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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8 (토)

한반도에 핵전쟁? 현실·상상 버무린 첩보액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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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우석 감독이 만든 영화 ‘강철비’

북한 쿠데타, 핵전쟁 가상 시나리오

정우성·곽도원 ‘남남케미’ 돋보여

과도한 우연, 허술한 구조 아쉬워

중앙일보

한반도에서 핵전쟁이 일어나는 상황을 소재로 한 첩보 액션 블럭버스터 ‘강철비’. 북한의 최정예 요원으로 분한 정우성이 탄탄한 연기력을 선보인다. 그의 연기 이력에 중요한 변곡점이 될 작품이다. [사진 NEW]


이것은 대한민국에서 벌어질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 중에서도 가장 끔찍한 상황이다. 누구라도 한 번쯤 생각해볼 순 있지만, 상상만으로도 감당하기 힘든 공포감이 바로 쓰나미처럼 밀려드는 질문이기도 하다. 한국에서 핵전쟁이 일어난다면?

2013년 ‘변호인’으로 1000만 관객을 기록한 양우석 감독이 북한 핵 이슈를 2017년 겨울 극장가 한가운데로 끌고 왔다. 한국 영화 최초로 핵전쟁을 다룬 영화 ‘강철비’ 얘기다. 북한의 쿠데타 발생과 대미 선전포고, 미국의 핵 선제공격 논의, 남한의 계엄령 선포 등 아찔한 상황을 모두 불러왔다. 북한에서 쿠데타가 발생하자 북한의 최정예요원 엄철우(정우성)는, 개성공단이 미군의 MLRS (일명 스틸레인) 공격을 받은 위기 상황에서 치명상을 당한 ‘북한 1호’를 데리고 남한으로 내려온다. 정보를 입수한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인 곽철우(곽도원)는 엄철우에게 접근한다. 일촉즉발 핵전쟁의 위기에서 남북한의 두 철우는 점점 가까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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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인 웹툰 ‘블루레인’의 두 인물. [사진 NEW]


영화는 김정일의 사망으로 혼란에 빠지는 대한민국을 그린 웹툰 ‘스틸레인’(2011)에서 출발했다. 양우석 감독이 직접 글을 쓰고 제피가루가 그린 ‘스틸레인’은 연재 당시 북한 김정일의 사망을 예측해 조회 수 1000만을 돌파하며 큰 화제를 모았다.

11일 언론 시사를 마치고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양 감독은 “2006년 북한의 1차 핵 실험에 대한 보도를 접한 이래 10여년간 자료 조사를 해오며 북한 핵 문제에 대해 천착해왔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우리는) 북한 핵을 정면으로 바라보기보다 회피하는 느낌이 있다”며 “하지만 남북이 처한 엄혹한 현실에 대해 냉철한 상상을 해보자는 의미에서 작품을 기획했다”고 말했다.

영화는 묵직한 주제를 다루지만 첩보 액션 블럭버스터답게 영화적 상상력으로 극적인 재미를 최대한 살리겠다는 전략을 구사한다. 중량감 있는 주·조연 배우들의 빈틈 없는 연기, 실제 교전을 방불케 하는 액션, 유머를 곁들여 긴장의 완급 조절 등에 대한 정밀한 계산이 돋보인다. 그중에서도 가장 빛을 발하는 것은 정우정과 곽도원, 두 동갑내기 배우의 ‘남남 케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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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강철비’의 곽도원과 정우성. [사진 N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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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배우 정우성에게 ‘강철비’는 그의 연기 이력에 중요한 변곡점으로 기록될 듯하다. 북한 사투리에서부터 민첩한 액션은 물론, 순수와 불안, 신뢰와 우직함이 미묘하게 묻어난 정서를 탄탄하게 소화해냈다. 곽도원 역시 스마트하면서도 적당히 능글맞고, 신념 있는 엘리트로 완벽하게 분해 입체적인 캐릭터를 보여준다. 물과 기름처럼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중년의 남자가 ‘딸들이 좋아하는’ 지드래곤의 노래를 함께 들으며 가까워지는 과정을 지켜보는 재미가 남다르다. 여기서 지드래곤의 노래는 남과 북을 이어주는 중요한 매개다. 양 감독은 “(북한 주민들에게도) 한국 음악, 빅뱅이 인기 있다고 하더라. (영화가) 전쟁을 다루는 데다 워낙 주제가 무거워 경직될 것 같아서 젊은 관객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영화는 지나친 우연의 남발 등으로 몰입이 쉽지만은 않다. 부상을 당한 ‘북한 1호의 남한 피신’이라는 설정도 그중 하나다. 북한 요원이 차를 달려 남한을 제집처럼 드나들고, 국군 병원의 방어망을 너무 쉽게 뚫고 공격하는 상황 등도 과한 설정으로 비친다. 엄철우와 곽철우의 만남 등 영화에서 벌어지는 많은 우연들을 ‘운명’이라고 눙치고 넘어간다. 캐릭터의 감정선을 따라가며 보는 관객들은 캐릭터를 통해 보여지는 휴머니즘에 고개를 끄덕이지만, 이 역시 반응의 온도 차가 꽤 나는 대목이다.

‘강철비’가 분단영화로서 얼마나 진화했느냐는 또 다른 논쟁거리가 될 듯하다. 김형석 영화 평론가는 ‘강철비’가 “한국 영화의 분단 서사의 소재를 확장했다”고 평가하면서도 “다소 허술한 구조와 동의할 수 없는 결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고 말했다. 북한 캐릭터인 엄철우를 둘러싼 극단적인 설정 등도 기존의 분단 영화의 틀에서 크게 달라진 게 없어 보인다는 설명이다. 조재휘 영화평론가 역시 “ ‘공조’(2016)와 ‘브이 아이 피’(2017)의 소재와 틀을 반복하는 서사적 상상력이 아쉽다. 사회정치상에 발목잡힌 한국 상업영화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영화가 종국에는 클리셰 덩어리인 통일 소재의 신파극으로 마무리를 지었다”고 평했다. 다양한 캐릭터의 입장을 통해 한반도 정세를 둘러싼 각국의 이해관계를 충실히 녹여내려고 시도하고, 액션과 유머를 탄탄하게 곁들였지만 ‘어쩐지 (시사) 강의를 듣는 것 같다’는 평가도 없지 않은 이유다. 관객들과 소통하기 위해서 더 많이 (날을) 벼리고, (사족을) 더 많이 버렸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아쉬움이 떨쳐지지 않는다.

양우석 감독은 “‘변호인’이 송우석을 통해 국가란 무엇인가를 성찰하게 되는 과정을 그렸다면, ‘강철비’를 통해서는 냉철하게 우리의 앞날에 대한 상상을 그려 봤다”고 말했다. 14일 개봉.

이은주 문화선임기자 ju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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