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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9 (일)

SK이노 "노사 소모전 막자"…임금인상률=물가상승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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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첫 '물가연동임금제'

매일경제

국내 대표 정유·화학기업인 SK이노베이션이 대기업 최초로 임금인상률을 물가에 연동하기로 노사가 합의했다. 임금단체협상 때마다 인상 폭을 둘러싼 소모적인 노사 갈등을 풀기 위한 파격 조치로, 다른 대기업으로 확산될지 주목된다. 이 회사 노사는 기본급의 1%를 떼어 내 사회적 상생을 위한 기부금으로 활용하는 데도 합의했다.

10일 SK이노베이션 노조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2017년 임금 및 단체협약안'을 표결에 부쳐 지난 8일 밤 조합원 중 73.6%의 찬성으로 통과시켰다고 밝혔다.

노사가 임금인상률을 결정하는 기준점으로 삼은 지표는 통계청의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로, 올해 임금인상률은 작년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인 1.0%가 적용된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해 임단협 합의 과정에서 노사 간 입장 차를 좁히지 못해 중앙노동위원회 중재까지 받는 등 진통을 겪은 바 있다. 노사는 올해 임단협 테이블에서 '지난해와 같은 전철을 밟지 말자'는 공감대를 형성한 뒤 임금인상률을 소비자물가지수에 연동시키는 파격적인 선택을 했다.

매일경제

김준 사장


김준 SK이노베이션 사장은 "소모적이고 관행적인 임금협상을 과감히 없애고, 상호 간 신뢰에 기반한 임금 교섭 프레임을 도입했다"며 "단지 임단협뿐만 아니라 노사관계 전반에서 갈등의 불확실성을 해소하고 신뢰를 쌓는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합의안이 적용되는 근로자는 SK이노베이션과 소속 계열사 생산직 직원 3000여 명이다.

이들의 올해 임금 인상 폭은 자동 호봉 승급분 약 2.7%에 지난해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인 1.0%를 더해 총 3.7%가 된다. 노사는 소비자물가지수가 마이너스를 기록하면 전년과 같은 수준으로 동결하고, 급격한 지수 상승 등이 발생하면 추가 협의를 통해 적정 인상 폭을 결정하기로 했다.

임금인상률 결정은 통상 매출액 대비 인건비 비중 등 내부 상황에서부터 물가상승률과 같은 거시경제 지표를 종합적으로 고려한다. 단순히 소비자물가지수만 적용할 경우 인건비 상승폭을 직원들의 노동생산성이 따라오지 못하는 위험부담을 무릅쓰고 합의가 이뤄졌다. 또 노조는 이번 합의에서 그룹이 지향하는 사회적 상생 가치를 실천하기 위해 기본급의 1%를 기부금으로 활용하는 안을 통과시켰다. 다음달 1일부터 적용되는 사회적 상생 기부금은 3000여 명의 생산직 직원이 기본급의 1%를 자발적으로 내면 회사도 동일한 액수를 출연하는 '매칭 그랜트(Matching Grant)' 방식으로 운영된다.

아울러 노사는 입사에서 퇴직까지 연차에 따라 임금이 꾸준히 상승하는 현 임금체계를 바꿔 자녀 교육과 내 집 마련 등 목돈이 필요한 30대 후반~40대 중반 직원의 인상 폭을 키우는 방식으로 연차별 상승 폭을 조절하기로 합의했다.

회사 관계자는 "생산성과 근로자 생애주기에 맞춰 가장 시급하게 돈이 필요한 시점에 인상 폭을 키우고 50대 이후에는 인상 폭을 낮추는 합리적 구조로 임금체계를 가져가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SK이노베이션 노사는 기존 석유사업 중심에서 에너지·화학으로 포트폴리오를 개편하는 과정에서 글로벌 수요 감소 등으로 혹독한 고통을 치르기도 했다. 실적 악화 여파로 2014년과 2015년에는 모두 임금이 동결됐다.

사업구조 재편 과정에서 노사가 겪은 고통이 최근 정유·화학업계가 글로벌 수요 확대와 전기차 배터리 수요 폭증 등으로 전례 없는 '슈퍼사이클(초호황기)'을 누리는 시점에서 빛을 발하는 상황이다.

회사 관계자는 "매출 감소와 수익 악화, 구조조정의 아픔을 노사가 함께 겪으면서 쌓은 공감대와 가치 공유가 이번 합의안을 만들 수 있는 원동력이었다"고 강조했다.

조합원들의 합의를 이끌어 낸 이정묵 노조위원장은 "이번 임단협은 조합원 자긍심을 높이고, 대기업 노조가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방안을 깊이 고민한 결과"라며 "앞으로도 노조는 회사 성장이 구성원 및 사회 행복과 직결되도록 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재철 기자 / 김정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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