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9.29 (일)

中 사드보복 14개월…정부는 "피해액 산정 못해" "韓銀에 물어보라"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정부, 6개월전 中사드보복 WTO 위반 결론 내렸지만…

"더 이상 정부를 믿지 말라. 한국 기업은 중국의 사드 보복에 대응해 살길을 직접 찾아야 한다."

작년 7월 정부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 결정 후 중국 정부의 롯데마트 세무조사를 시작으로 가속화하던 경제 보복 대응을 위해 민관이 함께 머리를 맞댄 자리. 정부에 통상 정책 관련 자문을 하던 한 위원은 이렇게 말했다. 이 위원은 10일 매일경제와 통화하면서 "그때와 지금 정부의 대응은 달라진 것이 없다. 중국에 대응하는 정부의 '큰 그림'이 보이지 않는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박근혜정부의 사드 배치 선언과 함께 시작된 중국의 사드 보복이 1년2개월 이상 지속되고 있지만 우리 정부는 이에 대해 아무런 대책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정부 부처에서는 "한중 정상 간 대화로 풀 수밖에 없는 문제"라며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중국 방문과 한중 정상회담은 연내 성사가 어려운 상황이다.

매일경제신문은 10일 중국 사드 보복에 대한 정부 대응 조치를 확인하기 위해 정양석 바른정당 의원실을 통해 외교부·산업통상자원부·중소벤처기업부의 '작년 7월 이후 사드 보복 피해 현황과 정부의 대응 방향' 자료를 입수했다.

자료에 따르면 정부는 피해 기업에 대한 지원 서비스를 마련하고 긴급 자금을 지원하거나 세계무역기구(WTO) 서비스 이사회를 통해 중국에 이의제기를 하기도 했으나 아직까지도 "중국의 자국 산업 보호 조치 등과 구분해 사드 보복 관련 피해 액수를 정확히 산정하기 어렵다"(외교부)거나 "범부처가 구체적 액수를 파악 중이다"(산업부)라는 소극적 태도를 보였다.

중소벤처부는 "현재까지 총 247건의 중국 사드 보복 피해 사례를 접수했다"며 기업의 피해 접수에만 의존하는 수동적인 태도를 보였다. 매달 1조원에 달하는 사드 보복 피해액이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정부가 정확한 피해 액수와 피해 기업 현황 자료조차 산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정양석 바른정당 의원은 "사드 배치도 우왕좌왕하더니 사드 보복으로 국민의 피해가 막대한 상황에서 정부가 손을 놓고 있다. 현황 파악도 못하며 중국의 눈치만 보고 있다"고 우려했다.

특히 정부가 지난 3월 중국이 한국에 대한 단체관광을 금지한 조치가 "WTO 규정의 명백한 위반이며 제소 시 승소가 확실하다"는 결론을 내린 상황에서도 국회에 제출한 답변은 저자세로 일관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작년 대비 한국을 방문하는 중국인 수는 급감하고 있는데, 법무부에 따르면 올해 5월 한국을 방문한 중국인은 20만명으로 작년 71만명에 비해 3분의 1 이상 감소했다.

외교부는 사드 보복 대책에 대한 답변으로 "다양한 외교 경로를 통해 중국 측에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며 "중국 보복 조치가 기존의 자국 산업 보호 조치 등과 구분해 구체적으로 특정하기 어려워 정확한 피해 액수를 산정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답했다.

산업부는 긴급경영안정자금 지원과 관광기금 특별융자 등은 물론 대표적 피해 업계인 관광·유통업계 등에 대해 "한시적인 납세 기한 연장 등 지원 대책을 시행 중"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의원실에서 구체적인 피해 현황을 묻자 "범부처가 협력해 피해를 집계하고 있다. 구체적인 피해액은 한국은행이 발표한 보고서 등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는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산업부는 추가 조치로 지난 3월과 6월 WTO 서비스무역 이사회 당시 중국의 사드 보복이 "국제규범에 어긋나는 행위"라고 이의를 제기했다고 밝혔다. 정양석 의원실 관계자는 "정부에 보다 구체적인 대응책을 요구하는 상황에서 자신의 소관이 아니라 답하는 모습에 상당히 당황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담당 부처에서 보다 정확한 수치를 확인할 수 있다는 뜻이지 책임을 떠넘기려는 것은 아니었다"며 "정부 역시 사드 보복에 맞서 여러 대응 방안을 준비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복수의 정부 관계자는 매일경제와 통화하면서 사드 피해 현황에 대해 "구체적인 수치를 파악하고 있음에도 확실하지 않은 숫자를 공개할 경우 중국에 역공을 당할 수 있어 내부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경제·외교 전문가들은 정부가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외교부 1·2차관을 지낸 신각수 전 주일대사는 "정부는 중국의 사드 보복에 대해 WTO 제소를 더 이상 미뤄선 안 된다. WTO 제소를 하지 않는다고 중국이 북핵에 협조를 더 해주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신 전 대사는 "중·일 간 센카쿠(댜오위다오) 열도 갈등 당시 중국의 경제 보복에 WTO 제소 등으로 맞섰던 일본의 사례 등을 참고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북핵 등 중국의 협조가 필요한 부분이 있고, 양국 경제 마찰이 가속화하면 오히려 기업의 피해가 더 커질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김기철 기자 / 박태인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