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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8 (토)

법관회의 요구 ‘절반 수용’…회의 상설화까지 ‘산넘어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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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법관회의 상설화, 대법원장 권한 분산 등 긍정적 측면

인사권 등 사법행정 전반 개혁 논의 본격화로 이어질듯

블랙리스트 추가조사 거부엔 일선 판사 반발 적잖아

“원인 해결없이 대안 마련하겠다는 책임회피” 비판도



양승태 대법원장이 전국법관대표회의(법관회의) 결의 가운데 ‘법관회의 상설화’만 수용한 것은 법원 안팎의 개혁 요구에 대한 나름의 ‘궁여지책’으로 보인다. 그러나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 추가조사와 관련자 문책 등 다른 요구를 모두 거부한 대법원장의 해법이 법관회의 등 일선 판사들의 동의를 얻어낼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전국 단위의 법관회의 상설화는 사법개혁은 물론 법원 민주화 차원에서도 큰 의미가 있다. 법관들이 인사 등 사법행정에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장치를 만드는 것 자체로 대법원장의 제왕적 권한이 분산되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법원행정처의 역할 축소나 폐지, 인사 제도를 비롯한 사법행정 전반을 다루는 사법개혁 논의도 본격화할 수 있다.

양 대법원장이 법관회의 상설화를 수용한 것은 그의 말처럼 “법원 안팎에서 사법개혁의 필요성 및 방향에 관한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엄중한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실제 국회 개헌특위와 참여연대 등 시민사회에서는 인사 등 사법행정권을 법원에서 분리해 별도의 헌법기구인 사법평의회 또는 사법행정위원회에 맡기는 개헌안 등을 논의 중이다. 일선 법관들의 사법행정 참여 확대 등 ‘아래로부터의 개혁’을 더는 피하기 힘든 상황이라고 판단한 듯하다.

다만 법관회의 상설화 실현에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우선 양 대법원장이 구상하는 법관회의의 권한이 분명하지 않다. 그는 법관회의를 “사법행정에 관한 법관들의 참여 기구”, “법관들의 의사를 수렴·반영하는 제도적 장치”라고 표현했다. 만약 ‘자문기구’ 정도로 생각하는 것이라면 법관회의가 실질적인 결정권을 가져야 한다는 상당수 일선 법관들의 인식과는 거리가 멀다. 법원조직법에 각 법원 단위의 판사회의가 이미 규정돼있어, 법관회의를 법률이 아닌 대법원 규칙으로 설치하는 데 대해 반론이 있을 수 있다. 이런 입법 공방이 국회의 개헌논의와 맞물려 장기화하면 상설화는 몇 달 남지 않은 양 대법원장의 임기 뒤로 밀릴 수 있다.

양 대법원장이 다른 요구사항을 모두 거부한 것에 대해서도 반발이 적지 않다. 서울지역의 한 판사는 “진상조사 거부는 원인 해결 없이 대안만 마련하겠다는, 사실상의 책임회피”라고 비판했다. 다른 판사도 “대법원장에게 (블랙리스트 의혹 컴퓨터) 조사를 동의할 권한이 있는데도, 이를 거부하겠다는 것은 옹색하다”고 평가했다. 전국법관대표회의는 이날 양 대법원장의 입장 표명 직후 의견 수렴에 들어갔지만, 부정적인 반응이 많아 갈등이 쉽게 가라앉지는 않을 전망이다.

여현호 선임기자, 현소은 기자 yeop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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