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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8 (토)

빛나는 깡통… 낡은 농협창고, 별을 모아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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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의 '문화 3景'] 문화예술촌

검붉게 녹슨 건물 속 미디어아트 대반전

책 박물관 입구 '정직한 서점'… 그림책 등 無人 판매

조선일보

겉은 허름하다. 건물 외벽엔 군데군데 검붉게 녹이 슬었다. 세월의 흐름을 거스르지 못한 모습. '삼례농협 창고'라는 글자도 색이 바랬다.

안으로 발을 들여놓으면 전혀 다른 모습이 펼쳐진다. 최신 컴퓨터 기술을 활용한 미디어아트 작품이 눈에 들어온다. 깡통 수백 개에 전구를 달아 쇠막대로 세운 설치 작품은 음악에 맞춰 좌우로 흔들린다. 만경강변의 갈대가 바람에 휘날리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현대적 감각이 돋보이는 '비주얼 미디어(VM) 아트미술관'의 모습이다.

이곳은 원래 일제강점기에 쌀·보리 등을 보관하기 위해 만든 양곡 창고였다. 2010년부터 현대식 저장 창고에 밀려 제 기능을 잃고 방치됐다. 전라선 복선화 사업으로 삼례역이 옛 위치에서 300m쯤 떨어진 곳으로 옮겨가면서 상권이 활기를 잃었다. 완주군은 사람들이 떠나가는 이 공간에 새로운 복합 문화·예술 시설을 만들어 관광지로 개발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삼례문화예술촌' 프로젝트였다. 2012년 5월부터 1년여 동안 모두 40억원을 들여 1만1825㎡의 부지와 창고 건물을 고쳤다. 역사적 의미를 살리려고 낡은 목재와 녹슨 철제문 등 세월의 더께가 묻어나는 구조물을 최대한 살렸다. 이렇게 만든 건물 7개 동엔 비주얼 미디어 아트미술관, 책박물관, 책공방 북아트센터, 디자인박물관, 김상림 목공소, 문화카페 오스, 종합안내소가 자리 잡았다. 관장들은 뜻을 모아 협동조합을 만들었고, 매년 완주군이 지원하는 6억~7억원의 예산으로 문화예술촌을 운영한다. 입장료는 어른 2000원, 청소년 1000원, 65세 이상 노인·완주군민·국가유공자 등은 무료다.

조선일보

삼례문화예술촌 비주얼미디어 아트미술관에서 작품을 감상하는 사람들. 깡통에 전구를 달아 쇠막대로 세운 이 설치 작품은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를 표현한 것이다. /김정엽 기자


2013년 6월 개관 이후 소문이 나면서 4년 동안 14만8400여 명이 다녀갔다. 매년 삼례 인구(1만4700여 명)의 2.5배쯤이 찾아온 셈이다. 김미경 완주군 문화예술과 주무관은 "예술촌이 생기면서 죽어가던 상권이 조금씩 살아나고 있다"면서 "주변 상가의 지난해 매출은 2013년에 비해 평균 7.1%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책박물관은 입구부터 공간 구성이 흥미롭다. 출입문 좌측에 있는 '정직한 서점'에선 소설·잡지·그림책 등을 파는데, 점원이 없다. 책값은 요금함에 알아서 양심껏 내면 된다. 김태호 협동조합 이사장은 "삼례문화예술촌을 찾는 분들은 창작 활동이나 생업에 열중하는 문화·예술인들의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보는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완주=김정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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