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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9 (일)

김영진 한독 회장 "보수적 제약사에 벤처 혁신DNA 이식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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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올해 창립 63주년을 맞은 장수 기업이지만 이제 막 시작하는 벤처처럼 과감히 투자하고 신사업에도 진출하고 있습니다. 해외 제약사와의 오랜 합작 관계를 정리하고 독자 경영을 선택한 이후부터는 당장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미래가치를 만들기 위한 투자를 지속해왔고 수익성도 곧 좋아질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한독은 국내 제약업계 첫 합작 기업으로 1964년부터 독일 훽스트 등 해외 제약사와 수십 년간 공동경영을 해왔다. 그러다 2012년 김영진 회장(61)이 사노피 아벤티스 지분을 모두 인수하며 '홀로서기'를 시작했다.

한독을 이끄는 김영진 회장은 창업주 2세로, 김 회장의 부친인 고 김신권 명예회장은 평양북도 의주 출신의 만상(조선시대에 의주에서 중국과 교역하던 상인)의 후예다. 김 회장은 미국에서 공부하고 독일에서 근무한(합작사인 독일 훽스트에 2년 파견) 경험 때문인지 합리적이고 소탈한 성품의 소유자다. 구내 식당에서 식판을 들고 줄을 서고 직원들도 그와 스스럼없이 대화를 나눈다.

김 회장이 금과옥조로 삼는 경영철학은 '신뢰'다. 한독이 합작 관계를 청산하고 신사업 진출을 위해 각종 인수·합병(M&A)에 나설 때 테바와 태평양제약 등이 한독에 손을 내민 것은 김 회장의 투명 경영 원칙을 신뢰했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졌다.

김 회장은 지난 5년을 새로운 성장을 위한 설계도를 그리는 과정이었다고 평가했다. 한독은 2012년 바이오벤처 제넥신 지분을 사들이면서 바이오신약 파이프라인을 갖췄고, 2013년에는 세계 1위 복제약 기업인 이스라엘계 제약사 테바와 합작법인 '한독테바'를 설립해 복제약 시장에 진출했다.

이듬해에는 태평양제약 사업부와 관절염 치료제 '케토톱' 인수로 일반의약품(OTC) 시장에서의 경쟁력도 확보했다. 이를 위해 1800억원 이상 자금을 쏟아부었다. 올해 상반기 연구개발(R&D) 투자 증가율이 20%(금액은 102억원)로 제약업계 1위를 차지할 정도로 한독의 투자는 진행형이다.

김 회장은 "독자 경영 전까지 합작사라는 태생적 한계와 외국계 경영진의 보수적 경향 때문에 리스크를 부담하는 과감한 투자를 할 수 없었다"며 "해외에서 개발된 제품을 국내 시장에 가져다 파는 데 그쳐 사업을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었지만 회사가 성장할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았다"고 말했다. 합작사 청산 후 독자 경영은 한독에 많은 기회를 줬지만 위기도 적지 않았다. 2012년 정부의 일괄 약가인하 이후 수년간 매출 성장이 정체됐다. 그는 "당시 자체 개발한 신약, 우리 제품이 없었기 때문에 한독이 더 큰 타격을 받았다고 생각한다"며 "제약사가 정부 규제 등 리스크에서 벗어나 꾸준히 성장하려면 '우리 제품'이 있어야 한다고 판단해 R&D와 투자에 매달렸다"고 말했다.

지난 5년간 이뤄졌던 과감한 투자의 성과는 올해부터 결실을 맺을 전망이다. 케토톱의 지난해 매출(280억원)은 2015년 대비 30% 이상 늘었고 올 상반기에도 전년 동기 대비 20% 이상 성장률을 보였다. 지난 6월에는 충북 음성에 플라스타(패치형 제품) 생산 공장을 준공해 설비를 갖추게 됨에 따라 제품 라인업을 확대하고 수출도 늘릴 계획이다.

김 회장은 "케토톱 성장을 통해 OTC 사업부를 강화하고 안정적 수익 구조도 갖추게 됐다"며 "OTC 전체 매출은 2013년까지 200억원대였지만 올해부터는 500억원 이상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신약 개발에는 천문학적 자원이 드는 데 케토톱이 앞으로 회사 캐시카우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제약업계와 시장에서 가장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 '지속형 성장호르몬' 개발도 하반기 진전을 보일 전망이다. 현재 한국과 유럽을 포함한 총 15개국에서 어린이 대상 임상을 진행 중인데 이달 중순 국제 소아내분비학회(IMPE)에서 지속형 성장호르몬의 임상2상 중간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김 회장은 "의미 있는 결과가 도출될 것으로 기대한다"며 "이르면 연말 임상2상을 완료한 후 해외 제약사 등에 기술수출(라이선스 아웃)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앞으로도 개방형 혁신(오픈 이노베이션)을 기반으로 R&D 역량을 강화할 계획이다. 김 회장은 "최근 성과를 내고 있는 제약사들을 살펴보면 오랜 기간 R&D에 투자해온 역사와 경험이 누적돼 있다"며 "후발 주자로 참여한 이상 처음부터 시작해선 그들을 따라잡을 수 없고 경쟁력 있는 벤처나 연구소와 공동 개발해 속도를 높여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한독은 올해 매출 두 자릿수 성장을 목표로 하고 있다. 지난 1분기와 2분기 모두 사상 최대 분기 매출을 달성했다.

김 회장은 "매출이 먼저 늘어나고 이익은 내년쯤 턴어라운드할 것으로 본다"면서 "앞으로 5년, 10년 후 지금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해 있을 것이고 그 기반을 지금 마련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체외진단 의료기기 건강기능식품 등 신사업 진출도 활발하다. 낮은 수준 인지장애에 효과가 있는 울금(강황)에서 추출한 테라큐민을 활용한 신제품을 시장에 선보일 계획이다. 한독 테바도 출범한 지 3년 만인 지난해 매출 200억원을 달성했다.

한독은 보수적 경향이 짙은 제약업계에서 벤처처럼 유연하며 수평적 조직문화를 갖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업계에선 '직원들이 가장 다니고 싶은 회사'로 꼽히기도 한다. 연초 육아휴직 중인 직원과 비정규직까지 포함해 전 직원이 베트남 휴양도시 다낭으로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지난해 전체 사업부 매출이 두 자릿수로 성장한 데 따른 포상 차원에서다.

김 회장은 "해외 제약사와 합작 관계를 청산하면서 들었던 가장 큰 고민은 '독자 경영 후에도 계속 인재를 유치하고 붙잡아둘 수 있을까'였다"며 "임직원이 일하기 좋은 환경과 문화를 만드는 데 특히 심혈을 기울였다"고 말했다.

한독은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에도 교육 예산을 늘렸을 만큼 임직원 교육에도 투자하고 있다. 그는 "특히 해외에서 경력을 쌓은 인력들은 국내 기업에 복귀해 잘 적응할 수 있을지 두려움이 많다"며 "이들에겐 금전 보상도 중요하지만 합리적 의사결정, 공정한 성과평가, 수평적 문화 등이 더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그 결과 박을준 한독칼로스메디칼 대표를 비롯해 해외에서 연구 프로젝트를 주도하던 인재들이 한독의 문을 두드렸다.

한독의 여성 인력 비중은 40%로 업계 평균을 훌쩍 뛰어넘는 수준이다. 김 회장은 1990년 제약업계 최초로 여성 영업사원을 채용하기도 했다.

그는 "제네릭 중심의 국내 의약품 시장에선 리베이트가 관행처럼 이어져 왔지만 한독은 임상과 과학적 논거를 중심으로 영업한다"면서 "여성은 친화력이 뛰어나고 고객에게 과학적 논거를 설명하는 데도 강점이 있다"고 말했다.

■ He is…

△1956년 서울 출생 △중앙고, 연세대 경영학과 △1984년 미국 인디애나대 MBA △1984년 한독 입사 △2006년~한독 대표이사 회장 △2014년~한독제석재단 이사장 △2015~2016년 제5대 한독상공회의소 이사장

[김혜순 기자 / 사진 = 김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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