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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8 (토)

[Science] 중이온가속기 사업 예정대로…2021년에 `라온` 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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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기정통부 TF 예산증액 없는 구축·가동방안 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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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완공 예정인 중이온가속기 `라온`의 조감도. [사진 제공 = 기초과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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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성자가속기가 야구공을 던지는 것이라면 중이온가속기는 볼링공을 굴리는 것과 같다."

지난 6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중이온가속기 사업점검 태스크포스(TF) 결과보고회를 개최하고 예산 증액 없이 2021년 세계 최고 수준의 중이온가속기를 구축·가동하는 최적의 사업 추진 방안을 제시했다. 지난 8월부터 전문가 12명으로 구성된 사업점검 TF는 중이온가속기의 활용성, 기술적 성공 가능성, 예산, 일정 등 사업 전반에 대한 정밀 점검을 실시해왔다. 그동안 국내에서 구축된 대형 연구시설 사업은 총사업비가 관행적으로 증가한 사례가 많았음을 감안할 때 이번에 사업점검 TF가 예산 증액 없이 사업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방안을 내놓음으로써 향후 중이온가속기 사업 추진에 청신호를 밝혔다.

가속기란 전자, 양성자, 이온 등 전하를 갖고 있는 입자를 가속시키는 장치를 말한다. 가속입자의 종류와 활용 목적에 따라 방사광가속기, 중이온가속기, 양성자가속기, 중입자가속기 등으로 나뉜다. 이 중 중이온가속기는 자연에 존재하지 않는 희귀동위원소를 만들기 위한 가속기다. 중이온가속기는 수소와 헬륨보다 무거운 원소를 이온화한 뒤 매우 빠르게 가속시켜 표적 원자핵에 충돌시킨다. 충돌 이후 새로운 희귀동위원소를 얻어 바이오·헬스케어 분야는 물론 원자 및 분자과학, 물성과학 분야 등에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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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이온가속기가 희귀동위원소를 만드는 과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먼저 '대전류저에너지 희귀동위원소 빔 생성(ISOL)' 방식이다. 가벼운 원소 이온을 빠르게 가속시켜 무거운 원소에 충돌시킨다. 무거운 원소가 쪼개지면서 파편이 만들어지는데 여기에서 희귀동위원소를 얻는다. 이 방법으로 많은 양의 동위원소를 얻을 수 있다. '소전류고에너지 희귀동위원소 빔 생성(IF)' 방식은 거꾸로 무거운 원소를 가속시켜 가벼운 원소에 충돌시킨다. 마찬가지로 무거운 원소가 쪼개지면서 희귀동위원소를 얻는다. 이 방식으로 수명이 짧은 동위원소는 물론 다양한 동위원소를 만들어낼 수 있다.

전 세계 많은 중이온가속기는 ISOL이나 IF 방식 중 하나만을 채택해 설계됐지만 2021년 한국에 들어서는 중이온가속기 '라온'은 ISOL과 IF 방식은 물론 두 가지를 결합한 세계 최초 시설로 꼽힌다. ISOL 방식으로 희귀동위원소를 생성한 뒤 이를 다시 IF로 가속시키면 한 가지 방법만을 사용하는 가속기와 비교했을 때 더 많은 희귀동위원소를 얻을 확률이 높아진다. 기초과학연구원(IBS)은 라온을 통해 전 세계 과학계가 발견하지 못한 희귀동위원소를 더 많이, 다양하게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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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의료 분야에서 중이온가속기의 활용이 갖고 있는 잠재력은 크다. 대표적인 분야가 암 치료다. 암 치료 시 흔히 사용되는 방사성 동위원소는 C(탄소)12. 하지만 중이온가속기를 이용해 C9나 C11을 만들어 방사선 치료에 활용하면 치료 효과가 좋아질 수 있다. 박윤우 충북대 의대 방사선종양학과 교수는 "X선이나 감마선을 이용하면 방사선 치료 환자의 약 50%가 완치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면서 "하지만 선량 분포의 특성에 따라 정상조직 파괴 등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와 비교했을 때 양성자나 중이온빔은 인체에 침투할 때 투과 거리의 끝부분에 급격히 많은 에너지를 전달하는 특성이 있다. 중이온가속기의 빔 에너지를 조절할 경우 정상 조직에는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으면서 암세포만 선택적으로 파괴하는 것이 가능해 종양 치유율을 높일 수 있다.

박 교수는 "C9나 C11을 이용하면 X선 등으로 파괴하기 어려운 암세포 등을 효과적으로 없앨 수 있을 것"이라며 "최근 일본에서도 관련 연구 성과들이 나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중이온가속기를 활용하면 파괴력이 큰 만큼 암세포가 다시 재생되는 일도 줄일 수 있다. 박 교수는 "최근 우주 여행이 가시화하면서 우주 방사선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도 많아지고 있다"며 "이미 미국은 중이온가속기를 이용해 우주 방사선이 DNA나 세포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밖에 중이온가속기는 새로운 원소의 발견은 물론 물질의 미세구조를 비파괴 방식으로 탐구하는 데 활용될 수 있다. 현재 동위원소 중 인류가 발견하지 못한 것은 수천 개로 알려져 있다. 중이온가속기가 가동되면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은 희귀동위원소를 발견해 이를 일상 생활과 연계하는 것도 가능하다. 항성의 마지막 단계인 초신성은 엄청난 폭발과 함께 희귀동위원소들이 생성되고 무거운 원소가 만들어진다. 중이온가속기는 희귀동위원소의 생성 메커니즘을 재현해 별의 생성과 진화 과정에 대한 비밀도 밝혀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박 교수는 "생물학이나 의학적 관점에서 볼 때 중이온가속기의 특성은 감마선이나 전자선과는 전혀 다르며 이에 대한 생명체의 반응 역시 크게 다르게 나타날 것"이라며 "빔에 대한 생명체의 반응을 연구하고 그 결과를 해석함으로써 기존에 알려진 지식의 틀에서 벗어나 생명체가 간직하고 있는 무궁한 미지의 세계를 탐험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과기정통부 사업점검 TF는 사업비의 면밀한 재산정과 일정 검토를 진행하여 총사업비 증액 없이 당초 목표 달성이 가능하도록 일부 장치를 구조조정하고, 건설사업비 예산을 절감해 부족한 장치 구축비에 투입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이에 따라 2011년 착수 이래 사업 지연 등 장치 구축 사업비 증가 요인이 있었던 중이온가속기 건설구축사업은 이번 개발자, 활용연구자 및 관련 과학계의 합의를 거친 사업 구조조정 방안을 통해 주위의 우려를 불식하고 향후 사업 추진에 탄력을 받게 됐다. 또한 중이온가속기 활용성 검토 결과, 출력 및 실험장치 가동률을 고려할 때 수용인력(초기 200여 명, 2029년 이후 600여 명) 대비 활용 인력(국내 150~500명·해외 1000명 이상)이 충분한 것으로 파악됐다.

[원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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