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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8 (토)

[야! 한국 사회] 글값이 똥값인 문화강국? / 임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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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한겨레

임범
대중문화평론가


얼마 전 한 정부기관의 홍보 콘텐츠 발행과 관련한 자문회의에 갔다. 홍보 책자 만드는 비용이 적다 싶어 실리는 글의 원고료가 얼마인지 물었다. 외부 필자는 200자 원고지 1장당 1만2천~1만3천원, 내부 필자는 8천원 준다고 했다. 1만2천~1만3천원? 많은 건가, 적은 건가. 글에 따라 다르겠지만 글 쓰는 데 드는 시간을 생각하면 적으면 적었지 많은 것 아닐 거다. 하지만 다른 매체들이 주는 원고료에 비하면 많으면 많았지 적은 게 아니다.

당연하게 여겨온 게 새삼스럽게 다가올 때가 있다. 원고료 수준을 새삼 눈여겨보게 된 건 후배들의 질문 때문이다. 논픽션 소설을 준비하는 한 후배가 연재할 매체도 마땅치 않고 원고료도 적어, 준비자금 마련을 위해 영화 같은 매체와 연결 지을 방법을 물으러 왔다. 다른 한 후배는 수년간의 준비 끝에 첫 저서를 내, 요즘 책치고 드물게 초판이 다 나갔는데 300만원의 인세 수입과 맞닥뜨리고 보니 기분이 또 달랐던 모양이다. 둘의 공통된 질문. “선배, 글 써서 먹고살 수 있어요?” “정말 몰라서 묻는 거야?”

자료를 뒤지고 기억을 더듬어봤다. 내가 기자생활을 시작한 직후인 1989~1990년에 메이저 언론사가 발행하는 일간지, 주간지, 월간지의 원고료가 내 기억에 원고지 1장당 5천~8천원이었다. 자료에 그때 라면값이 일반라면 100원, 고급라면 200~300원, 자장면이 1천원 안팎이고 담배가 600~700원이라고 나온다. 1989년 근로자 월평균 소득이 사상 처음 50만원 선을 넘어 54만805원이라는 기사도 있었다. 최근 발표된 2015년 임금노동자 평균월급이 329만원이었다. 그 26~28년 동안 원고료 말고 나머지 가격이 대략 5~7배 뛰었다.

원고료는 어떨까. 여기저기 알아보니 필자에 따른 원고료 차이는 커졌다. 하지만 일반 필자의 경우 메이저 매체도 극소수를 빼고 8천~1만5천원으로 28년 전의 2배를 못 넘었다. 인기나 지명도가 덜한 매체로 내려가면 사정이 더 열악하다. 기업이 발행하는 사보나 사외보는 90년대 초반부터 수년 동안 1장당 2만원에서 많게는 5만원까지 주는 곳이 적지 않아 프리랜서 글쟁이, 기자, 소설가의 짭짤한 수입원이 됐다. 하지만 구제금융 거치면서 사보, 사외보의 수가 현저히 줄더니 언젠가부터 남은 사보, 사외보마저 외주로 제작되기 시작했다. 여기저기 글 많이 쓰는 한 후배에 따르면 요즘 사보든 사외보든 2만원을 넘는 곳이 없단다.

원고지 한장이 아니라 에이포 용지 한장당 1만원으로 원고료 단위가 바뀐 인터넷 매체도 있다고 한다. 내 친구 아무개는 한 농업 잡지에 글을 썼더니 고료를 곡식으로 주겠다고 했단다. 인터넷에 ‘원고료’ 쳐보면 매체나 분야 막론하고 아우성이다. ‘문학잡지는 소설·시에 대한 원고료를 지급하라, 방송사 구성·다큐 작가들 원고료 높여라, 음악앨범 속지 원고료가 15년째 그대로다….’

책, 신문, 잡지 안 팔리고, 활자 콘텐츠의 무료화 폭이 커지고, 이런 익히 알고 있는 요인들을 감안해도 글값이 천대받는 양상이 너무 심하다. 글값이 똥값인 문화콘텐츠 강국? 답답한 노릇이지만 누구를 탓할지, 뭘 고칠지 막막하다. 세금 지출이 만병통치약이 아니겠지만, 정부 산하기관이 발주하는 매체에서 ‘최저 원고료’ 제도를 시행해 보는 건 어떨까. 조금만 올리더라도, 그래서 실질적 효과가 미미하더라도, ‘지금의 글값이 비정상이고 바뀌어야 한다’는 사회와 정부의 인식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최소한 개선의 출발점은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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