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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8 (토)

[중앙시평] 왜 중국 시장은 그리 위험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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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공산주의 국가이기에

아무리 시장경제 도입했어도

법의 지배나 재산권 확립 어려워

약한 나라의 기업은 늘 서럽다

한국 정부에도 호소할 수 없다

출구전략부터 미리 마련해야

중앙일보

복거일 소설가


한 스무 해 전 85년 역사의 ‘뉴스위크’에서 영국 출신 홍콩 경영자의 얘기를 읽었다. 그는 중국인 기업가 리카싱(李嘉誠)을 위해 일했는데, 당시 리와 불화해서 그만두었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는 전문경영인이 대주주와 맞서는 일은 없다고 단언했다. 다만 자신은 중국에 투자하려는 리에게 “중국은 아직 법의 지배가 시행되지 않는 나라라서 투자가 위험하다”고 건의했다고 밝혔다.

중국에 대한 투자가 크게 일었던 때였다. 중국 정부는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갖가지 혜택을 내밀었고, 방대한 중국 시장에 매료된 외국 기업가들은 앞다퉈 중국 시장으로 들어갔다. 그런 상황에서 중국 시장에 내재된 위험의 본질을 정확하게 짚은 것은 신선했다.

그 뒤로 나는 리카싱의 투자를 흥미롭게 지켜보았다. 원래 중국인이고 홍콩에서 영업하면서 중국 공산당 정권과 두터운 인맥을 쌓았을 터이니, 위험이 크더라도, 그는 자신의 투자를 비교적 잘 지킬 터였다. 한동안은 실제로 그의 투자가 크게 성공한 것처럼 보였다.

2015년 갑자기 중국 신문들이 그를 공격했다. 중국에서 돈을 벌었는데, 외국으로 재산을 빼돌리는 것은 배은망덕이라는 얘기였다. 중국 신문들과 지식인들은 모두 중국 정부의 의견을 그대로 전달하므로, 리가 중국 지도자들의 반감을 산 것은 분명했다. 그리고 며칠 뒤 비난이 일제히 멈췄다. 리는 자기 재산을 둘로 쪼개서 중국과 홍콩의 부동산을 소유한 기업은 홍콩에 그대로 두고, 다른 사업들을 하는 기업은 케이맨 군도로 이전했다. 그가 소유한 기업들이 홍콩 증권거래소 시가총액의 4%를 차지하는 터라, 그런 결정은 깊은 뜻을 지녔다.

즉 리는 중국만이 아니라 이제는 홍콩까지도 안전한 곳이 못 된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렇게 중국과 홍콩에서 재산을 서방으로 이전하는 데 얼마나 큰 비용을 치렀는지는 물론 알려지지 않았다. 분명한 것은 리와 같은 거물도 중국 시장의 본질적 위험은 피하지 못했다는 것과 그가 지금이라도 서둘러 발을 빼는 것이 현명하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왜 중국 시장은 위험한가? 왜 우리 기업들이 처음엔 잘 되다가도 결국 거의 다 파산하고 기업가들이 목숨을 건지려고 야반도주하는가?

중앙일보

가장 근본적 요인은 중국이 공산주의 국가라는 사실이다. 공산주의 국가는 법의 지배나 재산권이 확립될 수 없는 곳이다. 공산주의와 같은 전체주의는 도덕이나 법과 같은 객관적 기준을 인정하지 않는다. 절대적 권력을 지닌 지도자가 제시하는 목표에 사회적 역량을 집중하는 체제이므로, 그런 목표의 달성에 이바지하는 행위들은 도덕적이고 아니면 부도덕하다. 객관적 도덕률이 존재할 수 없으니, 법다운 법이 존재할 수 없다.

이념적으로 파산한 중국 공산당 정권이 공산주의 체제에 어긋나는 시장경제를 도입했어도, 그런 근본적 수준의 변화까지 이행한 것은 아니다. 그래서 공산당이 다스리는 한 중국엔 재산권이 확립될 수 없다.

게다가 위험이 닥쳤을 때 서방이나 일본 기업들과 달리 우리 기업들은 자기 정부에 호소할 수 없다. 약한 나라의 기업은 늘 서럽다. 이 사실은 우리에게 아프게 일깨워준다. 언젠가 중국이 공산당의 통치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국가가 되어도, 적어도 우리 기업들엔 중국은 무척 위험한 시장으로 남으리라는 것을. 공산당 정권이 무너져도, 그들이 정권의 유지를 위해 한껏 고조시킨 민족주의는 여전히 거셀 것이다.

중국 시장은 앞으로 더욱 중요해질 터이므로, 우리 기업들은 외면할 수 없다. 더할 나위 없이 위험하지만 그래도 진출해야 한다는 현실 앞에서 우리 기업가들이 고뇌한다. 여기서 긴요한 것은 중국 시장에 내재한 위험의 성격을 제대로 인식하는 일이다. 중공군의 침입으로 재앙을 겪은 나라에서, 중국이 공산주의 국가라는 사실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드문 것은 참으로 걱정스럽다. 우리 기업들은 그런 위험을 고려해 진출 전략을 짜야 한다. 되도록 몸집을 줄여서 상황이 나빠질 때, 최악의 상황으로 몰리기 전에 발을 뺄 수 있는 출구전략을 미리 마련하는 것이 특히 중요하다.

정부의 각성은 더욱 중요하다. ‘사드 보복’이라는 중국의 횡포에 대해, 우리 정부가 그 부당성을 지적하고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하는 것은 기본이다. 중국을 화나게 하는 것이 두려워 기본적 조치조차 취하지 못하는 것은 우리의 비겁함을 드러내서 우리의 협상력만 약화시킨다.

복거일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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