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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9 (일)

[기자 24시] 살충제 계란과 회계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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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살충제 계란 사태를 접하면서 문득 회계감사의 실상이 뇌리를 스쳤다. 연관성이 없을 것 같지만 묘하게 닮았다. 문제의 본질이 공통분모다. 일부 계란 생산농가가 살충제를 이용하고도 인증 업체로부터 '친환경' 인증을 받았다. 정부는 식품안전관리를 위한 범정부 태스크포스(TF)를 만들겠다며 뒷북을 치고 있다.

데자뷔 느낌을 받으며 연상한 사건은 대우조선해양 분식회계 스캔들이다. 대우조선해양은 수조 원대 회계부정을 저질렀지만 회계법인으로부터 2010~2015년까지 감사의견 '적정'을 받았다. 문제가 터지자 정부는 회계 투명성을 높이겠다고 했지만 실효성 있는 해법은 나오지 않고 있다.

회계감사 시장에는 기업, 회계법인, 정부, 정보 이용자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모여 있다. 각 주체의 속내는 제각각이다. 기업은 낮은 가격에 외부감사를 받고 싶어한다. 회계 업계는 감사 보수를 높여달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정보 이용자들은 고품질 감사 보고서를 원하고, 정부는 인력과 시간의 제약으로 제대로 된 회계감독이 어렵다고 토로한다.

각 주체의 의도가 원칙 없이 발현되면 시장이 혼탁해진다. 지금의 회계감사 시장처럼 말이다. 일부 기업은 외부감사를 '면피용'으로 생각한다. 투명한 정보를 전달하려는 목적은 우선순위에서 밀린다. 더 싼 가격에 덜 귀찮게 하는 회계법인을 외부감사인으로 찾는 이유다. 회계법인은 저가 수주를 할 수밖에 없다. 대가가 적으니 투입되는 자원도 제한적이고, 부실감사 가능성도 높아진다. 분식회계 문제가 터지면 정보 이용자는 손해를 입고, 정부는 뒷수습에 치중한다.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지 않으면 제2의 대우조선 사태는 또 일어난다.

문제를 풀려면 본질부터 파악해야 한다. 처벌 강화, 지정감사제 확대 등과 같은 미봉책으로는 한계가 있다. '한비자 내저설'에는 '익시, 자장이매첩(益是, 子將以買妾)'이라는 성어가 있다. 위나라의 한 부인이 삼베 100필을 공짜로 얻게 해달라는 기도를 올렸다. 남편이 왜 이렇게 적게 원하는지 묻자 "이보다 많으면 당신이 첩을 살 것이기 때문"이라고 답했다는 내용이다. 부부라도 다른 생각을 하는데 이해관계자 사이라면 오죽하랴. 함께 정한 '원칙'이라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회계 투명성을 위한 공통의 가치관을 정립하고, 책임과 신뢰가 근간이 되는 회계 시스템을 만들어나가야 한다. 그게 원칙이다.

[증권부 = 김대기 기자 daekey1@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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