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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8 (토)

38년 출판·문학의 산실, '대학로 시대' 막 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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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터' 직원들, 대학로 붉은 벽돌 사옥 떠나며 '이별 행사']

피천득·장영희·최인호·이해인 등 수많은 문인들 거쳐간 사랑방

故 김재순 창립자 별세한 이후 상속세 부담에 혜화동으로 이전

"사랑하던 이와 이별하는 것 같아"

"좀 환하게 웃어봐요." "키 작은 사람들이 앞에 서고."

15일 오후 6시쯤 서울 대학로 혜화역 앞 담쟁이덩굴로 둘러싸인 붉은 벽돌 건물 앞에서 사람들이 쭈빗쭈빗 열을 맞췄다. 단체 사진을 찍기 위해 모여든 사람은 27명. 월간지 '샘터' 직원들이었다. 이날 촬영은 정든 건물과 이별을 고하는 직원들의 조촐한 행사였다. 샘터에서 31년간 일해온 박은숙(57) 이사는 "사랑하던 이와 이별하는 것 같다"고 했다.

이 건물은 한국 대표 건축가 고(故) 김수근(1931~1986)씨가 설계해 1979년 완공됐다. 건축가들 사이에선 '붉은 벽돌 건물의 효시(嚆矢)'로 불린다고 한다. 지난 38년간 '샘터'의 사옥이었다. 문화를 사랑하는 대학로 예술인과 학생들의 보금자리이기도 했다. 이번에 샘터가 사옥을 이전하고 새 주인을 맞게 된 것이다. 김성구(57) 샘터 대표는 "22일 동숭동 대학로에서 인근 혜화동으로 이사한다"고 했다.

조선일보

15일 서울 대학로 혜화역 앞 사옥 이전을 기념해 사옥 앞에 모인 월간지‘샘터’김성구(맨 앞 모자 쓴 남성) 대표와 직원들. /김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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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터 사옥의 '스펙(명세서)'은 지하 2층~지상 5층 구조에 연건평 2025.4㎡(613평) 벽돌 건물. 그것으론 설명이 부족하다. 30만 독자가 보는 국내 최장수 교양 월간지 샘터를 지금까지 펴냈고, 1984년엔 대학로 소극장의 원조 격인 샘터파랑새극장이 문을 열었다. 건축사적 의미도 크다. 1층 면적 상당 부분은 대로변과 건물 뒤편 이면도로를 연결하는 통행로다. 2층으로 연결되는 계단은 건물 내부가 아니라 외부 대로변과 연결돼 있다. 누구에게나 열린 공간이었다. 1979년 제2회 한국건축가협회상을 받았다. 김수근씨의 제자인 건축가 승효상(65) 이로재 대표는 "이윤만 추구하지 않고 공공 영역으로 공간을 내줬다는 점을 높게 평가해야 한다"고 했다.

김 대표는 "지난해 아버지(샘터 창립자 김재순 전 국회의장)가 돌아가신 뒤 상속세 부담이 컸다"며 "가업(家業)인 출판을 지키려면 사옥을 처분하는 길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1970년 4월 창간해 지령 572호를 찍은 월간 샘터는 '평범한 사람들의 행복을 위한 교양지'란 슬로건 아래 작지만 따뜻하고 코끝 찡한 사연들을 소개했다. 시인 피천득(1910~2007)과 소설가 최인호(19 45~2013), 수필가 장영희(1952~2009) 등 국민의 사랑을 받은 문인들이 샘터를 거쳐갔다. 최인호씨 연작소설 '가족'은 1975년부터 35년간 연재돼 국내 잡지 사상 가장 긴 연재물이 됐다. '노란 손수건' 'TV동화 행복한 세상' '길 없는 길' 등 밀리언셀러도 여럿 나왔다. 법정(1932~2010) 스님은 생전에 '고산순례' '산방한담'을 샘터에 연재했고, 이해인(72) 수녀도 '두레박' '꽃삽' 같은 샘터 칼럼을 통해 독자와 만났다.

샘터 사옥은 투자회사 '공공그라운드'가 인수한다. 공공그라운드는 샘터 사옥에 스타트업이나 비영리기구를 입주시켜 합리적인 대여료를 받는 '공용 공간'으로 사용할 예정이다. 파랑새극장은 보수 후 직접 운영하고, 시민을 위한 공간으로 내준 1층 역시 그대로 둔다고 한다. 김 대표는 "이윤만 따지지 않고 샘터 사옥의 역사적 의미와 문화적 가치를 유지·보존할 수 있는 사람을 인수자로 찾아왔다"고 말했다.

[안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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