얘기하면 그에게 다른 남자가 생겼어요. 제가 안 순간, 서로 헤어지자고 바로 합의를 봤죠.

■몰입이 감정 정리에 도움

진행 어려운 얘기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어차피 이혼은 법정에서 결론이 나잖아요. 그 순간이 기억나나요?

자유 저는 혼인 신고를 안 해서 합의서만 쓰고 바로 ‘바이 바이’ 했어요. 워낙 감정이 안 좋았던 상태라 속이 후련하다는 생각만 들더라고요.

아자 처음엔 소송을 준비했어요. 무언가 보상을 받아야겠다는 억울한 마음도 있었죠. 그런데 결국 소송은 포기하고, 합의 이혼으로 끝냈어요. 법원을 나서는데 만감이 교차하더라고요. 전남편이 ‘잘 지내라’고 하면서 가는 뒷모습을 보면서 울었던 기억이 나요.

삶꿈 우리 부부는 이미 별거 상태여서 감정은 남아 있지 않았어요. 법원에서 이혼 판결을 받고, 둘이 해장국을 먹으러 갔어요. 되게 맛없던 기억이 나요. 그리고 서로 “행복해라”고 말한 뒤 헤어졌죠.

돌싱 아내 쪽에서 잘못을 한 경우라서, 화가 많이 난 상태였던 거 같아요. 법원 나오면서도 얼굴 한번 안 봤던 거 같습니다. 그가 나에게 “미안하다”고 한 건 기억이 나요. 복잡한 감정이었는데 바로 법원 앞 중국집에 가서 짬뽕에 소주를 2병 마셨던 거 같아요. ㅎㅎ

진행 상실감이나 허탈감은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자유 전 상실감 전혀 없었어요. ㅎㅎ 그런데 주변 시선 때문에 짜증이 나더라고요. 대놓고 얘긴 안 하지만 자기들끼리 ‘쟤 이혼했대’라고 수군대는 게 눈에 보였어요. 처음에 어떻게 대응할까 고민하다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나 이혼했다”고 당당하게 얘기했어요. 그러니깐 오히려 덜 스트레스 받던데요.

돌싱 처음엔 배신당했다는 생각이 컸죠. 술, 담배 많이 했는데 생각해보면 그것들은 도움이 안 됐어요. 저는 종교 덕을 조금 봤어요. 아는 분 소개로 절에 다니기 시작했는데 법회를 꾸준하게 참석하다 보니 어느 순간 ‘내 잘못은 없었나’란 생각이 들더군요. 돌이켜보니 저도 가정 생활에 소홀히 하고 그 사람을 잘 챙겨주지 못했더라고요. 제 잘못을 인정하니 마음이 편해졌어요.

아자 아, 돌싱님은 정말 부처님이시네요. 전 사실 우울증 치료까지 받았어요. 너무 힘들었거든요. 극복은 공부로 했던 거 같아요. 이혼 뒤 바로 유학을 갔거든요. 거기서 새로운 사람과 교류도 하고 공부도 하면서 생각을 정리했어요.

삶꿈 혼자서 몰입할 수 있는 것을 만들었던 게 큰 도움이 됐어요. 처음엔 많이 걸었어요. 회사가 강남 쪽이었고 집은 강북이었는데 매일 한강 다리를 걸어서 다녔어요. 최소 2시간에서 3시간을 매일 걸었는데 몸도 좋아지고 마음도 정리가 되더군요. 동네 헬스클럽에 등록해서 매일 운동했더니 자연스럽게 술도 줄어들었어요. 운동이 습관이 됐죠.

커밍아웃, 너무 서두르지 마라

진행 이혼 라이프에 어떤 장점이 있나요?

자유 진정한 자유가 생겼어요. 오늘 같은 설 앞두고 전혀 명절 스트레스가 없어요. 시월드 스트레스는 남의 일인 거죠.

삶꿈 어디에 얽매이지 않는 게 가장 좋죠. 처가에 갈 일도 없지만, 본가에서도 잘 안 불러요. 친척들한테 창피하신가 봐요. 하하.

아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좋아요. 여러 명을 동시에 만나는 무분별한 연애 같은 건 아니에요. 배우자가 있다는 이유로 사람 간의 만남, 특히 이성 사이의 교류가 눈치 보이는 건 사실이잖아요. 이혼 뒤엔 그런 것이 전혀 없으니 사회생활이 더 잘되더라고요.

돌싱 저는 자유보다는 계획적인 삶에서 만족을 얻었어요. 이혼 초엔 각종 물(?) 좋은 클럽도 자주 다니고, 많이 놀았죠. 그것도 1년 정도면 지겨워져요. 건강관리나 미래 계획 등을 세워서 지켜 나가는 재미가 있더라고요. 둘이 있을 때보다 삶의 변수가 적으니 계획을 유지하기가 훨씬 수월하고요.

진행 반대로 이혼의 단점도 많을 거 같아요.

돌싱 부모님이 가장 걸리죠. 지금도 저만 보면 한숨을 쉬시니까. 그거 빼곤 괜찮아요.

자유 남자들이 문제예요. 이혼했다고 하면 얼마나 여자를 쉽게 보는지, 정말 어처구니없는 경우가 많아요. 한두 번 만나고 나서 바로 잠자리를 원한다든지 말이죠. 보통 이혼한 뒤 외로움 때문에 인터넷 이혼자 모임 동호회 등에서 활동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거기에 진상 수준의 남자들이 많아요. 결혼을 해봤던 사람들이 더 조심을 해야 하는데 아니더라고요.

아자 주변 시선이죠. 이혼한 사람들에게 너무 함부로 하는 경우가 있어요. “이혼한 사람들 뭐가 문제가 있는 거 아냐”라고 큰소리 내는 사람 주변에 흔하잖아요. 원래 남의 말 하기 좋아하는 한국이라지만, 이혼한 사람들에 대해 너무 함부로 말하죠.

자유 그럴 땐 “저 이혼했는데 왜요?”라고 작정하고 말해요. 그럼 정말 분위기 싸해지죠. ㅋㅋ

돌싱 맞아요. 전 처음 나가는 모임에선 이혼 사실을 먼저 얘기해요. 일종의 정보 공유라고 봐요. 요즘엔 이혼했다고 하면 “부럽다”는 사람 많지 않아요?

삶꿈 저도 동의해요. 감추면 감출수록 스스로 약해져요. 주변에 이렇게 많은 이혼 남녀들이 있는데 창피하게 생각할 필요 없어요.

진행 이른바 ‘이혼 커밍아웃’에 적절한 시기가 있나요?

아자 가까운 사람부터 조금씩 알리는 게 맞는다고 봐요.

삶꿈 부모, 친구, 직장 동료 순이죠. 시간이 좀 지난 뒤 편한 술자리에서 약간 취기가 올랐을 때 하는 게 자연스러워요.

돌싱 남녀가 달라요. 주변을 보면 아직 여성은 이혼을 밝히는 걸 조심스러워하는 거 같고요. 남자들은 너무 티가 나서 문제예요. 부끄러운 건 아니지만, 자랑할 것도 아니거든요. ㅎㅎ 자기의 감정이 정리됐을 때 가까운 사람에게 먼저 알리는 게 맞는 거 같아요. 공식적으로, 또 정중하게요.

진행 ‘이혼 선배’ 로서 미이혼자들에게 해줄 말이 있나요.

자유 역설적인데, ‘결혼을 간단하게 생각하지 말아라’예요. 특히 미혼자들에게 해당되겠죠. 제가 가장 후회하는 게 상대방 파악을 제대로 못하고 빨리 결혼했다는 거예요. 결혼은 최후의 순간까지도 고민 또 고민해야 하는 문제예요.

돌싱 남의 삶을 부러워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어요. 원래 남의 떡이 커 보인다잖아요. 결혼을 안 했을 때 부부가 부럽고, 결혼생활이 만족스럽지 못할 땐 이혼한 사람이 부러운 이치죠. 남을 기준으로 하지 말고 자기가 가장 행복한 결정을 하세요.

삶꿈 뭐가 됐든 빨리 결정하지 마세요. 이혼도 마찬가지예요. 특히 요즘 명절 뒤 이혼이 는다고 하잖아요. 명절 갈등이 결정적 계기일 수는 있지만 남들 많이 할 때 따라가진 마세요. 원래 여름휴가도 남들 갈 때 피해서 가야 더 좋잖아요.

아자 인생은 자기 거예요. 남편이나 아내, 시부모, 친부모의 삶을 대신 사는 게 아니라고 봐요.

진행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이혼을 후회하시나요?

일동 아니요!

진행·정리 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




이혼하고 싶다고 이혼 못한다

이혼 절차 및 요건

이혼은 엄연히 법의 영역이다. 합의 이혼이 됐든, 소송 이혼이 됐든 혼인신고를 한 경우라면, 법원에서 최종 결정이 이뤄진다. 많이 간편해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마냥 간단하지만은 않다.

가장 간단한 합의 이혼의 경우도, 가정법원에 가서 합의 이혼 신청서를 내고, 이혼 안내 교육을 필수적으로 받아야 한다. 이 과정에서 가정법원이 전문상담인과의 상담을 권고할 수도 있다. 아이가 있으면 조금 복잡해진다. 양육권자 및 친권자 결정을 위한 합의서, 재산분할 합의서, 면접 교섭권, 양육비 부담조서 등도 제출해야 한다.

이것도 온전한 합의가 이뤄졌을 때고, 합의가 안 되면 결국 소송으로 가게 된다. 소송으로 이어지면 예외 없이 ‘이전투구’로 간다는 것이 법조인들의 설명이다. 위자료 지급이나 재산분할 등에서 유리한 판결을 받기 위한 싸움이 시작되는 것이다. 소송에선 결국 승자와 패자가 있기 마련이다.

이혼하고 싶다고 해서 무조건 이혼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현행법상 법원에 이혼을 청구하기 위해선 배우자가 불륜을 저질렀을 때, 정당한 이유 없이 동거·부양·협조 의무를 게을리했을 때, 배우자 또는 그 직계존속으로부터 심히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자기의 직계존속이 배우자로부터 심히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배우자의 생사가 3년 이상 분명하지 않은 때 등으로 한정하고 있다.

알아두어야 할 것은 피해를 입은 당사자만이 이혼을 청구할 수 있다는 점이다. 본인에게 이혼의 잘못이 있는 유책 배우자라면 이혼을 청구하는 것은 원칙상 불가능하다. 예를 들면, 본인이 불륜을 저지르고 이혼을 청구하거나, 같이 살기 싫어 집을 뛰쳐나간 뒤 이혼을 요구하는 행위는 법원이 받아들이지 않는다. 경제적 이유 등으로 서류상 이혼하기 위해 이혼 청구를 하는 경우도 인정되지 않는다.

더블유에프(WF)법률사무소의 정성호 변호사는 “소송으로 가면 부부가 원수로 변한다는 말이 있듯, 이혼을 결정했다면, 원만한 합의를 통해 하는 것이 그나마 양쪽의 상처가 덜하다”고 말했다.

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
한겨레

이혼

부부가 유지되어온 결합 관계를 해소하는 행위. 크게 협의 이혼과 재판 이혼이 있다. 재판 이혼은 조정 이혼과 소송 이혼으로 나뉜다. 최근 국내 한 재벌 총수 부부의 이혼 조정 실패가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한국에선 매해 10만건 이상 이혼이 이뤄지는데, 설과 추석 명절 뒤 신청 건수가 급증한다. 현재까지 최고의 이혼 위자료는 1999년 미국의 미디어 재벌 루퍼트 머독이 전 아내에게 준 17억달러(약 1조8200억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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