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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8 (토)

김상곤 청문회 증인 채택된 김병준 “출석 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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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2006년 김병준 교육부총리 논문표절 논란 때

김상곤 당시 전국교수노조위원장이 사퇴 요구

“그때 교수단체가 사실 확인 더 했어야…

정치적 공방 너무 거세 출석 안하겠다”



한겨레

김병준 전 교육부총리.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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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의 국회 인사청문회에 증인으로 채택된 김병준 전 교육부총리가 “청문회에 출석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병준 전 부총리는 26일 블로그에 “표절의혹과 국회 인사청문회 출석여부에 대해 말씀드린다”는 글을 올려 이렇게 밝혔다. 그는 “이번 일을 두고 ‘11년 만의 공격과 수비의 교대’, ‘김병준의 복수’, ‘벼르고 있는 김병준’ 등으로 이야기되는 것을 들었다. 그런 마음 전혀 없다. 그럴 이유도 없다”고 선을 그었다.

김병준 전 부총리는 노무현 정부 때인 2006년 7월 교육부총리로 임명됐으나 당시 한나라당이 논문표절 의혹을 집중적으로 제기하면서 13일 만에 낙마했다. ‘11년 만의 공격과 수비의 교대’라는 말은 당시 전국교수노동조합 위원장이었던 김상곤 후보자가 김병준 전 부총리의 논문표절 의혹과 관련해 사퇴를 요구한 것을 가리키는 것이다.

김병준 전 부총리는 “(내) 논문이 제출된 날짜만 확인해 보아도 표절이 아님을 알 수 있는 것이었다”며 “김상곤 후보자가 이끌었던 교수단체는 전문가단체라는 점에서 더욱 확인했어야 했다고 생각합니다만, 그러지 않았던 것 같다”고 김상곤 후보자에 대한 유감을 비치기도 했다.

하지만 김병준 전 부총리는 “표절 문제가 좀 더 무겁고 신중하게 다뤄져야 한다. 정치적 공방으로 이루어진다”며 “2006년의 제 사건만 해도 그렇다. 교수단체가 성명을 내기에 앞서 관련된 모든 논문을 놓고 같이 확인하고 검증하는 등의 엄격한 절차를 거쳤다면 오늘과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고 현행 인사청문회에서 논문 표절이 다뤄지는 방식에 대한 아쉬움도 표현했다.

김병준 전 부총리는 “이 모든 것을 이야기하기 위해 청문회에 출석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김상곤 후보자에 대한 공방이 너무 거세다. 이런 상황에서 저의 이러한 마음이 청문회를 통해 잘 전달될 것 같지 않다”며 “청문회에는 출석하지 않겠다. 많은 분들이 꾸짖고 나무라시겠지만 그 모두를 제가 감수하겠다”는 자신의 뜻을 밝혔다. 그는 “대신 관련된 의견이나 자료를 제출하라면 제출하겠다”고 말했다.

◎아래는 김병준 전 교육부총리 블로그 글

논문표절 의혹과 국회인사 인사청문회 출석여부에 대해 말씀드립니다.

1. 2006년 억울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로부터 약 20년 전인 1986년, 교수로서 학생의 논문을 표절하였다는 의혹을 받았습니다. 전혀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2. 논문이 제출된 날짜만 확인해 보아도 표절이 아님을 알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제 박사학위 논문 1984년, 제 행정학회 논문 제출 1986년 11월, 학생의 학위논문 심사위원회 제출 1986년 12월 말 ~ 1987년 1월 초). 또 제 학위논문의 목차와 학생논문의 목차만 비교해 보아도, 학회나 저에게 전화로 확인만 해보아도 쉽게 확인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아래 <붙임 1> 참조).

또 직접 관련된 것은 아니라 해도, 저와 학생의 나이와 직업, 그리고 논문에서 사용한 고단위 통계기법의 난이성만 생각해 보아도 일이 어떻게 진행되었을지 짐작할 수는 있었을 것입니다. 저는 33세로 대학에 막 자리를 잡은 신진학자였습니다. 그리고 학생은 당시 50대 중후반의 인근대학 재단사무처 고위 행정 직원이었습니다.

그리고 사용된 통계기법은 요인분석과 경로분석 등 당시로서는 매우 어려운, 또 저와 그 학생이 소속된 학과에서는 가르친 적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지금과 같이 PC를 사용할 수 없어 학교의 대형 컴퓨터를 사용해야하는 환경이라 더욱 그러했습니다. 참고로 저는 미국서 조교생활을 하며 대형컴퓨터 기반의 통계분석을 가르쳤습니다.

3. 1986년 의혹이 제기될 당시, 이러한 사실들에 대한 확인이 없었습니다. 이 점 유감으로 생각합니다. 김상곤 후보자가 이끌었던 교수단체는 전문가단체라는 점에서 더욱 확인했어야 했다고 생각합니다만, 그러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저에게 확인하는 일도 없었고, 학회에 논문제출 일자 등을 확인하지도 않았던 것 같습니다.

사실 저는 지금도 그 단체와 그 단체의 대표가 제 학위논문과 학생의 학위논문을 읽어보았는지, 그리고 자료가 만들어지고 분석되는 과정에 대해 알아보려고 시도했는지 궁금합니다. 모두 마음만 먹으면 바로 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일면 표절문제나 표절의혹을 너무 가볍게 판단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또 표절문제가 아니라 당시 정부의 개방정책 등을 꺾을 수 있는 기회로 생각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아시다시피 저는 당시 정부정책을 운영하는데 있어 그 중심에 서 있었습니다.

4. 억울했던 만큼 제 스스로 국회에 청문회를 열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래서 사상 처음으로 피청문인이 자청한 청문회(상임위원회)가 열렸습니다. 노무현대통령의 표현을 빌리자면 결과는 ‘완승’이었습니다(아래 <붙임 2> 참조. 당시의 국회기록, 특히 표절과 관련하여서는 오전 부분의 기록을 참고해 주셨으면 합니다).

실제로 표절문제는 길게 거론되지도 않았습니다. 이중게재와 연구비 등의 문제가 제기되었고, 검찰에 고발까지 되었습니다만 모두 ‘무혐의 처분’ 받았습니다.

하지만, 저 역시 당시 제기된 문제들이 표절의 문제만은 아니라 생각했습니다. 대통령과 정부에 대한 반대와 유감의 표현이라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 부담을 제가 안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사표를 냈습니다.

5. 이번 일을 두고 <11년 만의 공격과 수비의 교대> <김병준의 복수> <벼르고 있는 김병준> 등으로 이야기되는 것을 들었습니다. 아닙니다. 그런 마음 전혀 없습니다. 그럴 이유도 없습니다.

“김병준이 김상곤의 논문표절을 밝힐 것”이라는 시각도 있는 것 같습니다만, 이 또한 아닙니다. 표절문제는 대단히 전문적인 문제입니다. 지적재산권에 대한 전문성과 해당 분야에 대한 전문성이 없이는 말하기 어렵습니다. 제가 말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닙니다.

6. 표절문제가 좀 더 무겁고 신중하게 다루어졌으면 합니다. 너무 쉽게 의혹이 제기되고, 너무 쉽게 정치적 공방이 이루어집니다. 이래서는 안 됩니다. 창작을 하는 분들과 학자에게는 거의 죽음과 같은 일입니다. 그만큼 신중하게 전문적 판단을 바탕으로 다루어져야 합니다.

2006년의 제 사건만 해도 그렇습니다. 교수단체가 성명을 내기에 앞서 관련된 모든 논문을 놓고 같이 확인하고 검증하는 등의 엄격한 절차를 거쳤다면 오늘과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논문을 쓰는 쪽도, 또 의혹을 제기하는 쪽도 더 신중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이 점이 안타까웠을 뿐입니다.

7. 이 모든 것을 이야기하기 위해 청문회에 출석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그렇게 하라 권유했습니다. 하지만 김상곤 후보에 대한 공방이 너무 거셉니다. 이런 상황에서 저의 이러한 마음이 청문회를 통해 잘 전달될 것 같지 않습니다.

그래서 결론을 내렸습니다. 청문회에는 출석하지 않겠습니다. 많은 분들이 꾸짖고 나무라시겠지만 그 모두를 제가 감수하겠습니다. 대신 관련된 의견이나 자료를 제출하라면 제출하겠습니다. 특히 제 박사학위 논문과 학생의 학위논문 목차, 그리고 당시 사용된 설문조사서 등, 1986년 당시의 정황을 설명할 수 있는 부분은 고인이 된 당시 학생의 명예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제 스스로 적절한 방법을 통해 공개할 예정입니다.

8. 부족한 소견을 꾸짖어주시기 바랍니다. 더 좋은 글, 더 옳은 글을 쓰기 위해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17년 6월 23일. 김병준.



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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