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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8 (토)

[고대훈의 시시각각] 피란민 2세가 보는 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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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간 민족공조·흡수통일 논의

북한 실체를 얕본 짝사랑이었다

중앙일보

고대훈 논설위원


나의 원적(原籍)은 함경남도 함흥이다. 서울에서 태어났지만 함흥에 터를 잡았던 아버지의 주소를 따라야 했기 때문이다. 평양 출신의 아버지와 함경남도 북청군 출신의 어머니는 6·25전쟁 중 1·4후퇴 때 피란 대열에 섞여 흥남까지 갔다가 잠시 대피할 요량으로 미군 보트에 탔다. 그게 경남 거제도까지 갈 줄은 몰랐고 실향민이 됐다. 이런 내력에 어린 시절 ‘아바이’ ‘에미나이’ ‘종간나’ ‘갑슴둥’ 등 거친 이북 사투리에 익숙했다. 일제, 전쟁, 피란으로 이어진 굴곡진 삶을 겪은 이북 분들에게선 특유의 기질이 느껴졌다. ‘북청 물장수’의 치열함, 실향민의 억셈, 기 죽지 않으려는 자존심, 이민족과 싸워온 북방의 강인함 같은 것이 배어 있다.

잊혀져 가던 나의 ‘북한 DNA’는 2000년 6월 분단 후 최초의 남북 정상회담 때 되살아났다. TV를 통해 처음 본 김정일의 평양 말투와 억양, 호탕한 제스처에 소름이 돋았다. 생전의 아버지와 너무도 흡사했다. 김대중 당시 대통령과 김정일의 포옹 장면은 원적 함흥에 가볼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높였다. 귀향에 들떠야 할 어머니의 반응은 차분했다. “이북 사람은 남한 사람과 다르다.” 그 이유는 설명하지 않았다.

이렇게 추측해본다. 당시 북한은 국제적 고립과 자연재해로 수백만 명의 아사자가 발생했던 ‘고난의 행군’을 막 벗어난 시기였다. “천년을 두고 흘릴 눈물을 다 흘려 보았고, 천년을 두고 겪을 시련을 다 겪어 보았다. 우리는 영원히 잊지 않으리라”고 했다(노동신문, 2000년 10월 3일). 북한은 한국사의 정통성을 ‘고조선→고구려→발해→고려→북한’에서 찾는다. 한반도의 적자는 북한이라는 자부심이 깔려 있다. 흡수통일이나 북한 붕괴론, 남북 연방제 논의는 북한 사람의 실체를 얕본 남한의 짝사랑에 불과했다. 그걸 어머니는 꿰뚫고 있었는지 모른다.

정상회담 이후 북한은 ‘민족공조’와 ‘우리민족끼리’를 외쳤다. “핏줄과 언어의 공통성은 민족을 특징짓는 가장 중요한 징표”라며 같은 민족이니 돕고 살자고 했다. 김대중 정부는 화해와 협력을 기조로 내세운 햇볕정책으로 맞장구를 쳤다. 노무현 정부는 평화 증진과 공동 번영을 추진했다. 이명박 정부는 북한의 비핵화와 개방을 통해 1인당 소득을 3000달러로 끌어올려 주겠다고 했다. 박근혜 정부는 ‘통일대박론’을 내세웠다. 일장춘몽도 이렇게 허망할 순 없다.

북한은 수소폭탄을 장착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확보하고 핵 국가로 인정받는 일만 남겨두고 있다. 미국이 북한의 핵무기를 완전히 파괴할 자신이 없는 한, 북한의 보복공격을 완벽히 방어할 자신이 없는 한 미국은 선제공격할 수 없다는 자신감을 북한은 얻게 됐다. 한국에는 “범 무서운 줄 모르는 하룻강아지처럼 쫄랑(호들갑)거리고 있는” 신세라고 조롱한다. 3700㎞짜리 탄도미사일을 북태평양에 발사하는 사실을 까맣게 모른 채 그 전날 CNN에 “북핵을 용인할 생각이 없다”는 말을 하고, 800만 달러의 대북 지원을 흘릴 정도로 우리 정부는 순진하고 낭만적이다.

1953년 9월 소련 공산당 제1서기가 된 흐루쇼프는 핵무기 사용이 지구 문명을 파괴할 수 있다는 보고를 받고 충격에 빠졌다. “며칠 동안 잠을 잘 수 없었다. 나는 우리가 이 무기를 못 쓰리라는 확신이 서자 비로소 잠을 잘 수 있었다.”(리처드 로즈의 『수소폭탄 만들기(Dark Sun)』) 이게 64년 전 얘기다. 지금의 북한 수소폭탄 위력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자칭 대화론자들은 북한이 미치지 않고선 핵무기 사용이라는 자멸을 택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김정은이 미치지 않고 흐루쇼프와 같기를 기도하며 그의 자비에 내 운명을 맡겨야 하는가.

고대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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