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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8 (토)

英·佛처럼… 최저임금에 상여금 포함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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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저임금委, 산입범위 개편 논의키로

기본급 기준으로 산정돼 부작용… 연봉 4000만원도 최저임금 미달

경영계 "통상임금처럼 넓혀야"

노동계 "최저임금 인상 무력화"

한 대기업 제조업체 신입사원 A씨는 올해 연봉(초과 급여 제외)이 3820만원이다. 신입사원 초봉으로는 적지 않은 수준이지만 내년도 최저임금이 시간당 7530원으로 오르면서 A씨 임금도 큰 폭으로 인상될 가능성이 높다. 정기 상여금(월 기본급의 800%)과 성과급 등을 뺀 기본급이 시급 6502원으로 내년도 최저임금(7530원)보다 10% 이상 낮기 때문이다. 현행 최저임금법에서 정기 상여금과 성과급 등을 최저임금 산정에 포함하지 않으면서 나타나는 일이다.

지난 14일 취임한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이 최근 "최저임금 산입 범위 개정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최저임금 산입 범위 확대를 둘러싼 논의가 다시 불붙을 전망이다.

그동안 산업계에선 "최저임금에 포함되는 임금 범위가 좁아서 기본급이 낮고 상여금 비중이 높은 일부 대기업 고액 연봉자도 최저임금에 미달한다"며 불만을 제기해 왔다. 최저임금위원회는 이에 따라 연내에 제도개선특위를 꾸려 산입 범위 개편을 논의할 방침이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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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장관은 지난 11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연봉 4000만원인 근로자도 최저임금 위반이 될 수 있다. 최저임금 인상이 고액 연봉자를 위한 것은 아니지 않으냐"는 질문을 받자 "최저임금이 기본급을 기준으로 해서 벌어지는 일"이라며 "퇴직금을 덜 주려고 기본급을 낮추고 상여금을 높이는 등 임금 체계가 왜곡돼 있다"고 했다.

현행 최저임금법은 매달 정기·일률적으로 지급되는 기본급과 직무·직책수당 등 고정수당 정도만 최저임금으로 인정한다. 상여금·휴일수당 등 초과근로수당, 숙식비·교통비 등 복리후생비는 인정하지 않는다. A씨 사례처럼 연봉을 4000만원 가까이 주는 대기업도 최저임금 위반 사업장이 될 수 있는 것이다. 9급 공무원도 기본급만 따지면 시급이 7276원(2017년 기준)으로 내년도 최저임금보다 낮다. 1986년 최저임금제 도입 이후 산입 범위는 한 번도 바뀌지 않았다.

경영계는 "사실상 최저임금과 통상임금은 성격이 같은데, 통상임금 범위는 넓히면서 최저임금은 그대로 두는 건 모순"이라는 입장이다. 2013년 대법원은 일정 간격(정기성)으로 모든 근로자에게 고루 지급(일률성)되고, 추가 조건 없이 하루만 일해도 지급(고정성)되는 상여금은 통상임금으로 봐야 한다고 했다. 김대준 소상공인연합회 이사는 "통상임금 범위가 넓어진 상황에서 혼란을 막으려면 최저임금도 범위를 확대하는 게 맞는다"고 주장했다.

복리후생비 포함 여부도 쟁점이다. 숙식비 등은 주로 외국인 근로자에게 지급되는데, 최저임금 산입 범위에서 빠지면 외국인 근로자가 내국인보다 임금을 더 받는 임금 역전이 일어난다는 지적이다.

노동계에선 "산입 범위를 넓히는 건 최저임금 인상을 무력화하겠다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지난해 고용노동부 사업체 노동력 조사에 따르면 5인 이상 기업의 임금 가운데 정액 급여가 78.3%, 특별 급여(상여금·성과급)가 15.5%, 초과 급여가 6.2%다. 전체 임금의 약 20%가 최저임금 계산에서 빠져 있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최저임금 산입 범위를 넓히더라도 저소득 근로자에겐 타격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최영기 한림대 객원교수는 "쟁점이 되는 숙식비는 주로 외국인 근로자, 상여금은 주로 대기업 근로자가 받고 있다"며 "최저임금 산입 범위를 넓히면 오히려 대기업·중소기업 간 임금 격차를 줄이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 연구위원은 "소득 하위 20% 근로자는 수당이나 상여금을 거의 못 받고 있다"며 "최저임금에 정기·일률적인 상여금을 포함하더라도 저소득 계층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은 크지 않다"고 했다.

[이기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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