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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30 (월)

美·日·中·英 `유전자 가위` 열 올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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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이더뉴스 ◆

세포 속 비정상 유전자를 잘라내고 정상 유전자를 삽입하는 유전자 편집 기술이 발전을 거듭할수록 국내 생명윤리법 개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히 인간의 배아를 대상으로 한 유전자 교정 연구를 '원천 봉쇄'하는 것이 바람직한지를 두고 논란이 뜨겁다.

우리나라 생명윤리법 제47조 3항은 배아, 난자, 정자 등 생식세포를 유전자 치료에 적용하는 것을 전면 금지하고 있다. 임상단계와 연구단계 구분 없이 관련 연구가 허용되지 않는 것이다.

또한 생명윤리법 제23조는 자연적인 임신이 아니면 아예 배아를 생성하지 못하도록 못 박고 있어 연구목적 배아는 만들어질 수조차 없다. 생명윤리법 제7조·30조·31조는 배아 관련 연구를 하려면 보건복지부 장관으로부터 연구계획서 승인까지 받도록 하고 있다. 연구자들이 통상적으로 거치는 민간기관 생명윤리위원회(IRB)와 국가 생명윤리심의위원회 심의 외에 중앙부처 심사까지 받아야 한다는 얘기다.

이처럼 이중 삼중의 규제로 생명윤리법이 국내 유전자 치료 연구의 거대한 벽으로 작용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인간 배아에 유전자 가위를 들이댈 수 있는지'는 윤리적 다툼이 있는 사안이지만,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이 아닌 기초연구까지 규제하는 것은 염려스럽다고 지적한다. 전 세계적으로 배아 대상 연구의 빗장을 풀고 행정절차를 간소화하는 추세인데, 이대로 가다가는 한국만 유전질환 정복을 향한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질 것이라는 지적이다. 강은주 아산생명과학연구원 줄기세포센터 교수는 "규제는 까다롭게 해야하지만, 심의위원회의 공정한 심의를 거쳤을 경우에 한해 기초연구 목적의 인간 배아 편집은 허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미국은 연방정부 차원에서 인간 배아 연구를 아예 규제하지 않는다. 국가의 연구비 지급만 제한할 뿐, 정부로부터 재정적 지원을 기대하지 않는다면 연구는 자유롭게 하도록 고삐를 풀어주는 것이다. 미국 국립과학원(NAS)과 국립의학원(NAM)은 "엄격한 조건과 감시가 있다면 초기 배아 등 인간 생식세포에 대한 유전자 편집 연구를 허용할 수 있다"고 권고한다. 이뿐만 아니라 대학·병원 등 연구자가 속한 기관 심사위원회(IRB) 승인만 받으면 별도로 정부 심사를 받지 않아도 된다. 일본 역시 지난해 5월부터 인간배아를 대상으로 하는 임상치료는 금지하더라도 기초연구를 목적으로 인간 배아를 편집하는 것은 허용한다. 중국에서는 구속력 있는 법이나 사회적 합의 없이 인간배아를 활용한 여러 실험이 이뤄지고 있다.

정성철 이화여자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는 "배아 연구를 무조건 법으로 금지하기보다는 개별 연구에 대해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 등에서 심도 있는 논의를 거쳐 허용할지를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며 "연구용 배아 생성도 마찬가지로 법에 의한 규정보다는 연구별로 윤리적 타당성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배아에 대한 법적 규제를 하면서도 개별 사례별로 융통성 있게 접근하는 국가로는 영국이 꼽힌다. 지난해 2월, 영국 정부는 민간기관인 '프랜시스크릭연구소'가 인간 배아에 유전자가위 기술을 적용하는 것을 승인했다. 난임의 원인을 밝히고 인간 배아 발달에 관여하는 유전자를 규명하겠다는 연구 필요성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7일 이내 인간배아를 사용하고, 유전자 편집 배아를 14일 안에 폐기한다'는 조건을 달아 윤리적 안전장치까지 철저하게 마련한 뒤 허락했다.

유전자 연구를 특정 질병으로 한정하고 있는 것도 현행 생명윤리법의 개선점으로 꼽힌다. 유전질환 종류가 수도 없이 많은데 연구 허용 질환 몇 개를 나열하는 규제가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는 비판이 있다. 생명윤리법 제29조·31조는 유전자 교정이 아닌 배아 연구도 △난임 치료법, 피임기술 개발을 위한 연구 △근이영양증, 그 밖에 대통령령으로 정한 희귀·난치성 질환 치료를 위한 연구 △공공보건상 필요에 의해 복지부 장관이 고시하는 연구로 제한하고 있다. 백혈병, 뇌성마비, 척수손상 등 13종의 희귀·난치병과 심근경색증, 파킨슨병, 뇌졸중, 알츠하이머병, 당뇨병 등 공공보건상 필요한 병 21종을 제외하면 연구를 할 수 없다는 뜻이다.

잔여 배아의 사용도 제한된다. 5년이 지난 동결 잔여 배아만 쓸 수 있도록 묶어놓았기 때문이다. 보존기간이 끝난 동결배아만 연구에 사용할 수 있다보니 실험 성공률이 낮아지고 수정란 실험도 불가능하다.

[김윤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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