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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mg' 순한 담배?…타르·니코틴 적으면 건강에 덜 해로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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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함량 마케팅은 담배 회사의 '꼼수'

더 깊이 들이마시고 더 많은 양 피워

일반 담배와 유해성도 별 차이 없어

"소비자 헷갈리는 성분 표기 규제해야"

중앙일보

타르·니코틴 함량이 적은 저함량 담배가 일반 담배보다 건강에 더 좋은 건 아니다. [자료 한국건강증진개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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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르·니코틴 함량이 적은 이른바 '순한 담배'는 건강에 덜 해로울까? 이렇게 물으면 '덜 해롭다'고 답할 사람이 적지 않다. 하지만 담배 회사가 타르·니코틴 저함량(0.1mg 등) 등을 내세워 순한 담배라고 광고하는 데는 '꼼수'가 숨어있다. 흡연자에게 심리적 위안을 줘 금연 대신 흡연을 계속하게 하려는 것이다. 한국건강증진개발원은 최근 발간한 '금연이슈리포트'에서 이러한 저함량 담배의 함정을 짚었다.

저함량 담배는 흡연자에게 상대적으로 건강에 덜 해로울 거라는 인식을 준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보사연) 조사(2008년)에선 저타르 담배를 피워본 경험이 있는 흡연자 중 62.3%가 '저타르 담배가 일반 담배보다 건강에 덜 해롭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에서 진행된 비슷한 조사에서도 흡연자 60%는 저함량 담배의 유해성이 상대적으로 적다고 답했다. 프랑스 저함량 담배 사용자의 76%도 '언제든 금연할 수 있다'고 응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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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복지부와 한국건강증진개발원은 전 국민 흡연 예방과 금연 동기 강화를 위해 담배꽁초로 만든 자동차를 제작해 지난달 25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공개했다. &#39;오늘부터 금연하면 5년 뒤 차를 한 대 장만할 수 있다&#39;는 의미를 담았다. 장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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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저함량 담배의 유해성이 일반 담배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은 곳곳에서 입증되고 있다. 미국국립암연구소(NCI)는 1950년대 이후의 담배업계 광고와 내부 문건을 검토했다. 그 결과 저함량 담배가 비흡연자를 흡연으로 유도하고 흡연자들이 담배를 끊지 못하게 한다고 결론 내렸다.

저함량 담배 흡연자가 일반 담배 흡연자보다 타르·니코틴을 덜 흡입하는 것도 아니다. 한국건설생활환경시험연구원이 지난해 타르 저함량(0.1mg) 담배와 국내 흡연자의 흡연 습관을 연결시켜 분석해보니 '정반대'의 결과가 나왔다. 저함량 흡연자는 표기된 함량보다 최대 약 95배(9.5mg)의 타르를 흡입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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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순한&#39; 담배의 유해성이 일반 담배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연구가 많이 나오고 있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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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함량 담배가 일반 담배보다 유해성이 적지 않은 이유는 우선 흡연이 '중독' 증상이기 때문이다. 저함량 담배를 피우더라도 이미 담배에 중독됐기 때문에 우리 몸은 기존과 같은 양의 니코틴·타르를 필요로 한다. 일정한 니코틴양을 채울 만큼 담배를 피워야 금단 현상이 나타나지 않는다.

흡연자는 저함량 담배를 선택하더라도 연기를 보다 깊이 들이마신다. 또 더 많은 양을 피우게 된다. 보사연이 저타르 담배를 피워본 적 있는 흡연자를 조사한 결과 '일반 담배보다 더 세게 혹은 깊이 흡입한다'(59%)거나 '일반 담배보다 더 많이 피우게 된다'(58%)고 답한 사람이 절반을 넘었다.

이렇다보니 니코틴 함량이 적은 담배(0.35mg 미만)든, 높은 담배(0.35mg 이상)든 상관 없이 흡연자의 중독 수준은 비슷하다. 담배 중독 수준을 보여주는 니코틴 의존도(FTND) 점수나 호기(뱉는 숨) 중 일산화탄소 농도에서 별 차이가 없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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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한담배와 일반담배 사용자의 담배 중독 정도는 별 차이가 없었다. [자료 한국건강증진개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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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함량 담배의 유해성이 별반 차이가 없는 데엔 담배 연기의 성분 측정 방법도 영향을 미친다. 담배 연기 성분 측정은 국제표준화기구(ISO) 기준에 따라 기계로 이뤄진다. 모든 담배를 동일한 방법으로 고정시켜 매 1분마다 35ml의 담배 연기를 빨아들여 성분을 측정한다.

저함량 담배는 이러한 측정 방법의 한계를 이용해서 개발됐다. 담배 업계는 기계로 측정되는 함량을 낮추기 위해 담배 디자인을 바꿨다. 담배 필터에 촘촘한 구멍을 뚫어 기계가 담배 연기를 흡입할 때 외부 공기가 함께 유입되도록 해 농도를 희석시키는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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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함량 담배가 일반 담배보다 건강에 좋다고 생각하는 것이 착각인 이유. [자료 한국건강증진개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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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측정 기계가 담배 연기를 빨아들이는 건 실제 흡연자의 흡연 습관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 한다. 흡연자가 담배를 피울 땐 구멍이 나 있는 필터 부분을 입이나 손으로 막을 때가 많기 때문이다. 기계로 측정된 함량보다 많은 양의 유해성분을 흡입할 가능성이 큰 이유다.

미국국립암연구소(NCI)는 최근 연구에서 '안전한 수준의 흡연은 없다'고 단언했다. 함량과 관계없이 담배의 유해성분이 우리 몸에 흡수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타르·니코틴 등의 함량이 제품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줄 수 없도록 성분 표기 등도 규제 대상에 포함하자는 목소리가 나온다.

세계보건기구(WHO)의 담배규제기본협약(FCTC)에선 '담뱃갑에 표기되는 정보 가운데 소비자를 현혹시키거나 잘못된 메시지를 전달할 가능성이 있는 모든 요소를 최대한 배제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담배 성분과 관련해 성분의 양적·질적 정보를 담뱃갑에 표기하는 것을 금지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담배 업계는 담뱃갑에 니코틴·타르·일산화탄소 함량을 표기하는 게 소비자의 선택권을 돕는 정보라고 강조한다. 본인의 기호에 맞는 담배 제품을 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FCTC는 '함유량 정보가 특정 담배제품이 다른 담배제품에 비해 덜 유해하다는 인상을 심어줄 수 있다. 함유량이 적다고 담배의 유해성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고 명시한다.

조홍준 서울아산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담배에 라이트·마일드라는 표시를 할 수 없도록 한 건 흡연자가 순한 담배로 인식하지 않도록 하는 취지다. 저함량도 이와 같은 맥락의 문제"라며 "건강을 위해서는 담배 회사의 꼼수에 속지 말고 금연하는 것 만이 답"이라고 말했다.

이민영 기자 lee.mi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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