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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8 (토)

[One Scene One Story]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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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오늘은 저의 친구 박아무개의 생일이에요. 축하곡으로 마이클 잭슨의 '벤(Ben)'을 신청합니다."

부자들이 모여 사는 동네도 골목은 어두웠다. 먼지 쌓인 갓 아래 백열등이 깜박이던 시절이었다. 긴 그림자를 끌며 돌아오는 가장(家長). 그의 걸음마다 땀내가, 때로는 술내가 고였다. 그의 뒤를 통금(通禁)이 재촉했다. 녹슨 철문이 덜컹 소리를 내며 닫히면 비로소 고단한 하루가 마지막 숨을 몰아쉬었다.

겨울이면 외풍이 심해 연탄불이 달군 아랫목 이불 아래 엎드려 숙제를 했다. 라디오는 가끔 주파수 동조가 되지 않아 웅웅거렸다. 벤은 영화음악인데 1972년에 나왔다. 그러니 '별이 빛나는 밤에'는 이종환이 진행했으리라. '밤을 잊은 그대에게'는 양희은 아니면 서유석, 혹시 황인용이었을 테고.

'벤, 나만의 친구가 있으니 외롭지 않아. … 모든 사람이 네게 등을 돌려도 그들이 하는 말은 듣지 않아. 나처럼 널 보지 않으니까 …'

뉴스진행자 손석희가 지난 6월8일 '앵커 브리핑'에서 이 영화와 노래 얘기를 했다. "벤은 영화에 등장하는 쥐의 이름입니다. 사람과 쥐의 우정과 배신… 그리고 복수… 이 영화는 공포영화였습니다." 그는 몇 마디 덧붙였다. '벤'은 속편(續篇)이고, 한 해 전에 나온 '윌라드'가 1편이라는 것이다.

'외로운 소년 윌라드가 벤이라는 쥐와 지내며 교감하지만 반목과 배신이라는 우여곡절 끝에 죽임을 당한다는 공포영화….'

기자는 얼마 전 반려견을 잃었다. 그 뒤로 오랫동안 영화와 노래와 손석희의 말을 생각했다. 반려견은 식구였지만 녀석을 싫어한 손님도 적지 않았다. 같은 개를 놓고도 사람마다, 상황마다 시선과 태도에 차이가 있다. 누군가에게 개는 그냥 음식 재료다. 최근 개를 식용할 목적으로 전기도살한 농장주에게 법원이 무죄를 선고하자 동물보호단체들이 반발했다는 신문 보도도 있었다.

1편은 몰라도 2편은 알았기에, 누가 잭슨의 노래를 축하곡으로 신청하면 비웃었다. '임마, 벤은 불에 타 죽은 쥐란 말야….' 그러나 얼마나 부당한 짓이었던가. 지금 와서 생각하니 방송국에 엽서를 보내 마이클 잭슨의 노래를 친구의 생일 축가로 신청한 그 시절 하이틴들이 영화를 몰랐든 알았든, 잘못을 가릴 일은 아니었다. 대개 쥐를 싫어하지만 쥐와 친구가 된 소년도 있을 것이다.

huhb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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