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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9 (일)

"복지확대 전에 비용부터 공개하고 정부가 전국민 재원 분담 요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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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기부르는 시민실패 / 국가재정 권위자 오연천 울산대 총장의 조언 ◆

매일경제

"복지를 비롯한 정부 정책의 비용은 국민 모두가 함께 부담해야 할 몫입니다. 국민 전체의 자발적 납세의식을 키우는 동시에 정부는 부자들에게만 분담을 요구할 것이 아니라 노조를 비롯한 모든 사회 구성원에게 비용 분담을 요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최근 저서 '국가재정의 정치경제학'을 출간한 오연천 울산대 총장은 지난 1일 매일경제신문과 인터뷰하면서 "공공 일자리와 복지를 대폭 늘리는 정책 방향 전환에 대한 국민의 선택과 동의가 있어야 한다"며 "국민에게 선택을 물을 때는 증가하는 비용이 공동체 전체의 부담이라는 것을 숨김없이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평생을 재정 분야 연구에 매진해온 오 총장은 "결국 표심을 얻기 위해 혜택만 앞세우고 비용은 숨기는 이중적인 정치권과 정부의 자세가 잘못된 선택에 따른 '시민실패'를 낳는 것"이라며 "세출 구조조정, 효율적 지출과 같은 수사는 줄이고 솔직해질 때"라고 강조했다.

예를 들어 '탈(脫)원전'에 대한 공론화를 기왕 한다면 정파나 시민단체의 이해관계를 넘어 논의 단계에서 국민 대표성을 확보한 뒤 모든 정보와 옵션을 가감 없이 공개해 산업과 환경에 대한 정책 우선순위부터 결정하는 단계적 수순을 밟아야 결론에 대해 모든 국민이 납득할 수 있을 것이란 설명이다.

그는 "정부의 역할은 시대 요구에 따라 변하는 것이고, 불평등과 양극화 해소에 대한 목소리가 높은 지금은 정부 역할 확대가 필요하다"고 인정했다. 하지만 "박근혜정부의 실패를 시장실패로 규정하고 무조건적인 정부개입의 근거로 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지난 정권의 실패야말로 정치의 실패, 넓은 의미의 정부실패"라고 단언했다.

오 총장은 "결국 선진국이 이뤄낸 복지 확대와 분배정책의 성공은 자발적 납세의식에 대한 높은 국민 수준이 만들어낸 것"이라며 "현재 한국에서처럼 비용 분담을 부자와 근로자 간의 이분법적인 패러다임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고 조언했다.

또한 그는 "정책 변화는 정권이 바뀌었다고 급진적으로 이뤄지기보다는 균형을 깨지 않는 수준에서 점진적으로 추진하는 게 바람직하다"며 "국회 입법을 비롯한 제도개혁을 통해 정책 기조를 바꾸는 것이 가장 광범위한 동의와 합의, 검토를 거치는 점진적인 방안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공약 달성 등을 위해 무리하게 정책을 추진하기보다는 100시간이 넘는 의회질의와 900회가 넘는 답변 횟수를 거친 일본 우정공사 민영화 사례를 벤치마크해야 한다고 오 총장은 밝혔다.

오 총장은 최근 문재인정부의 '소득주도 성장'에 대해서는 "단기적으로 효과를 볼 수는 있을지 모르지만, 중장기적인 성장동력원이 된다고는 볼 수 없다"며 "특히 복지 제도를 소득주도 성장과 연계시키는 구상은 옳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복지는 그 자체로 취약계층에 대한 사회안전망 역할일 뿐, 성장과의 연계성은 말할 수 없다"며 "성장보다는 사회통합 측면에서 복지제도를 바라봐야 한다"고 말했다.

오 총장은 '증세 없는 복지'로 인한 재정 적자 우려에 대해 "아직까지 한국은 재정건전성이 높아 위기가 닥칠 가능성은 낮다"면서도 "과거 외환위기 시절을 돌이켜보면 한국은 선진국인 미국이나 일본과 달리 재정건전성이야말로 국가의 최후 보루라는 인식으로 절박하게 지켜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정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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