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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8 (토)

臣에게는… 땅끝마을에 '67개의 작품'이 있사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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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의 '문화 3景'] 우수영 문화마을

忠武公의 기개·예술인들의 집념 느껴볼 텐가

2㎞ 펼쳐진 공공미술… 동네가 '지붕없는 미술관'

여객선터미널 옆 제일여관엔 방마다 갤러리

조선일보

전남 해남군 문내면 우수영 여객선터미널에서 '우수영문화마을' 쪽으로 2~3분을 걸으면 아담한 건물 하나가 나타난다. 제일여관이다. 목조 기와 지붕이 고즈넉한 어촌 마을과 어울린다. 1938년 지어진 이 여관은 1984년 해남과 진도를 잇는 진도대교가 개통하기 전까지 진도 군민들이 애용했다. 예전엔 하루 여덟 번씩 두 곳을 오가는 여객선이 있었다. 거센 풍랑에 배가 끊기면 여관에서 하룻밤을 지내는 객이 많았다. 우수영마을 주민 장남수(68)씨는 "제일여관은 마을 역사를 품은 박물관 같은 건물"이라고 말했다.

2000년 초부터 방치됐던 이 건물은 작년 2월 '생활사갤러리-제일여관'이란 이름의 공공 미술 건물로 변신했다. 여관의 방 6개는 우수영 주민들의 일상을 담은 '사진 갤러리'와 이순신 장군의 활약상을 보여주는 '이순신 미디어관', 마을의 문화를 소리로 표현한 '소리문화관' '정재(부엌) 카페' '1920년대 초등학교 재현 교실' 등으로 재탄생했다.

'지붕 없는 미술관'이 된 마을

우수영 성 안팎 10개 마을로 이뤄진 우수영마을은 암석 지형이라 농토가 척박하다. 바닷가에 접하고도 갯벌이 없어 수산자원도 부족하다. 주민들은 상업에 주로 의존했는데, 1970년대 이후 관공서와 초등학교 등이 다른 지역으로 빠져나가면서 급속한 침체기를 겪었다.

조선일보

전남 해남군 문내면 우수영문화마을 입구에 설치된‘울돌목—바다가 울다’라는 제목의 벽화. 이순신 장군이 명량대첩 때 울돌목의 거센 파도를 타고 일본의 수군을 격파하는 장면을 묘사한 것이다. 당시 이순신 장군은 배 13척으로 적의 133척과 맞서 승리를 거뒀다. /김영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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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영은 2014년 개봉한 영화 '명량'이 흥행에 성공하면서 주목받았다. 명량대첩은 이순신 장군이 정유재란 때인 1597년 우수영에서 지척인 울돌목 바다에서 일본 수군을 대파한 해전이다.

해남군은 새롭게 조명을 받은 우수영마을에 문화의 색채를 입혔다. 2015년에 문화체육관광부의 공공 미술 사업인 '마을 미술프로젝트' 후보로 밀어 국비 3억원을 지원받았다. 이후 총사업비 11억원을 투자해 우수영마을 입구부터 2㎞ 구간 곳곳에 영상미디어·공예·회화·조각 등 공공미술 작품 67점을 설치했다. 67개팀, 예술가 100여명이 작품 제작에 참여했다. 부산 감천마을 등 전국의 주요 문화마을을 조성한 재단법인 '아름다운맵'이 작가 구성, 작품 기획, 제작, 설치 등을 맡았다. 사업 첫해인 2015년 4월부터 9월까지 예술가 6명이 마을에 살면서 작품을 만들었다. 주민 생활과 지역 역사를 작품에 구현하는 '공동체 미술(커뮤니티 아트)'을 실천한 것이다. 이들은 골목길 담벼락에 벽화를 그렸다. 1940년대 포목점이던 '면립상회'에 회화 작품을 걸었고, 문방구와 복덕방, 주막집 등도 문화 공간으로 바꿨다. 마을 전체가 '지붕 없는 미술관'이 된 것이다.

문화예술로 활력 찾아

조선일보

진도대교 옆 바닷가에 서 있는‘명량의 고뇌하는 이순신 상’(이동훈작). 갑옷이 아닌 도포 차림으로 울돌목 앞바다를 바라보는 인간 이순신의 모습. /김영근 기자


요즘 주말이면 하루 100명가량 외지인이 우수영문화마을을 찾는다. 정춘원(69) 우수영문화마을 주민협의회장은 "한때 마을이 폐촌 위기에 몰릴 정도로 쇠락했는데, 아트하우스와 갤러리로 바뀐 마을을 보러 사람들이 몰리면서 마을에 활력이 생겼다"고 말했다. 김해곤 아름다운맵 총괄감독은 "문화마을은 적어도 5년은 조성해야 자리를 잡는다"며 "우수영문화마을을 한 해 100만명이 찾는 부산 감천문화마을처럼 명소로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우수영문화마을은 명량대첩의 후예 1388명이 사는 고장이다. 이순신 장군과 수군, 명량해전 등의 내용을 담은 벽화와 조각 작품이 많다. 마을 언덕 암벽엔 보물 제503호로 지정된 명량대첩비가 있다. 우수영마을에서 차로 5분 거리엔 명량해전이 펼쳐진 울돌목의 생생한 물살과 소리를 체험할 수 있는 우수영 관광지가 있다. 오는 9월 8일부터 사흘간 이곳에선 명량해전을 재현하는 명량대첩축제가 열린다. 특히 올해는 명량대첩의 칠주갑(60갑자가 7번 반복·420주년)을 맞는 해이다.



[해남=조홍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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