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영상에 나온 저를 보고 숨을 쉴 수 없었어요"
신고해도 인력부족 등 이유로 3달 이상 걸려
직접 삭제 나섰지만 지워도 지워도 또 등장
A씨는 잠도 못자고 계속 영상을 찾아야 했다. 비슷한 제목으로 다른 사이트에서 수십 개가 나왔다. 혼자 힘으론 동영상을 모두 찾을 수 없다고 판단해 동영상 삭제를 하는 전문업체를 찾아 문의했다. 비용이 수백만원에 달했다.
할 수 없이 3개월 가까이 인터넷을 뒤지며 영상을 발견할 때마다 해당 사이트 운영자에게 삭제를 요청하는 e메일을 보냈다. 그러나 일정 기간이 지나면 다른 사이트에 비슷한 이름으로 영상이 또 올라왔다. A씨는 “몇달 사이에 살이 거의 10㎏ 가까이 빠지고 회사 생활도 너무 힘들어서 이렇게 사느니 그냥 내가 죽는 것이 더 편하겠다고 생각했다”며 “경찰에 신고하면 주변 사람들이 알게 될 것 같아서 두렵고 경찰서를 들락거릴 자신도 없었다”고 밝혔다. 몰카 영상을 확인한 후 A씨의 일상은 엉망진창이 됐다. 사건 이후 그는 친구들과의 연락도 끊었다. A씨는 “옛 영상이 유포돼 다른 사람이 보게 되리라곤 생각도 못했다”며 “유포자를 잡는다 해도 이미 수백, 수천 명이 봤을텐데 모든 사람을 다 잡을 수도 없다”고 토로했다. A씨는 "제발 그 영상을 보지 말라고 하고 싶다, 그 영상의 여성은 포르노 배우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고 절규했다.
대한민국은 ‘디지털 인권’이 없는 나라였다. 정보와 관련된 인간의 기본권을 통칭하는 ‘정보기본권’은 현행 헌법에 명시되지 않고 있었다. 헌법 전문(前文)과 130개 조항 중 ‘정보’가 한 번 등장하지만 ‘국가는 과학기술과 정보를 통해 국민 경제 발전에 노력해야 한다’(127조)는 국가 개발 수단으로 언급됐을 뿐이다. 본지가 1987년 개정된 현 헌법의 사각지대를 취재하는 과정에서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한사성)를 통해 익명의 두 여성에 대한 피해 사례를 받은 결과 온라인 공간에서의 몰카·직캠 영상 재유포는 심각한 수준이었다. 한사성이 피해 여성을 상담한 뒤 재유포 행위를 주로 하는 ‘헤비업로더(Heavy uploader)’를 경찰에 신고해도 “사이트 탈퇴 회원이라 유포자를 특정할 단서가 없어 내사종결했다”는 식의 답변 뿐이었다.
몰카나 직캠(직접 찍은 동영상) 피해자들은 광범위한 재유포를 막기 힘들어 고통을 받는다. [중앙포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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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뒤 경찰서에서 전화가 왔다. B씨가 채증한 자료에 “채증 시간과 피해자의 성기 스샷(스크린샷)이 없어서 유포자들에게 음란물유포죄를 적용할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B씨는 “(영상이)유포된 것도 억울한데 그런 말을 들으니 마음이 뜯기는 것 같았다”고 했다.
그는 “방심위에 유포된 사이트를 신고해도 최소 1달 이상 심의가 걸리고 경찰에선 인력부족과 사건의 순차적 해결을 위해 최소 3달 이상은 걸린다고 했다”고 밝혔다.
돈을 내고 영화나 게임 등의 콘텐트를 다운로드 받을 수 있는 P2P 사이트는 개인정보의 암시장과도 같다. 조금만 검색하면 여성의 얼굴이 담긴 영상이나 사진이 수두룩하게 나온다. ‘○○녀’ ‘○○대 G컵녀’ 등 자극적인 별칭이 붙은 영상들은 대개 몰카들이다.
피해자들은 마땅히 대응할 방법을 찾기 힘들다. 최초 유포자에 대한 법적 처벌 근거는 있지만 수위가 약하고 적용 범위도 애매한데다 광범위하게 이뤄지는 재유포를 막기 어렵다. 현행법상 몰카 유포는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 행위고, 몰카가 아니더라도 최소한 ‘정보통신망 이용 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의 음란물 유포죄에 해당한다. 각각 7년 이하 징역이나 3000만원 벌금, 1년 이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단순 재유포자들은 성폭력 처벌법이 아닌 정보통신망법이나 명예훼손 등의 다른 법이 적용된다. 성폭력 처벌법에 해당하는 ‘카메라 등 이용 촬영죄’로 처벌하려면 재유포 가해자가 피해자를 명확히 인지해야 하고, 해당 촬영물이 제작형 포르노물이 아닌 피해자가 존재하는 촬영물이라는 것 또한 인지해야한다. 서승희 한사성 대표는 “재유포가 단순 음란물 유포가 아니라 사이버성폭력 가해행위라는 시각으로 처벌조항이 신설된다면 사이버성폭력 피해촬영물의 유통이 급격히 줄어들 수 있을 것”이라며 “‘국산’ ‘국노’ ‘유출’ ‘국’ 등 피해촬영물임을 암시하는 키워드를 제목에 포함한 영상을 게시한 자는 ‘젠더폭력방지법’으로 처벌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젠더폭력방지법은 디지털 성범죄에 대해 유포를 방지하고 유포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자는 내용을 담은 법안이다. 정부는 젠더폭력방지법 제정을 국정과제로 추진 중에 있다.
김록환 기자 rokan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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