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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8 (토)

‘이윤택 극단’ 조직적 은폐 급급…“불쌍한 표정” 회견 리허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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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연희단거리패 오동식 연출가 내부 고발

‘미투’ 새 증언 터져나와도

“우리가 그렇게 잘못했나”

단원들에 다그치듯 입단속

피해자 모욕하며 책임 전가

“꼭두각시 연출자 세우고

간간이 뒤봐주겠다” 제안도

왜곡된 집단주의의 민낯

피해자를 배신자로 낙인

예술위, 오태석 지원금 1억원 환수 검토


한겨레

이윤택 전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이 19일 오전 서울 명륜동 30스튜디오에서 과거에 저지른 성추행에 대해 ‘사과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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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원들에게 상습적 성폭력을 행사했다는 논란에 휩싸인 이윤택 전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과 극단 수뇌부가 ‘미투’ 폭로 이후에도 이 사안을 조직적으로 은폐하려 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연희단거리패 주요 인사들이 ‘미투’에 대응한 방식은 성범죄 피해자에게 침묵을 강요하는 폐쇄적 조직 문화의 민낯이 그대로 드러났다는 평가가 나온다.

2008년부터 연희단거리패에서 활동해온 오동식 연출가는 2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나는 나의 스승을 고발합니다”라는 글을 올렸다. 오 연출가는 글을 통해 지난 14일 ‘미투’ 글이 공개된 이후 연희단거리패에서 열린 대책회의 내용을 상세하게 폭로하며 “연희단거리패와 극단 가마골을 어떻게 유지하느냐에 초점이 맞춰졌을 뿐 피해자의 입장이나 상황은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오 연출가는 극단 수뇌부가 이 전 감독의 낙태 강요, 성폭력 등을 고발한 ‘미투’ 글이 사실임을 공유하고 있으면서도, 단원들을 다그치듯 ‘입단속’을 시키려 했다고 전했다. 또 이 전 감독이 성폭력 증언을 한 피해자에게 모욕적 언사를 하며 책임을 전가했고,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다고 적었다. 오 연출가는 또 극단 대표가 “우리가 그렇게 잘못을 했느냐” 식의 발언을 했고, 이 전 감독이 단원들이 모인 자리에서 사실을 은폐하는 기자회견 리허설까지 했다고 폭로했다. 리허설에서 극단 대표가 “표정이 불쌍하지 않다”고 지적하자 이 전 감독은 다시 표정을 지어 보이기도 했다며 ‘지옥의 아수라’였다고 당시 현장을 고발했다.

또 이 전 감독은 논란의 와중에도 공연 ‘캐스팅’을 고민하는 등 상황 파악을 제대로 하지 못했고, “자신이 연극을 당분간 나서서 할 수 없으니 저와 같은 꼭두각시 연출을 세우고 간간이 뒤에서 봐주겠다고 했다”고 오 연출가는 전했다.

‘미투’에 대응하는 연희단거리패 수뇌부의 모습은 성폭력 피해 고발을 두고 피해자 ‘낙인찍기’와 은폐에 급급한 왜곡된 ‘집단주의’를 고스란히 보여준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주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는 “폐쇄적 조직 문화에선 성범죄 고발에 대해 객관화하는 성찰이 전혀 없다. 특정 분야·지역·출신학교 등으로 다 연결돼 있다고 생각하기에, ‘미투’ 고발을 개인적 배신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으로 은폐하는 모습들이 반복된다”고 꼬집었다.

그는 이러한 구조적 문제가 최근 한샘·르노삼성 성폭력 사건 등에서도 반복됐다고 분석했다. 두 사건에서 성희롱·성폭행 피해자들에게 오히려 왜곡된 시선이 쏟아졌고, 조직 차원의 구제노력은 너무나 허술해 비판을 받았다. 이 교수는 “피해자가 조직 내 성범죄 사건을 공개적으로 말하면, (성범죄의) 2차·3차 피해가 이어진다. 많은 여성이 조용히 일을 그만두는 걸로 사건이 끝난다”고 지적했다.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는 “조직에서 문제를 은폐하지 않으려면 △진상조사 △피해자에 대한 적절한 지원 △가해자 처벌 △재발방지 작업 등을 해야 하는데, 그런 곳은 드물다”며 “(조직 내 성폭력 고발자들에게) ‘피해자만 드러나고 소용이 없더라’라는 좌절의 경험이 쌓여 있다”고 말했다.

한편,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학교 제자·극단 배우들에게 성추행을 가한 것으로 지목된 오태석 연출가에게 지급된 신작 지원금 1억원을 환수할지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문화예술위 관계자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오 연출가가 공연을 포기하면 전액 환수 조치 되지만 현재 오 연출가 쪽이 연락이 안 되는 상황”이라며 “마냥 사태를 지켜볼 수만은 없어 문예위 차원에서 공연을 중단시킬 수 있는지 알아보고 있다”고 말했다.

박준용 김미영 기자 juney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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