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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30 (월)

[어느 순간 엄마](31) 어린이집 폐원, 한 순간에 무너지는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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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세살배기 엄마로서 지난 7~8개월간의 삶은 참 평온했다. 아이가 몇 번 아프기는 했지만 병원에 다녀오면 금방 나았고, 영 적응하기 힘들 것 같았던 어린이집에 적응해 친구들과도 곧 잘 어울렸기 때문이다. 아이가 크면서 나 역시 엄마로서 제법 컸다고, 엄마 노릇할 만하다고 우쭐해했다.

소박했던 워킹맘으로서의 일상이 한 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불과 며칠 전, 평창올림픽 개막식이 열리던 날 저녁이었다. 지난 1년간 아이를 잘 맡아 보육해주었던 어린이집이 2월말로 폐원을 결정했다는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 때문이었다.

구정 연휴와 주말 등을 빼면 불과 10일 남짓한 시간밖에 없었다. 어느 한 순간 애를 믿고 맡길 데가 사라진 20여명의 엄마 아빠들은 열일을 제치고 어린이집에 속속 모여들었다.

어린이집의 폐원 결정 관련 설명을 하기 위해 나온 구청 직원은 말했다."민간 어린이집은 이런 아파트 같은 데서는 할 수가 없거든요. 그런데 1년 전에 어떻게 인가가 나왔는지…그 직원이 잘 못 한거죠."

명백한 행정적 실수로부터 시작된 일이었다. 1년 전 20명만 받아야 하는 가정 어린이집을 30여명을 받을 수 있는 민간 어린이집으로 인가를 해준 것이 첫번째 잘 못 끼워진 단추였다. 분명 관련법상 아파트와 같은 공용주택에선 민간 어린이집이 허용될 수 없다는 조항에도 불구하고 "아파트 평수가 넓으니 가능하다"며 치수까지 재어간 후 민간 어린이집으로 인가를 해줬다.

이후 기존 20명에서 5명의 아이가 추가로 어린이집에 다니게 됐고, 그에 따른 선생님도 충원이 됐다. 그런데 1년이 지난 지금, 갑자기 인가가 취소가 됐다며 다시 가정 어린이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20명에 맞춰 나머지 아이를 '자르고', 선생님도 그에 맞게 '자르라'는 것이다.

구청 측은 행정적 실수를 바로 잡기 위해 1년의 유예기간을 어린이집에 줬다. 그게 바로 지난 1년이었다. 문제는 어린이집 원장이 이같은 사실을 전혀 학부모들과 공유하지 않았던 것. 두번째로 잘 못 끼워진 단추였다. 분명 그 1년 사이 이 문제가 공론화됐다면 이렇게 날벼락을 맞지는 않았을텐데...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많은 엄마들이 구청 측의 실수에 대해선 목소리 높여 비난했다. 그러나 정작 원장에게는 왜 이런 중요한 사실을 공유하지 않았냐고 따져 묻지 못했다. 혹시라도 '내 아이'에게 비난의 댓가로 피해가 돌아갈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아이를 맡긴 약자로서의 엄마들의 모습이 여실히 드러났다.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유야 어쨌든, 문제 해결이 어려워진 원장은 구청에 폐원을 하겠다고 통보했고 그렇게 마주앉은 엄마, 아빠들은 눈물로 호소했다. 절대 폐원이 돼선 안된다고….

사안이 복잡했다. 취재를 하듯 단시간에 몰입해 어린이집 쪽, 구청쪽 입장을 들어보니 더욱 그러했다. 하지만 그 가운데 나를 비롯한 많은 엄마들을 절망의 나락으로 빠지게 했던 건 결국 구청쪽에선 아이들을 그저 행정 서류상 이리저리 왔다갔다 할 수 있는 존재로만 봤다는 것이다. 원장 역시 아무리 지난 시간 아이들을 위해 힘썼다고는 하지만 결국 개인 사업의 일환으로 어린이집을 운영하고 있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아이들을 믿고 맡겼던 어린이집과 그런 아이들의 보육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믿었던 공무원들의 마인드를 본의 아니게 엿본 후 나는 더욱 잠을 들 수가 없다. 물을 마셔도 마셔도 입안이 계속 바짝 바짝 타기만 한다.

폐원에 따른 구청 측 대안은 이랬다. 해당 어린이집이 있는 구가 아닌 인근의 구로 가라는 것. 어린이집 빈 자리가 그 곳 뿐이니 어쩔 수 없다는 얘기만 했다.

하지만 영하 10도를 넘나드는 강추위에 0세부터 4세의 아가들을 그렇게 등하원 시키라고? 눈, 비오는 날에도? 아파트 옆 동이어도 아침에 등원시키기 바쁜데 차 막히는 출근 시간 차를 몰아 아이를 데려다놓으라고? 안 그래도 짐짝 던지듯 던져놓고 가는데 더 그렇게 하라고? 출퇴근길 아이를 옆에 태운 채 차 사고라도 나면?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아니었다.

아이들 입장에서 보면 더더욱 그랬다. 이제 막 친구가 생겨 어울리기를 좋아하고 선생님을 '제2의 엄마'처럼 따르며 잘 지내는 아이들을 갈기갈기 찢어놓고, 영문도 모른 채 익숙한 선생님과 분리시켜 불안을 느끼게 하라니. 또 다시 낯선 곳에서 덩그러니 떨어져 생활하도록 하라니. 단 한번이라도 아이들이 받을 엄청난 스트레스에 대해 생각해보셨는지 묻고 싶다.

애당초 왜 구청에서 인가를 잘 못 줬냐고 책임자 처벌을 주장하고 있기에는 당장 3월부터 아이를 어디다 맡길지 속수무책이다.

이미 3월 입학이 대기 순번대로 쫙 정해진 상황에서 행여나 빈 자리가 나지 않을까 백방으로 수소문 해봐야하는 것일까? 하지만 그것은 결국 내 아이 맡기자고 다른 아이 자리를 뺏으라는 얘기일 뿐이다. 20명 정원에 맞추기 위해 가장 늦게 온 아이들을 그냥 내보내면 될 일 아니냐고? 구청과 어린이집 잘못을 왜 엄마들이 뒤집어써서 싸워야한단 말인가.

그렇다면 웃돈을 얹어 한달에 200만원이 훌쩍 넘는 베이비씨터를 급히 구해야 하는 걸까? 많은 워킹맘들이 고민을 하게 되는 지점이다. '차라리 그 돈이면 내가 그냥 직장을 관두고 애를 집에서 볼까'라고.

하루 아침에 일상의 평온이 깨진 엄마들, 워킹맘, 전업맘 모두 다 그렇다. 폐원 10일전의 통보. 엄마, 아빠들을 얼마나 무시한 처사인지 알지만 그래도 우리는 우습게 봐도 좋다. 하지만 내 아이는, 우리들의 아이는 이렇게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될 존재들이다.

'인구절벽' '출산절벽'이라는 문제 속에 '나라'가 나서서 그와 같은 절벽을 막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번 일은 분명 최일선에서 그러한 절벽 막는 일을 담당하는 이들과 관련이 있다.

여전히 관계자들이 모여 최선의 방안을 모색하는 중이어서 말하는 것이 조심스럽다. 이미 애 하나 키우면서 몇 번의 좌절을 겪고도 버티고 있는 엄마들이다. 부디 더 이상은 절망의 나락으로 내몰리지 않길 바라고 또 바라는 마음이다.

[디지털뉴스국 방영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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