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19 (금)

[동서남북] 文 대통령의 사람 보는 눈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청문회서 지적된 부적격 내용, 청와대 검증서 이미 알았을 것

문 대통령과 박 전 대통령 인사… 방향만 다를 뿐, 비슷해 보여

조선일보

이동훈 정치부 차장


박근혜 전 대통령은 재임 중에 "사람 보는 눈이 없다"는 얘기를 자주 들었다. "어떻게 저런 사람을 쓸 수 있나"라는 걱정 어린 시선을 받은 경우가 적지 않았다. 능력은 차치하고 인성(人性)에 문제 있어 보이는 사람을 임명해 지지자들조차 입이 딱 벌어지게 한 일도 있었다. "그런 인사(人事) 실패가 쌓여 박 정부 실패로 이어졌다"고 말하는 정치권 인사가 많다.

박 전 대통령 인사는 ①우파 전체에서 널리 사람을 쓰지 않고 ②의리, 사심 없는 충성 등 독특한 기준으로 사람을 고르는 특징을 보였다. ③한번 '꽂힌' 인사에 대해선 웬만해선 신뢰를 거두지 않았다.

대표적인 인물이 김기춘 전 비서실장이다. 김 전 실장은 임명 직후 기자 브리핑에서 "윗분의 뜻을 받들어"라는 표현을 써 주위를 어리둥절하게 했다. 그는 대통령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오면 사람 없는 곳을 찾아 휴대폰을 공손하게 받쳐 들고 통화하는, 다소 과장된 모습으로 충성심을 과시하곤 했다. 많은 사람이 고개를 갸웃댔지만 박 전 대통령은 "보기 드물게 사심이 없는 분"이라며 오랫동안 그를 곁에 뒀다.

박근혜 정부 고위직을 지낸 한 인사는 기재부 장관을 지낸 A씨, 해수부 장관을 지낸 B씨를 두고 이렇게 말한 적 있다. "자질·능력 부족이란 검증 보고서가 왜 안 올라갔겠나. 주위 평판만 들어봐도 부적격인지 다 안다. 그렇지만 대통령이 좋다는데 어쩌겠나."

국회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A, B씨 공히 야당 반대에 직면했지만 대통령은 임명을 강행했다. 그들의 장관직 수행은 평탄치 못했고 "역시 박 대통령은 사람 볼 줄 모른다"는 세평만 키웠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으려는 사람 심리를 전문 용어로 '확증편향(確證偏向·confirmation bias)'이라고 한다. 눈에 콩깍지가 씌는 현상이다. 박 전 대통령은 인사에 있어 '확증편향'이 강했다.

확증편향이 심하면 자기 견해에 반하는 정보는 도전이나 도발로 여긴다. 사람 쓰는 일에 확증편향이 심하면 다른 일에도 그런 경향을 보일 가능성이 있다. 탄핵심판 과정에서 박 전 대통령은 자신에게 유리한 정보만 받아들이며 끝까지 기각을 확신했다고 한다.

조선일보

문재인 대통령이 3일 오후 신임 장·차관 임명장 수여식이 열린 청와대 충무실에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과 함께 입장하고 있다. /뉴시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한동안 들을 수 없던 "사람 보는 눈 없다"는 얘기가 최근에 다시 들린다. 문재인 정부 조각 후보자들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를 지켜본 다수 인사의 입을 통해서다.

한 고위 관료 출신 인사 얘기다. "음주운전, 표절 등 그 사람 과거 전력은 그럴 수 있다고 치자. 청문회장에서 잘못을 어떻게든 감추고, 때론 거짓말까지 서슴지 않는 그들의 태도에서 그 사람 인성이 읽힌다. 한평생을 어떻게 살아왔는지 보인다. 일반인이 청문회 몇 시간만 지켜봐도 느끼는 그 사람의 바닥을 대통령은 왜 못 보는가?"

야당이 인사청문회에서 부적격으로 지목한 김상곤 교육부 장관, 송영무 국방부 장관 후보자, 조대엽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 등 3명은 문 대통령과 비교적 오래전 인연을 맺어 고락을 함께해온 공통점이 있다. 청문회에서 드러난 이들의 문제점은 청와대 검증 과정에서 거의 다 체크됐을 가능성이 크다. 문 대통령에게도 보고됐을 것이다. 하지만 그동안 자신이 봐온 그들의 장점이 더 커 보이고, 그들이 내왔던 이른바 '개혁적' 목소리가 약점을 상쇄하고도 남을 만하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인사는 인사권자인 내가 하는 것이고, 그들에게 단점이 있지만 장점이 더 많다. 단점만 부각하는 것은 적폐(積弊)의 음모다.' 이렇게 결론 내렸을 수도 있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문 대통령의 사람 보는 눈은 박 전 대통령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사람 쓰는 일에서 문 대통령의 확증편향은 박 전 대통령 못지않은 것 같다. 다만 박 전 대통령이 오른쪽을 봤다면 문 대통령은 왼쪽을 본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이동훈 정치부 차장]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