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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7 (금)

[기자수첩]'신체포기각서' 내는 방산업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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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방산 사업을 하는 게 회의가 듭니다"

얼마 전 만난 방산업체 고위 관계자가 한 말이다. 요즘 방산업계는 이 업 자체를 왜 하는지 모르겠다는 한숨 소리가 들려 온다.

두달 넘게 검찰이 한국항공우주산업(KAI)에 대한 수사를 하면서 '방산은 곧 비리'라는 여론의 매를 맞는 것도 모자라, 군과의 불공평한 계약 때문에 이익은커녕 손해만 볼 수 있어 수주에 뛰어들기가 무섭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이다. 한마디로 의무를 행하지 못하면 장기를 내주기로 약속하는 '신체포기각서'를 쓰는 듯한 기분이란다.

방산은 안정적인 사업으로 인식돼왔다. 정부를 상대로 하는 계약이다 보니, 속된 말로 돈을 떼일 염려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군이 주요부품 국산화를 정책으로 세우고, 업체들이 자체 개발에 뛰어들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성능 결함 등으로 인도가 지연되면서 물어줘야 할 '지체상금'이 과도하게 어깨를 짓누르기 시작한 것이다.

문제는 업체 탓이 아닌 경우에도 '지체상금'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방사청은 업체와 계약을 맺을 때 특정 부품을 직접 구입해 설치를 요구하거나 협력사를 직접 지정할 수 있는데 여기서 발생한 문제도 책임은 업체가 진다.

현대로템이 9000억원 규모에 수주한 K2 전차는 협력사의 변속기 결함 때문에 900억원이 넘는 지체상금을 내야 할 상황이고, 대우조선은 통영함 인도가 1년 2개월 가량 늦어지면서 지체상금 909억원을 부과받고 소송 중이다.

수주 금액이 1590억원 중 절반 이상이 벌금으로 나가게 생긴 것이다. 문제가 생긴 부품은 방사청이 구입한 장치로 대우조선은 설치만 해 억울하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또 하나 방사청이 해외업체에 발주를 낼 때는 지체상금 상한액이 10%인데, 반대로 국내 업체는 '무한대'다. 이유가 뭘까. 해외업체들은 WTO(세계무역기구)에 제소할 수 있고, 국내 업체들은 '어차피 늦은 거 계속 늦게 납품할 것 같아서' 그렇게 정했단다. 채찍만 휘두르면 점점 하기 싫어진다. 납품기한을 줄인 업체에겐 인센티브를 주는 '당근'을 제시하는 방법을 고려하는 건 어떨까.

머니투데이

강기준 기자 stand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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