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9.30 (월)

대법 “눈앞에서 밀봉 않은 증거물, 증거 안 된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한겨레] “과학증거는 모든 과정에서 시료의 ‘동일성’ 담보돼야”

마약사건의 유일한 증거인 ‘국과수 감정’도 인정 안돼



한겨레

게티이미지뱅크


피의자 눈앞에서 밀봉하지 않은 증거물은 동일성을 인정하기 어려워 증거가 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메트암페타민(일명 필로폰) 투약 혐의를 받던 차아무개(51)씨는 2016년 9월 서울서부경찰서에 자진 출석해 조사를 받으면서 투약 검사에 필요한 소변과 머리카락을 채취해 경찰관에게 건넸다. 소변에 대해선 조사실에서 간이 검사를 했으나 마약 성분이 검출되지 않았다. 경찰관은 소변과 머리카락을 조사실 밖으로 들고 나가 봉인한 뒤 조사실로 돌아와 차씨의 동의서를 받았다. 시료를 전달받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검사 결과 차씨의 소변과 머리카락에서 필로폰 성분이 검출됐다는 감정 결과를 통보해왔다.

대법원 1부(주심 김신 대법관)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감정 결과가 유일한 직접증거인 차씨의 마약류 관리법 위반 사건 상고심에서 차씨에게 징역 1년6월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깨고 무죄 취지로 사건을 서울서부지법 형사항소부로 돌려보냈다고 19일 밝혔다.

대법원은 “과학적 증거방법이 사실인정에서 구속력을 갖기 위해선, 시료의 채취·보관·분석 등 모든 과정에서 시료의 동일성이 인정되고 인위적인 조작·훼손·첨가가 없었음이 담보돼야 하며 각 단계에서 시료의 정확한 인수·인계 절차를 확인할 기록이 유지돼야 한다”고 전제하면서, “피고인의 눈앞에서 소변과 머리카락이 봉인되지 않은 채 조사실 밖으로 반출되었는데도 그 뒤 조작·훼손·첨가를 막기 위해 어떤 조처가 있었고 누구의 손을 거쳐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전달되었는지 확인할 수 있는 등의 기록은 없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은 “여러 사정을 종합하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감정물이 피고인으로부터 채취한 것과 동일하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감정 결과를 투약 사실의 증거로 인정하기 충분치 않다”고 판단했다.

앞서 1심 재판부는 차씨에게 유죄를 선고하면서, “피의자 앞에서 밀봉 조처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감정 결과의 증거능력이나 증명력이 부정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밀봉 조처는 다른 여러 사정과 함께 동일성을 판단하는 기준의 하나”라고 판단했다. 항소심 재판부도 “피고인 눈앞에서 밀봉하지 않았더라도 감정 결과의 증거능력을 부인할 정도의 적법절차 위반은 아니다”라며 차씨의 항소를 기각했다.

대법원은 “원심판결은 객관적·과학적 분석을 필요로 하는 증거의 증명력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것”이라며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진실임을 확신하게 하는 증명력이 있는 증거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파기환송 이유를 밝혔다.

여현호 선임기자 yeopo@hani.co.kr

▶ 한겨레 절친이 되어 주세요! [신문구독]
[사람과 동물을 잇다 : 애니멀피플] [카카오톡]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