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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8 (토)

기업 옥죄는 노동시장 규제 | 최저임금 인상에 정규직 전환 압박도 근로시간 단축하면 中企 경영난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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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이코노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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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공장 폐쇄, 해외 이전을 자제해달라.”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최저임금 인상 등으로 급증하는 비용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 (섬유업계)

기업들이 최저임금 인상, 정규직 전환 등 노동시장에 불어닥친 악재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특히 인건비 부담이 큰 섬유·편의점 업체들은 저마다 대응책 마련에 고심이다.

국내 대표 섬유기업 경방, 전방은 최근 국내 공장을 해외로 옮기거나 아예 문을 닫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경방은 내년부터 시간당 7530원으로 오르는 최저임금을 더 이상 감내하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광주광역시 면사 공장 일부를 베트남으로 옮기기로 결정했다.

전방도 최저임금 인상 소식에 직원 600여명을 해고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 3년간 누적 적자가 300억원을 넘어 임금 인상을 견딜 수 없는 구조기 때문이다. 전방은 주당 최대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법정 근로시간까지 단축되면 국내 6개 공장 중 일부를 폐쇄하는 등 구조조정 방안을 검토 중이다. 조규옥 전방 회장은 “매년 100억원 이상 적자를 내는 상황에서 최저임금이 올라가면 공장을 폐쇄하는 것밖에 답이 없다”고 밝혔다.

BGF리테일(CU), GS리테일(GS25) 등 편의점 업계도 최저임금 인상 직격탄을 맞는 분위기다. 24시간 운영체제로 아르바이트생 고용이 많은 업계 특성상 고스란히 수익성 악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 박종대 하나금융투자 애널리스트는 “편의점 하루 매출이 180만원으로 동일할 경우 최저임금 인상으로 내년 가맹점주 순수익은 올해보다 14%가량 줄어들 것”이라고 우려했다.

편의점 업체들이 점주 수익 보전을 위해 가맹 수수료를 낮추면 곧장 실적에 부담이 생긴다. KTB투자증권에 따르면 BGF리테일이 가맹 수수료를 1%포인트 인하할 경우 2018년 영업이익이 10~15%가량 감소할 전망이다. 가뜩이나 국내 편의점 수가 2012년 2만4559개에서 지난해 3만2611개로 급증하는 등 점포별 경쟁이 심화된 상황에서 인건비 부담까지 커져 편의점 업계 미래가 불투명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최저임금 인상 여파로 편의점 업체 주가도 연일 하락세다. 7월 한때 14만원을 넘나들던 BGF리테일 주가는 최근 8만원대로 떨어졌다(8월 29일 종가 8만9900원). GS리테일 주가도 지난해 초 6만원대로 올랐지만 올 들어 4만원 안팎으로 추락했다. 이남준 KTB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최저임금 인상으로 가맹점 수익성이 악화되면서 점포 확장이 점차 둔화될 우려가 크다”고 내다봤다. 편의점 업계뿐 아니라 삼성웰스토리, 아워홈 등 단체 급식 업계도 주방에서 일하는 직원을 고용할 때 단가를 맞추기 어려워 답답함을 호소하는 중이다.

최저임금 제도 자체의 맹점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크다. 제도 취지와 다르게 고임금 근로자도 최저임금 인상으로 임금이 올라가는 효과가 생기기 때문. 기업 임금은 보통 기본급과 고정수당, 복리후생수당, 상여금 등으로 구성되는데 현행법상 최저임금 준수 여부는 임금 항목 중 기본급과 고정수당의 합계만으로 판단한다. 이는 임금 총액의 평균 67.1%에 불과한 수준. 일례로 중견기업 A사의 신입직원 임금은 309만원이지만 최저임금 기준으로 보면 147만원에 그쳐 최저임금에 미달한다. 대한상공회의소 관계자는 “임금 총액이 최저임금을 넘어선 근로자라도 기본급과 고정수당 합계 비중이 낮다면 최저임금 인상 대상이 되는 게 문제다. 복리후생수당, 상여금까지 포함해 최저임금을 근로자가 실제 지급받는 임금 총액 기준으로 현실화할 필요가 있다”고 꼬집었다.

매경이코노미

내년 최저임금이 7530원으로 인상되면서 국내 편의점 업계가 적잖은 타격을 입을 전망이다.


▶정규직 전환도 악재

▷철강업계 하청업체 비정규직 ‘골치 아파’

정부가 민간 기업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추진하는 것도 기업 입장에선 골치 아픈 일이다. 대통령 직속 일자리위원회는 ‘일자리 정책 5년 로드맵’을 통해 민간 부문에서도 상시, 지속적인 업무에 정규직을 채용하도록 유도할 계획이다. 심지어 정부는 ‘비정규직 사용 사유 제한’도 법제화한다는 방침인데 사실상 정규직만 채용하라는 압박이라 논란이 크다.

기업들은 벌써부터 걱정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대표적인 게 철강업계. 포스코의 경우 직접고용한 기간제 근로자는 300여명으로 전체 근로자(1만6000여명)의 2%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하지만 사내 하청, 협력업체를 통한 간접고용 인력을 포함하면 전체 근로자 중 비정규직 비율이 50%를 넘어선다. 철강업종 특성상 고로 운영 핵심 인력은 직접고용하더라도 설비 유지 보수 인력은 하청업체 의존도가 높기 때문이다. 현대제철 역시 사내 하청, 협력업체까지 포함할 경우 비정규직 비율이 50%에 달할 정도로 만만찮은 수준이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새 정부 들어 정규직 전환이 이슈라 정부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데 업계 특성상 비정규직 구분이 애매하다는 게 문제다. 하청, 협력업체 직원까지 모두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토로했다.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도 최근 국정기획자문위원들과 만난 자리에서 “큰 그림으로 보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너무 이르다. 현실적인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밝혔다.

정부가 막대한 예산을 쏟아붓는 일자리 정책을 두고서도 말들이 많다.

고용노동부는 중소기업 구인난 해결, 청년 채용 확대를 위해 ‘중소기업 청년 추가고용 장려금 지원 사업’을 시행 중이다. 중소기업이 청년 3명을 정규직으로 채용할 때 1명의 임금 전액을 연간 2000만원 한도로 3년간 지원하는 제도다. 하지만 이는 중소기업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정책이란 비판이 쏟아진다. 광주광역시의 한 중소기업 관계자는 “정부 지원이 없어서 직원을 못 뽑는 게 아니라 우수 인재가 서울, 수도권 대기업으로 쏠리는 게 문제다. 비용 지원에만 치중하지 말고 인재가 지방 중소기업에서 마음껏 근무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간 기업이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할 때 정부가 관련 비용을 지원하는 정책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민간 기업을 대상으로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할 때 1인당 720만원을 1년간 지원한다. 하지만 기업 입장에선 월급 이외에 향후 근무 기간 동안 복지 등 부대 비용이 많이 소요되는 만큼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목소리가 크다.

▶근로시간 단축도 갑론을박

▷추가 고용 부담에 경영난 악화 우려

근로시간 단축도 무시 못할 변수다.

정부는 법정 근로시간을 주당 52시간으로 줄이면 최대 27만개 신규 일자리가 생길 것으로 예상한다. 대한상의도 “우리나라는 OECD 2위의 장시간 근로국가인 만큼 근로시간 단축 필요성에 공감한다”고 밝혔다. 지난해 기준 한국 근로자의 연간 근로시간은 2438시간으로 OECD 평균(2157시간)보다 훨씬 많다. 주 52시간 초과 근로자도 138만명으로 전체 근로자의 10%를 넘는다.

하지만 근로시간 단축을 무리하게 추진할 경우 부작용도 만만찮을 전망이다.

여야는 최근 국회 환경노동위 소위에서 현행 주당 최대 68시간인 근로시간을 사업장 규모에 따라 3단계(5~49인, 50~299인, 300인 이상 업체)에 걸쳐 52시간으로 줄이기로 잠정 합의했다. 만약 근로시간 단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당장 중소기업 경영에 악영향을 미친다. A중소기업 관계자는 “법정 근로시간을 갑자기 줄이면 근로자를 추가 고용해야 하는데 그만큼 월급, 4대 보험 부담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가뜩이나 중소기업은 일손이 부족한 상황인데 근로시간까지 줄어들면 경영난이 더 심화될 것”이라고 토로했다. 박성택 중소기업중앙회장은 “근로시간의 급격한 단축으로 인력 부족, 생산성 저하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 중소기업 부담을 완화하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굳이 근로시간 단축을 강제할 게 아니라 정해진 휴일, 휴가만 제대로 쓰게 해도 연간 노동시간이 대폭 줄어든다는 의견도 나온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가 공공부문 정규직화 등을 추진하고 난 후 시간을 두고 민간부문에 적용해도 될 텐데 기업 사정이 어려운 상황에서 지나치게 서두르는 모습이다. 정규직화나 근로시간 단축을 강제하기 앞서 노동시장 유연성부터 확보하면서 순차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경민 기자 kmkim@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924호 (2017.09.06~09.12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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