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걀을 얻으려고 기르는 많은 닭들은 대규모 농장의 좁은 닭장(케이지) 안에 산다. 토막내어 잘려진 프라이드치킨 한 마리가 얼기설기 놓여 있는 종이 상자. 그거 서너 개쯤 쌓아 놓은 부피 안에, 온전한 모습을 한 닭이 서 있다. 아마도 뒤돌아 서기 어려운 작은 샤워 박스 같은 것보다 더 좁은 느낌일 것이다. 하루를 꼬박 그 안에서 보낸다. 사료를 먹고, 똥을 누고, 세상을 둘러보고, 주위의 소리를 듣고, 잠을 잔다. 닭은 날마다 같은 날을 보내고, 달걀을 낳는다.
닭은 온 세계로 보아도 사람이 잡아먹기 위해 기르는 가축과 가금 가운데 압도적으로 숫자가 많다. 마릿수로 보면, 나머지 모든 잡아먹는 새와 짐승의 숫자를 합친 것보다 예닐곱 배쯤 되는 닭을 잡는다는 통계도 있다. 온 세계 사람 숫자에 견주면 한 해에 한 사람이 일여덟 마리 닭을 잡아먹는다. 양념치킨, 혹은 치맥이야말로 한국의 음식이니까, 우리나라도 사정은 별로 다르지 않고. 이어서 들리는 소식은 상자를 조금 더 키운다고도 하고, 닭장 안을 더 깨끗이 한다고도 한다. 약을 뿌리는 방법을 다시 교육시킨다고도 한다.
어디에선가는 디클로로디페닐트리클로로에탄(DDT) 성분이 나왔다고도 했다. 시골에서는 아직도 이것을 마법의 흰 가루로 여기는 할매들도 있다. “무 심궈 먹을 적에는 DDT 좀 뿌려야 해.” 십 년 전 처음 무밭을 가꿨을 때, 서툴기 짝이 없는 젊은이가 안쓰러워서 마을 누군가는 주인 몰래 DDT를 뿌려주기도 했다. 결국 그것은 갈아엎고, 그 자리에는 작은 뒷간이 들어섰다. 그래도 DDT는 사라지지 않는다고 한다. DDT가 뿌려지지 않은 밭이 얼마나 있을지 모르겠다. 그렇게 죽임을 당한 닭들은 여느 닭하고는 다르게 맨땅을 밟고, 하늘을 보고, 흙에 날개를 비비며 살았다고 했다. 물통 가장자리에 늘어서서 물 한 모금을 먹고, 하늘 한 번 보고, 물 먹고 하늘 보고 그랬을 것이다. 농부는 그렇게 닭과 함께 살았다. 아마도 건강했을 것이다. 닭도 농부도.
박선미의 책 <달걀 한 개>에는 마당을 헤집으며 장독을 깨기도 하고, 세이레 동안 꼼짝 않고 알을 품기도 하며 살아가는 닭의 이야기가 있다. 어렵사리 달걀 한 개를 얻은 아이가 강 건너 할머니에게 이것을 가져다줄까 하는 대목도 있다. 이제 그런 풍경은 수십 년 전 이야기가 되어서 도무지 이곳에 있었던 일로 믿지 못하는 사람도 있겠다. 우리나라 시장에서는 심지어 흰 달걀마저 구하기 어려운 형편이 되었으니까. 다만 이제는 꼼짝 못한 채로 하루하루를 보내는 닭과 충분히 더 무해한 화학약품 따위의 도움을 받아, 우리는 달걀 한 개, 두 개가 아니라 달걀 몇 줄, 몇 판 하는 식으로 손에 잡히는 대로 달걀을 재어 두고 사는 복을 누리게 되었다.
<전광진 | 상추쌈 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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