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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8 (토)

서울과 똑같은 최저임금에 농민 한숨 … “일당 주면 뭐 남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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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진천 하우스 농가 르포

“지금도 외국인 일당 7만원 넘는데

16% 단번에 올려주기 힘들어 ”

고령인구 많아 고용 줄이지도 못해

지역별 소득차 큰데 임금 일률 적용

“선진국처럼 지역·업종 차등 필요”

중앙일보

지난 21일 충북 진천읍의 한 비닐하우스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이 머위를 따고 있다. 200평 규모 비닐하우스의 실내 온도는 40도에 육박했다. [송우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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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진천군 진천읍의 16동짜리 비닐하우스 농장에서 머위와 대추를 키우는 한모(59)씨는 요즘 한숨이 늘었다. 내년 최저임금이 올해보다 16.4% 오른 7530원으로 결정됐다는 소식 때문이다. 태국인 노동자 아난(50)과 녹(39) 부부를 고용하고 있는 한씨는 이들에게 월 260만원을 준다. 그는 “지낼 곳과 먹을 것은 제공한다. 수도요금과 전기료 등도 내주니까 최저임금 이상은 주고 있다”고 말했다. 아난 부부를 고용한 지 3년이 넘었다는 한씨는 “성격도 싹싹하고 일을 잘해 돈을 더 주고 싶지만 16%를 한번에 올리기엔 부담이 크다”며 “아내와 내가 하루 종일 일해서 버는 돈이 1년에 5600만원 정도인데, 시설보수비와 인건비가 가장 많이 든다”고 말했다.

이웃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진천읍의 삼덕리 마을은 농가 30가구 중 4가구가 외국인 노동자를 상시 고용하고 있다. 임금 인상을 걱정하는 건 4가구만이 아니라고 한다. 진천 덕산농업경영인연합회 전용락(48) 회장은 “연합회 회원 800명 중 절반 정도가 하우스 농가다. 일이 몰릴 때 일용직 노동자들도 필요한데, 이 비용이 커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최저임금이 올라 상시 노동자의 임금이 늘어나면 자연스레 ‘일용직 일당도 올려 달라’는 요구가 생겨 현재 7만~11만원 선인 일당이 올라갈 것이라는 주장이다.

농촌의 수익구조는 다른 산업에 비해 취약하다. 통계청의 ‘농가경제통계’에 따르면 농민들은 지난해 평균 3719만원의 소득을 올렸는데, 이 중 농사를 지어 번 돈은 1006만원(27%)에 불과했다. 국고보조금(820만원), 임대료와 근로소득(1140만원)의 비중이 컸다. 2007년 40%(1040만원)였던 농업소득률(전체 수입에서 농업소득이 차지하는 비율)은 2015년 33.5%(1125만원), 지난해 27%(1006만원)로 계속해서 감소 추세다. 농사를 지어서 버는 돈이 적다 보니 근로계약서와는 달리 임금을 적게 주며 일을 더 시키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최저임금이 부담되면 고용을 줄이면 되지 않느냐’는 주장도 나오지만 여의치 않다. 농가 인구 중 만 65세 이상인 고령층 비율이 40%를 넘어가면서 임금노동에 대한 의존도가 커졌기 때문이다. 김완배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는 “최저임금이 오르면 다른 자영업자들은 고용을 줄일 가능성이 크지만 농가는 인력을 더 줄일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호주의 경우처럼 최저임금을 다변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금융위기 이후 주요국의 최저임금 정책 동향’에 따르면 호주는 ▶직종·산업별 최저임금제 ▶모든 산업에 적용되는 ‘국가최저임금제’ ▶취약계층 근로자에게 적용하는 ‘특별최저임금’ 등 세 가지 범주로 나눠 운영한다. 2015년에 최저임금을 도입한 독일도 일부 취약 산업에 대해서는 올해까지 제도 도입을 유예했다.

지역별 차등화도 방법이다. 지난해 농가소득을 보면 가장 많이 번 제주도(4582만원)와 가장 적게 번 경남(3424만원)은 1000만원 넘게 소득 차이가 났다. 1959년부터 최저임금 제도를 운영해 온 일본은 지역별로 최저임금을 다르게 적용하고 있다. 미국도 주마다 최저임금이 다르다.

한국에서도 관련 논의가 있었다. 최저임금법 제4조 1항은 “최저임금은 사업의 종류별로 구분해 정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지난 5일 열린 최저임금위원회에서도 사용자 측은 PC방, 편의점 등 ‘8개 업종별 차등 적용’을 요구했지만 17대4(기권1)로 부결됐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최저임금 인상에 찬성하지만 지역별·업종별 차등은 필요하다. 지금 농촌처럼 지급여력 문제로 편법을 저지르는 곳이 많아지면 최저임금제도 자체가 의미가 없어진다”고 말했다.

한영익·송우영·최규진 기자 hany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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