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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30 (월)

‘민주화 영웅’ 아웅산 수치의 신화, 산산이 부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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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1000명 사망 로힝야족 박해 사태 방관

인권 문제 지적에 ‘가짜 뉴스’ 비난까지

“국정 식견 부족에 불통으로 일관”

여전히 군부 손아귀에 있다는 지적도

BBC 기자 “수치에 대해 너무 몰랐다”



한겨레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미얀마의 로힝야족 박해 사태에 항의하는 시위대들. 로힝야 박해가 ‘당신의 면전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글귀를 넣은 미얀마의 지도자 아웅산 수치의 초상화를 들고 시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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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민주화의 영웅’ 아웅산 수치의 신화가 산산이 부서지고 있다. 로힝야족 박해 사태를 옹호하며, 군부의 손아귀에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미얀마 실권자인 수치 국가자문역 겸 외무장관은 라카인주에서 지난달 말부터 시작된 로힝야족 박해 사태에 침묵을 지키다가, 지난 5일 ‘가짜 뉴스’라는 반응을 보였다. 그가 받은 노벨평화상을 박탈해야 한다는 비난과 함께 군부의 호주머니 안에 있다는 의구심도 커지고 있다.

수치는 최근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미얀마 정부가 “이미 가능한 최선의 방법으로 라카인의 모든 주민들을 보호하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공동체들 사이의 많은 문제들을 야기하고 테러분자들의 이익을 증진하려는 목적을 가진 거대한 오보의 빙산의 일각”인 많은 ‘가짜 뉴스들’이 있다고 비난했다.

그는 로힝야족이 군부와 과격 불교 민병대의 폭력과 방화로 집을 버리고 방글라데시로 대피하는 대규모 난민 사태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노벨상을 박탈해야 한다는 청원이 하루 만에 40만건이나 접수되는 등 국제적 비난이 고조되고 있다. 유엔은 로힝야족 사망자가 1000명이 넘고 27만여명이 피난길에 올랐다고 추산하고 있다.

국내 지지자들은 그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여당인 민족민주동맹 내에서 수치의 최측근인 윈 테인은 <파이낸셜 타임스>에 “군부 때문에 그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버마인권네트워크 쪽은 “목소리를 내는 것은 수치의 도덕적 의무”라며 “불행하게도 그는 군부와 같은 편이고, 선동에 동조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 신문은 수치가 로힝야족 박해를 주도하는 군부를 막기에는 무력하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수치 자신이 120개 소수민족 문제에서 군부와 다를 바 없는 인식을 가졌다는 지적도 많다. 그는 야당 시절에도 로힝야족 문제가 불거질 때 군사정부를 비판하는 언급을 일절 피했다.

수치는 지난 4월 <비비시>(BBC) 인터뷰에서 로힝야족 사태에 대해 “인종청소가 진행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인종청소는 너무 강한 표현이다”라며 “많은 적대감이 있고, 무슬림들을 죽이는 무슬림들도 있다”고 말했다. 언론에도 화살을 돌렸다. 그는 “언론인들이 나에게 질문하면 나는 대답했는데 사람들은 내가 아무 말도 안 했다고 한다”며 “내가 사람들이 원하는, 사람들이 나에게 한 공동체나 다른 공동체를 비난해주기를 원하는 말을 안 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미 언론 및 국민과 제대로 소통하지 못하고 국정에 대한 식견을 보여주지 못한다는 실망이 쌓여왔다. <파이낸 셜타임스>는 10일 ‘아웅산 수치, 몰락하는 유산을 가진 손상된 우상’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수치는 존경 받으나 시험을 거치지 않은 야당 지도자로 나타나 침체된 경제 등 주요 분야에서 거의 방향을 제시하지 못한 채 우왕좌왕해왔다”며 “연금 시절에 자신을 떠받들던 언론인들이 열악한 인권 문제에 대해 거친 질문을 하면 판에 박힌 대응으로 옅은 식견을 노출하고 엉뚱한 소리만을 했다”고 비판했다.

사실 수치는 집권이 확실시되던 2015년 선거 전부터도 국내 언론과는 일절 인터뷰하지 않고 외신들하고만 간간이 접촉했다. 의회에서도 그에 대한 의원들의 질문은 전혀 없다. 군사정부와 마찬가지로 ‘검열’에서는 차이가 없다는 비판이 나온다.

수치를 적극 옹호해준 외신 기자들도 실망감을 표출한다. 민주화운동을 옹호하는 보도를 해왔고 지난 4월에 수치와도 인터뷰한 <비비시> 기자는 “우리는 수치에 대해 너무 몰랐다. 군사정부와 타협을 거부한 그 완고함이 집권 뒤 해외의 비판에 직면할 때도 똑같이 강력할 것임을 계산하지 못했다”고 탄식했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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