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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9 (일)

[매경시평] 1871 어재연 군대와 2017 송영무 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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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조선에 개항을 요구하고자 1871년 여름에 강화도에 상륙한 미군과 조선군이 벌인 전투는 같은 종류의 무기라도 성능이 얼마나 다를 수 있는지 보여줬다. 소총과 대포로 무장한 조선군은 외관상 미군과 대등한 전투력을 갖춘 듯이 보였지만 사령관 어재연 장군까지 전사하며 일방적으로 밀렸다. 미군은 조선군의 결사항전에 놀라 개항이 어렵다고 보고 스스로 철수했지만 대원군은 마치 전투에서 승리한 듯이 포장하고 쇄국정책을 강화했다. 참담한 전투 결과는 철저히 외면했고 미군 무기 성능에 대한 분석도 하지 않는 비상식적인 실책을 범했다. 낙후된 무기체계에 대한 반성과 함께 신무기 도입을 추진했다면 경술국치(庚戌國恥)를 피할 수도 있었다.

일본은 도쿄만에 나타난 페리 제독의 증기선이 엄청나게 크고 연기를 뿜어내는 데 놀라 1854년 미국에 문호를 열었다. 미국 제품을 '메리깐(American의 변형)'이라 하며 최고로 여기고 미국을 스승으로 모셨으며 50년 후 청나라와 러시아를 연달아 물리쳤다. 미군 함대 출현에 두 나라가 반대로 대응해 운명이 엇갈린 것은 19세기 조선 지배층의 국가 운영 능력과 국제 감각이 일본 지배층에 비해 크게 뒤떨어졌음을 보여준다.

국방력의 현주소는 어떤가? 핵무기를 언급하기 전에 사거리가 5000㎞ 넘는 대륙간탄도미사일이 개발된 지 반세기가 지났는데도 800㎞ 미사일만 있다. 중국은 40여 년 분투 노력의 결과인 유인우주선 '선저우(神舟)' 개발이 가시화하는 시점에 외교 노선을 겸손 모드인 도광양회(韜光養晦)에서 자신감 모드인 화평굴기(和平堀起)로 바꿨다. 유인우주선 기술은 전 세계 동시 타격을 가능하게 하는 첨단 군사 기술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직 시작도 하지 못한 분야다. 일본이 70여 년 전에 개발한 '제로센' 전투기를 우리 기술로 만들기 버거운데도 록히드마틴의 엔진과 부품을 들여와 조립한 초음속 연습기 T-50을 국산이라고 선전하며 국민을 오도한다. 첩보 수집 능력은 아날로그 수준이어서 미군과 일본 자위대의 첨단 첩보 장비에 의존한다.

송영무 군대의 국제적 위상은 어재연 군대보다 한참 뒤진다. 어재연 군대는 대포, 소총, 망원경 등 미군과 같은 장비체계를 유지했다. 송영무 군대는 '전략자산이 없는 보병사단 위주의 재래식 군대'이며 '더듬이 없는 병정개미'로 비유될 수 있을 정도로 미군의 장비체계와 차원이 다르다. '세계 7위의 위용을 자랑하는 국군'이란 표현은 국민을 기만하는 것이다. 1, 2, 3위에 둘러싸인 한반도를 볼 때 4위 이하는 바위 앞의 달걀인 데다 핵무기를 제외한 군사력 순위여서 더욱 의미가 없다. 몇 년 전에 창조국방이란 이름을 걸고 레이저 빔을 2020년대 들어 개발한다 해서 갈채를 받았다. 레이저 빔은 현재 실전배치한 나라가 거의 없는 개발 단계의 첨단 무기인데 언제까지 어떻게 개발이 가능한 건지 상세한 설명을 들을 때가 되었다. 모양새 내기 위해 일단 질러놓고 없던 얘기, 틀린 얘기가 되어도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적폐를 끝내야 한다.

어떤 군대를 갖느냐 함은 군인의 몫이 아니라 정치지도자의 역사 인식과 비전에 달려 있다. 그러나 정치지도자에게 군사력의 초라한 실상을 보고하고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은 군인의 책무다. 이 책무에 충실하지 못했다면 '별을 단 자의 수치'다. 이기지 못할 군대에서 높이 올라가봐야 역사에 부끄러운 이름밖에 더 남기겠는가? 우리나라에서 치러진 청일전쟁, 러일전쟁의 역사를 마주하며 "일본군의 한반도 상륙은 우리의 동의가 있어야 가능하다" "한반도 전쟁은 한국이 결정한다"는 안보라인의 기상이 가상하나 힘겨워 보인다.

곧 국군의 날이 또 온다. 언제까지 남의 나라 군사 기술에 국민의 목숨을 맡길 건가? 언제까지 허황된 부풀리기로 헛된 자신감만 심어줄 건가? 당장은 스스로 지킬 힘이 없는데도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 별은 딴 나라 군대의 별인가? 피눈물로 얼룩진 과거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는 국민에게 미소 지을 미래는 없다.

[최중경 한국공인회계사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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