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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9 (일)

`비정규직 제로 선언` 인천공항…노조 난립·파업 무방비 숙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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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천공항 정규직화의 그늘 / 4개월 앞으로 다가온 인천공항 정규직 전환 ◆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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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3년 12월 9일 오전 8시 인천공항 탑승동 111번 게이트.

승객이 모두 내린 말레이시아 항공기와 탑승교가 분리되는 과정에서 서로 충돌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항공기 동체 아랫부분 30㎝ 정도가 찌그러지고 탑승교 체인이 손상됐다. 임시 방편으로 수리를 마친 항공기는 예정보다 3시간 늦게 말레이시아로 출발했다.

사고는 인천공항 비정규직 직원들이 정규직 전환, 임금 인상 등을 요구하며 개항 이래 첫 전면파업에 들어간 지 사흘째 되던 날 터졌다. 당시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인천공항지역지부는 탑승교 지회를 시작으로 환경지회 설비지회 소방지회 순으로 파업에 대거 돌입했다. 인천공항은 탑승교 등에 대체 인력을 투입했지만 업무 미숙으로 항공기에 직접 피해가 발생하고 지연 출발 등 간접 피해도 상당했다.

지난 2008년 국가기관이 필수공익사업장에 대한 쟁의권과 자율교섭권을 직권중재했던 제도가 폐지되며 공항 근로자들도 파업이 가능해졌다. 대신 파업 때 최소 근무 인원을 유지해 업무가 중단되는 일이 없도록 하는 '필수유지업무'가 도입됐다.

필수유지업무로 지정되면 파업 참가자의 50%까지 대체 인력 투입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2013년 파업 때 사고가 난 인천공항 탑승교 분야 직원이 100명이고 노사 자율로 업무유지비율을 30%로 정했다면 70명만 파업에 참여할 수 있다. 사측이 파업 참가자의 50%인 35명을 대체 인력으로 투입하면 파업 기간에도 최대 65명까지 근무 인력을 유지할 수 있는 셈이다. 인천공항은 이를 근거로 2013년 파업 때 대체 인력을 동원했지만 업무 미숙자가 대거 투입되면서 크고 작은 사고가 잇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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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영 인천공항공사 사장은 지난 5월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후 첫 외부 일정으로 인천공항을 찾은 자리에서 "연말까지 비정규직을 100%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약속했다.

정규직 전환 데드라인이 4개월 앞으로 다가오면서 '2013년 파업'을 떠올리는 전문가들이 많다. 노조 측 강성 행보가 쭉 이어져 공항 이용객들 불편이 커질 수 있다는 염려에서다. 물론 정규직 전환 땐 근로자의 처우 개선 등 긍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애초 사측 계획을 훨씬 뛰어넘는 급진적 개혁은 비용 급증, 파업 염려 등 또 다른 그늘을 드리울 수 있다는 얘기다.

국토교통부 산하 공기업인 인천공항은 전체 근로자 1만1218명 가운데 88%인 9919명이 비정규직이어서 '간접고용의 대명사'로 불려왔다. 이 때문에 인천공항에서는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문제가 오래된 숙제였다.

인천공항의 정규직 전환 약속이 이행되면 일단 인천공항을 둘러싼 최대 이슈가 사라지게 된다. 대신 정규직 신분을 가진 새 노조가 등장해 새로운 노사 관계가 만들어질 것으로 보인다.

일단 정규직 전환 방식이 '공사 직고용'이 될지 아니면 '자회사(인천공항관리회사 등) 설립 후 고용' 방식이 될지는 아직 미정이다. 하지만 정규직화 방식이 '공사 직고용'이든 '자회사 고용'이든 공사 출범 이래 첫 복수 노조가 출범할 가능성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정규직 전환 대상 중 현재 46%가 민주노총, 한국노총, 상급 단체가 없는 무상급 노조 등에 가입돼 있어 정규직 전환 후에도 소속 전환이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만약 정규직 전환 방식이 '공사 직고용'으로 확정된다면 노조는 최소 3개 이상으로 확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정규직 전환 대상자 9919명 가운데 민주노총 소속 조합원은 3500명, 한국노총 조합원은 800명, 상급 단체가 없는 기업별 노조원은 300명 선으로 알려져 있다. 조합원이 1000여 명에 불과한 기존 정규직 노조는 이질적인 업무와 이해 관계상 새 노조와 통합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해 보인다.

정규직 전환이 '공사 직고용'이 아닌 '자회사 고용'일 때도 비정규직 출신으로 자회사가 꾸려지므로 민노총·한노총 중심의 2개 이상 노조가 출범할 가능성이 높다. '공사 직고용'일 땐 기업별 노조인 현 인천공항공사 정규직 노조, 산별 노조가 주를 이루는 비정규직 출신 노조가 개별적으로 활동할 가능성이 크다. 반면 '자회사 고용'일 땐 양대 노총 중심의 산별 노조와 비노조원 출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제2의 기업별 노조가 출범할 가능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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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공항 비정규직 노조가 파업을 벌인 2013년 12월 게이트에서 항공기와 탑승교가 충돌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진 제공 = 공공운수노조 인천공항지부]


이렇게 되면 사측과의 임금·단체 협상은 보다 강성인 산별 노조 주도로 이뤄질 공산이 크다. '공사 직고용'이든 '자회사 고용'이든 모두 비정규직 출신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므로 민노총, 한노총 등이 주도권을 쥘 것이라는 얘기다.

2013년과 비슷한 총파업이 재발할 가능성 대해서는 전망이 엇갈린다. '정규직 전환 문제'가 해결된 만큼 극단적 선택은 없을 것이란 전망과 정규직화 외에 다른 의제를 쟁점화해 수위를 낮추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팽팽하다. 문제는 파업에 따른 국민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대비가 종전보다 훨씬 어려워진다는 점이다. 쟁의행위를 제한하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시행령에서 정하고 있는 보안검색 등 14개 필수유지업무를 확대하는 방법이 있다. 하지만 노동부는 "파업권이 제한되는 필수유지업무를 추가 확대할 계획이 없다"고 밝혀 당장은 개정 가능성이 희박해 보인다.

인천공항 정규직 전환 대상인 60개 협력업체 가운데 필수유지업무를 수행하지 않는 업체는 운영지원·환경미화·시설관리 분야 등 39개 업체에 달한다.

인천공항 측은 "청소 등 분야가 자회사 소속으로 전환된다면 법인이 달라 대체 인력 투입이 가능하지만 공사 직영으로 전환되면 필수유지업무로 지정되지 않아 대체 인력 투입은 불법"이라고 설명했다. '공사 직고용' 상태에서 필수유지업무로 지정되지 않은 환경미화와 셔틀버스 종사자 등이 파업한다면 대체 인력 투입이 불가능해 공항 마비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는 얘기다.

[인천 = 지홍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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