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세 이상 남성 64%가 고혈압
미국 고혈압 기준 낮췄다고
강한 약 쓰면 어지럼증 유발
생활습관 고쳐 천천히 낮춰야
홍그루 교수의 건강 비타민
미국의 진단 기준 변경을 보면 한 가지 의문이 든다. 노인 고혈압 환자도 똑같은 조건으로 혈압을 관리해야 하느냐다. 고혈압의 위험 요인은 비만·고령·운동 부족·음주·흡연·당뇨병 등이다. 과한 염분 섭취도 요인이다. 이 중 나이는 고혈압을 유발하는 주요 원인이다. 동맥은 탄력성이 있어 늘었다(이완) 줄었다(수축) 하면서 혈관 내 압력을 적당히 유지한다. 나이가 들수록 동맥은 탄력을 잃고 뻣뻣해진다. 혈액이 이동할 때 혈관에 부담을 줘 혈관 벽의 압력이 증가한다. 국민건강영양조사(2016) 결과에 따르면 30세 이상 성인 29.1%가 고혈압을 앓고 있다. 60대는 남성 55.9%, 여성 46.2%, 70세 이상은 남성 64.2%, 여성 72.5%가 고혈압 환자다.
60대 고혈압 환자가 헬스장에서 트레이너의 지도를 받으며 걷기 운동을 하고 있다. 한 번 할 때 빠른 속도로 30분 정도 걷는 게 고혈압을 낮추는 데 도움이 된다. [사진 세브란스병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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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모(68·서울 구로구)씨는 50대 중반에 고혈압 진단을 받고 약을 처방받아 먹었다. 그러나 최근 병원에서 혈압을 재 보니 177/72㎜Hg로 수축기 고혈압이었다. 김씨는 그동안 임의로 약을 먹었다 안 먹기를 반복했다고 한다. 김씨는 의사에게 “수축기만 고혈압인데 혈압약을 꼭 먹어야 하느냐”고 물었다. 또 “혈압약을 먹으면 수축기 혈압은 내려간다고 해도 이완기 혈압이 너무 떨어지는 건 아닌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노인은 수축기 고혈압이 문제
김씨의 의문처럼 노인 고혈압 환자 모두가 수축기 혈압을 140㎜Hg 이하로 낮춰야 할까. 노인 고혈압 환자에게 혈압 치료를 적극적으로 할 때 심혈관·뇌혈관 질환 발생률과 사망률이 낮아진다는 사실은 오래전에 증명됐다. 2008년 ‘뉴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신’에 발표된 ‘초고령층의 고혈압 연구(HYVET)’ 결과를 보자.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대 공동연구팀은 수축기 혈압이 160㎜Hg 이상인 80세 이상 노인 3845명을 대상으로 적극 치료군(1933명)과 대조군(1912명)으로 나눠 1년여 동안 추적 관찰했다. 적극 치료군은 효과가 강력한 고혈압약을 이용해 혈압을 목표 혈압(150/80㎜Hg) 아래로 떨어뜨렸고, 대조군은 위약(가짜약)이나 효과가 약한 혈압약을 이용해 혈압을 목표 혈압 수준으로 유지하게 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적극 치료군은 대조군보다 뇌졸중 사망률은 39%, 전체 사망률은 21% 낮았고 심근경색증 발생률은 28%, 심부전 발생률은 64% 낮았다.
지난해 성인 고혈압 유병률 |
류모(75·서울 성북구)씨는 몇 년 전 감기몸살로 동네의원을 방문했다. 거기서 혈압을 측정한 결과 160/80㎜Hg으로 고혈압 진단을 받았다. 류씨는 키 1m68㎝, 체중 80㎏, 체질량지수(키의 제곱으로 몸무게를 나눈 값, 25 이상이면 비만) 28.3으로 비만이다. 전립샘 비대증·통풍·관절염이 있어 약을 먹는다. 의사는 혈압을 빨리 낮춰야 한다며 두 종류의 고혈압약(ACE 억제제·칼슘억제제)을 처방했다. 약을 먹은 후 혈압은 115/65㎜Hg로 떨어졌다. 그러나 평소에 없던 어지럼증이 생겼고 몸에 힘이 쭉 빠지는 느낌이 들었다. 의사는 고혈압약을 한 개로 줄이는 대신 생활습관을 개선해 체중을 감량하라고 권했다. 류씨는 식사량을 줄이고 싱겁게 먹으면서 꾸준히 운동했다. 지금은 약을 줄여도 혈압이 정상(120/80㎜Hg 미만)을 유지하는 데다 어지럼증도 없어졌다.
복용약 많아 약 처방 정교해야
고혈압을 앓는 노인은 다른 연령대 환자보다 ▶짜게 먹었을 때 혈압이 많이 오르고 ▶혈압 변동이 심하며 ▶야간 고혈압이 흔하고 ▶백의(白衣) 고혈압이 많다. 혈압은 원래 활동량이 많은 낮에 상승하고 밤에 내려간다. 노인 중에는 혈관 상태가 나빠 야간에 혈압이 떨어지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야간 고혈압이라고 한다. 백의 고혈압은 진료실에서 의사·간호사가 혈압을 잴 때 긴장해 실제보다 혈압이 높게 나오는 현상을 말한다. 이런 특징을 고려하지 않고 약만으로 혈압을 급격하게 내리면 일어설 때 어지럼증을 느끼는 기립성 저혈압이나 어지럼증이 발생할 수 있다. 고혈압이 아니라도 노인은 앓고 있는 만성질환이 다양해 먹는 약이 많다. 약 부작용이 생기기 쉽고 한번 발생하면 오래간다.
대한고혈압학회는 고혈압의 치료 목표를 140/90㎜Hg로 삼되 80세 이상 환자는 140~150/90㎜Hg을 권고한다. 노인 고혈압 환자는 약에 의존하기보다 생활습관 개선을 함께 시도해 혈압을 천천히 낮추는 게 가장 좋다. 노인 환자는 짜지 않게 먹도록 노력해야 한다. 걷기 같은 운동을 하면 혈압이 낮아지는 데다 체중 감량에 좋아 도움이 된다. 노인에게 흔한 백의 고혈압 현상을 방지하려면 혈압을 좀 더 정확하게 잴 필요가 있다. 집에서 혈압계를 이용해 매일 아침·저녁 5분 간격으로 두 번 측정한다. 이런 방식으로 일주일 잰 뒤 첫날을 제외한 나머지를 평균하면 비교적 정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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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찌개·국·젓갈 덜 먹고 … 무거운 것 드는 운동 피해야
한국인은 소금을 하루 평균 약 12g 먹는다. 세계보건기구(WHO) 권장량(5g)보다 많다. 노인은 염분 감수성이 높다. 혈액 속 염분 농도가 올라가면 세포에 있던 수분이 혈액으로 빠져나온다. 혈액량이 증가해 혈압 상승의 원인이 된다. 김치·찌개·국·젓갈·라면·마른안주 등에는 소금이 많이 들어 있다. 자연 재료로 직접 조리한 음식을 먹는 걸 권한다. 유산소 운동은 혈압과 심폐 기능을 개선해 고혈압 환자에게 유익하다. 무거운 것을 들어올리는 운동은 일시적으로 혈압을 높일 수 있어 피하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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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그루 교수
영남대 의대 졸업, 연세대 의대 교수, 대한심장학회 정책위원, 한국 심장초음파학회 보험이사
」홍그루 세브란스병원 심장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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